▲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 9.11 테러 기억하는 이들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모리타니안’(수입/배급: 퍼스트런/디스테이션)은 2015년 출간된 수용소 증언록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한 실화 바탕의 영화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9.11 테러 발생 두 달 뒤인 2001년 11월, 북서 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타하르 라힘)는 경찰에 연행된다. 이후 그는 가족 품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실종된다.

2005년 2월, 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낸시 홀랜더’(조디 포스터)는 지인으로부터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9.11 테러 용의자 슬라히의 구금 사실 확인을 부탁받는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낸시의 확인요청에 대해 슬라히가 ‘있지도 없지도 않다’는 기묘한 답변을 내놓는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존재가 된 슬라히 사건에서 뭔가 구린 냄새가 풍기는 것을 직감한 낸시. 그녀는 소속 로펌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동료 변호사 ‘테리 덩킨’(쉐일린 우들리)과 함께 직접 조사에 나선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한편, 군검찰관 ‘스튜어트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상관들에게 호출되어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테러 용의자 슬라히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냉철한 성격의 스튜어트는 슬라히가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모집한 9.11 테러범에 의해 자신의 친구 브루스가 죽었다는 대목에서 크게 동요한다.

미국 정부는 9.11테러의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관타나모 수용소 전범에 대한 첫 사형을 원했고, 슬라히를 응징의 본보기로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스튜어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슬라히를 반드시 사형장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을 맡을 가장 완벽한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 9.11 테러 용의자를 두고 벌어지는 진실 공방

수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슬라히는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의 위성 전화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더구나 90년대에는 알 카에다에 합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웠으며, 테러범 중 한 명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일도 있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에 그가 테러범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기소 없이 장기간 강제구금 되어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2005년 10월, 미국 정부는 변호인 낸시의 정보 공개 요청을 받아들였고 슬라히에 대한 4년간의 조사기록이 담긴 산더미 같은 서류 박스를 넘겨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기밀사항이 모두 지워진 쓰레기에 불과했다. 정부는 슬라히에 대한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었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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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히 사건을 맡은 스튜어트 역시 자료조사 중 모순점을 발견하고 심문 과정에서 오간 대화와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 MFR(Memorandum for the Record)을 검토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부는 그의 정보접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높으신 분들이 원하는 것은 슬라히의 사형구형과 집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뿐이었다.

스튜어트는 누구보다 슬라히의 사형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슬라히를 증거 없이 기소하면 변호인 측이 빈틈을 파고들게 뻔했고 그가 허무하게 풀려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관타나모에서 만난 낸시에게 그 점을 명확히 하면서 반드시 증거를 찾아내 승소할 것임을 단언한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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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는 이 사건을 맡은 이후 미국 국민들로부터 테러리스트 변호사라는 악명을 얻으며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러함에도 낸시는 슬라히에게도 공평한 변론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08년 4월, 검열이 해제된 기밀 서류를 다시 받아든 테리는 새로 드러난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슬라히 사건을 맡아 긴 시간을 함께 한 낸시와 테리의 파트너 관계에는 그렇게 균열이 생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진실을 털어놓기 두려워하는 슬라히가 낸시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스튜어트도 MFR 내용을 확인하지 못해 난관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의 끈질긴 요청에 정부는 기밀문서 열람을 허락한다. 그리고 스튜어트가 마주하게 된 것은 슬라히를 사형장으로 보낼 증거가 아니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이었다. 

그 내용은 미국정부가 행한 불법적 행위를 고스란히 담은 고백과도 같았기에 스튜어트는 내적 갈등에 빠진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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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유린 VS 제2의 9.11 테러 방지

폭력적인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극단주의가 빚은 9.11 테러로 미국 국민 전체는 공포와 슬픔 그리고 분노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그렇기에 국민감정을 달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알 카에다가 벌일 제2의 9.11 테러를 막아야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테러와 관련해 혐의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용의자는 모두 색출해내 구금하고 심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 만인 2011년 5월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행해 파키스탄 안가에 숨어있던 알 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다.

이를 모티브로 만든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2012)에도 ‘블랙 사이트’라고 칭하는 CIA의 해외 비밀 군사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비인도적이며 잔인한 고문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분명 미국 정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민낯이지만 어디까지나 영화 전체 이야기 중 일부분으로 다뤄진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이와 달리 영화 ‘모리타니안’은 구금자 프로그램에 의해 장기간 수용소에 감금돼 고통받은 슬라히와 같은 무고한 이들의 인권 문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성고문, 물고문, 수면박탈 등 학대와 폭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섬뜩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수 아닌 죄수의 억울함, 슬픔, 분노 그리고 공포감이 생생하게 스크린을 통해 전달된다.

슬라히가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 백 장면은 4:3 화면비율로 스크린을 채운다. 이와 같은 연출은 단순히 과거와 현재 시점을 구분 짓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4:3 화면은 슬라히가 갇혀 있는 사각의 감옥을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인식하게 해 답답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그가 고문을 당하며 겪는 육체적 고통과 인간 존엄성 붕괴를 왜곡된 화면과 거친 음악을 사용해 공포영화처럼 연출한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증거 없이 구금됐던 슬라히 역의 타히르 라임은 독방에 갇힌 채 폭력과 고문에 처절하게 짓밟혀가는 수감자의 모습을 생생한 연기로 재현한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철저한 원칙주의자 스튜어트 카우치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완고한 인도주의자 낸시 홀랜더 역의 조디 포스터 연기 역시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조디 포스터는 이 작품으로 제78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한편, ‘모리타니안’의 배경이 되는 2001년 9.11 테러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전까지 2004년 사우디 코바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2008년 메리어트 호텔 폭탄 테러, 2009년 아프가니스탄 캠프 채프먼 폭탄 테러, 2010년 타임스퀘어 폭탄 테러 미수 등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또한, 2004년 외교통상부 국정감사 중에는 알 카에다가 1994년부터 13차례에 걸쳐 한국을 목표로 테러를 계획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법과 정의에 따른 인권 보호와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는 테러 범죄를 미리 막는 것 중 어느 쪽에 더 큰 가치를 둘지 결정하는 것은 정답을 얻기 힘든 윤리적 딜레마다. 관타나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오바마 행정부의 대테러 작전 수행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영화 ‘모리타니안’은 ‘제로 다크 서티’와 함께 9.11 테러를 기억하는 이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9월의 하루’(1999)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캐빈 맥도널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한쪽 종교는 감옥 안에서, 또 다른 쪽 종교는 교회 안에서 신을 향해 기도한다. 두 세계가 한 자리에서 기도하는 날이 온다면 ‘관타나모 다이어리’ 같은 책은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모리타니안.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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