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 힘 숨긴 상처투성이 남자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분노 대폭발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인칭 FPS 게임 같은 비주얼 액션 영화 ‘하드코어 헨리’(2015)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던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이 이번에는 신작 ‘노바디’(원제: Nobody,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로 숨겨진 본능을 일깨우는 논스톱 액션을 선보인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한 집안의 중년 가장 ‘허치’(밥 오덴커크)는 차고 문에 낀 피자 박스를 멍하게 바라보며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 없어 한다.

겨우 이런 사소한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어리바리한 강도들에게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이 위협당했다고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다.

골프채라도 휘둘러 봤냐며 조롱 섞인 질문을 던지는 경찰 덕분에 당장이라도 우주 밖으로 탈출할 것만 같았던 그의 정신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내 ‘레베카’(코니 닐슨)의 애잔한 눈빛과 아버지에게 실망한 아들의 무시는 허치의 가슴을 후벼 판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오직 천사 같은 딸만이 그를 위로하며 뜬금없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한다. 딸바보인 허치는 자기도 마침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며 맞장구친다. 사자를 키우자고 해도 들어줄 기세다.

다음날, 허치 집 강도 사건은 직장과 이웃에 소문이 쫙 퍼진다. 주변 사람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한 유약하고 무능한 남자라며 그를 대놓고 놀린다.

총 좀 만져본 이력을 가진 처남 찰리는 누나 잘 지키라며 매형 허치에게 볼썽사납게 거들먹거린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인 까닭인지 장인 역시 자기 회사를 사고 싶으면 돈을 더 내놓으라며 속을 긁는다.

어떻게 이런 집안에서 레베카처럼 속 깊은 사람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비록 부부관계가 아주 많이 뜸해졌지만 허치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 평범한 우리 아빠…알고 보니 인간병기

요양원에서 힘없고 초라한 노인으로 늙어가는 아버지 ‘데이빗’(크리스토퍼 로이드)을 만난 허치는 마음이 더욱 착잡해진다.

창밖에서 그림 같은 자기 가족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는 허치. 그는 오늘도 분노를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뇌관이 터져버린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고양이 팔찌’가 없어졌다며 딸이 풀 죽은 얼굴로 잡동사니 그릇을 들고 슬며시 그에게 다가온다. 강도들이 푼돈을 집어가려고 뒤적거렸던 그릇이다.

허치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집을 나선다. 딸의 고양이 팔찌도 지켜주지 못하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긴 세월 억눌러왔던 그의 본능이 마침내 폭발한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살 수 있듯 ‘별 볼일 없는 남자’ 허치 역시 화약냄새를 맡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블루스 기타리스트 루터 앨리슨의 ‘Life is a Bitch’가 흐르는 가운데 고양이 팔찌의 행방을 쫓던 허치는 마침내 강도를 찾아낸다. 하지만 오히려 더 스트레스만 떠안은 채 빈손으로 물러선다. 

귀가하는 길에 허치는 제발 이 터질 듯한 분노를 풀 기회를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신의 화답 같은 노래 ‘I’ve Gotta Be Me’가 찬송가처럼 울려 퍼진다.

이미 고삐 풀린 그를 막아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난 허치는 아내 곁에서 오랜만에 깊은 단잠에 빠져든다.

어제와는 달라진 활기찬 아침을 맞이한 허치.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은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허치와 막역한 사이인 '해리'(르자)는 그가 어제 소동으로 사이코패스 러시아 마피아 ‘율리안’(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과 엮이게 됐다며 경고한다.

단란한 가족을 갖고 싶어 독특한 과거와 재능을 숨겼던 허치. 그는 가족을 지키고자 다시 일깨웠던 옛 본능 때문에 오히려 아내와 아이들이 더 큰 위험에 내몰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 ‘존 맥클레인’과 ‘퍼니셔’로 변신한 ‘사울 굿맨’

몽타주 기법으로 짧게 보여주는 허치의 반복된 일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억눌린 본능을 턱걸이로 참아내는 허치가 대단하다고 여길 즈음에서 과격한 액션 장면들이 뒤를 잇는다.

비웃음 받던 상처투성이 사내 허치는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물러설 수 없다. 그는 너무나도 우직하게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불태운다. 허치라는 캐릭터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과도 꽤 닮았다. 만약 그가 해골 마크 코스튬을 입게 된다면 마블 코믹스의 ‘퍼니셔’를 떠올릴 관객도 많을 것이다. 이쯤 되면 범죄 스릴러 액션물이기보다는 슈퍼 히어로물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이 영화의 각본가인 데릭 콜스타드는 은퇴한 ‘존윅’의 킬러 본능을 강아지를 통해 부활시켰었다면 이번 인간병기 ‘허치’ 경우는 고양이 팔찌로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게 만든다. 반려동물 애호가일 것만 같은 그가 써 내려 간 각본은 천편일률적이고 밋밋한 여타 범죄 액션 영화들과 달리 코미디와 위트가 넘친다.

뭐가 그리 급한지 허치의 푸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인내심 없는 적들. 그들을 뒤로 하고 원더풀한 반전 매력의 아군들과 함께 하는 허치의 격렬한 총격전과 타격감 넘치는 액션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91분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브레이킹 배드’, ‘베터 콜 사울’에서 수완 좋은 변호사와 타락한 사기꾼의 경계에 서있는 인물 ‘사울 굿맨’ 역으로 국내에서도 얼굴을 알린 밥 오덴커크의 무표정 액션 연기는 단연 매력적이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브라운’ 박사로 대중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준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영화 곳곳에서 씬 스틸러로 등장해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여기에 친절한 가사 자막과 함께 흐르는 다양한 명곡 사운드트랙은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높인다.

고양이 팔찌를 찾기 위한 딸바보 허치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특히 일상에 시달리는 가장들에게 판타지적 대리 만족감을 느끼게 해줄 강렬하고 시원한 액션물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7일 개봉.

▲노바디.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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