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 미국 땅에 뿌리내린 미국 이민자 가족 모습 담은 수작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우리나라의 해외 이민이 70년대 전까지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이주로 목적이 바뀐다. 당시 한국인들은 선진국 미국에서의 풍족한 삶을 꿈꾸며 매년 약 3만명씩 이민을 떠났다.

영화 ‘미나리’(원제: Minari, 수입/배급: 판씨네마)는 80년대 미국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긴 한국인 이민가정의 삶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이 리뷰에는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들 '데이빗’(앨런 김)에게 뛰지 말라고 말한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은 데이빗은 멈춰서서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는 양계장 굴뚝에서는 나오는 검은 연기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아들이 연기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아빠 제이콥은 담배를 피우며 수평아리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해 준다.

“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누구보다 실력 좋은 병아리 감별사로 10년 동안 일해온 제이콥은 미국 땅에서 쓸모 있는 남자인 동시에 든든한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그는 한국 채소 농장을 운영해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과 함께 아칸소 깡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모니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허름하고 낡은 트레일러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병원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몸이 좋지 않은 데이빗 걱정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제이콥은 그런 모니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농장 흙을 한 움큼 쥐어 보이고는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라며 들뜬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보인다. 모니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제이콥을 외면한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모니카는 제이콥의 희망 찬 새로운 시작을 절망적인 것이라 여길뿐이다. 에덴동산 같은 농장을 꿈꾸는 제이콥과 안정된 환경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길 바라는 모니카. 두 사람의 생각은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하고 그 균열의 틈에서 아이들은 불안해한다.

어쨌거나 당장 생계를 꾸리기 위해 병아리 감별 일을 해야 하는 제이콥과 모니카에게는 앤과 데이빗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머나먼 한국에서 온 ‘순자’(윤여정)는 딸 모니카의 바퀴 달린 트레일러 집 새 식구가 된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 할머니에 대한 정이삭 감독의 기억들

한국 방송을 녹화한 비디오에서 은희의 노래 ‘사랑해'가 나오자 순자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노래 아니냐”며 무심히 한마디 한다. 

그 말에 제이콥과 모니카는 어색해한다. 흔들리는 가정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그들 사이에 노래가 울려 퍼지며 정적인 거리 장면이 이어진다. 정이삭 감독만의 섬세한 감정 연출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한편, 데이빗은 할머니 순자의 냄새가 싫다. 거기다 순자는 다른 집 할머니들처럼 맛있는 쿠키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쓰디쓴 한약만 준다. 데이빗은 영어와 서툰 한국말로 할머니가 싫다고 말해보지만, 순자는 오히려 반대로 알아듣고 기뻐한다. 물론, 제대로 알아들었더라도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론 하위드 감독의 ‘힐빌리의 노래’(2020) 속 미국식 터미네이터 할머니와는 사뭇 다른 토종 한국인 순자. 아이들과 고스톱을 치는 그녀의 입에서는 걸걸한 한국식 욕이 흘러나온다.

데이빗 가족은 미국 사회에 녹아들어 미국인들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한국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달콤한 미국산 ‘산 이슬물’을 마시며 프로레슬링을 즐겨보는 할머니 순자는 모국인 한국 그 자체이며 한없이 그리운 존재다.

손자에게 미안해 옷장 서랍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순자. 이제 데이빗은 그런 할머니가 싫지 않다. 데이빗은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할머니의 미나리들은 그렇게 미국 땅에서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난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영상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미나리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 이러한 특성처럼 영화 ‘미나리’는 우리의 딸과 아들 세대는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느 한국 가족의 다정하고 유쾌한 서사시"라고 밝혔다.

영화 ‘미나리’는 80년대의 노스텔지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고된 이민자 가족의 삶을 화면 안에 담는다. 에밀 모세리 음악감독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정서의 스코어와 라클란 밀른 촬영감독의 선명하면서도 때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은 영화 속 80년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특히, 이용옥 미술감독은 그 시절 미국과 이민자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지난 28일(현지시간) 개최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미나리. ⓒ판씨네마
▲미나리.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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