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진의 SR컬처] ‘낙원의 밤’ 리뷰...‘누아르 복수극’·‘불치병 로맨스’ 성공적 장르 결합

- 제주도 배경의 핏빛 액션...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아쉬움 남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태구’(엄태구)는 ‘양 사장’(박호산) 밑에서 일하고 있는 배포 좋고 추진력 강한 조직폭력배다. 그런 그에게 몸담은 곳보다 훨씬 더 큰 조직인 북성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양 사장과의 의리 때문인지 제안을 거절한다.

어느 날 태구는 사고로 유일한 가족인 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양 사장은 태구를 보듬으며 그냥 사고가 아닌 북성파의 소행이라 귀띔한다.

북성파 보스 ‘도 회장’(손병호)은 능청스럽게 웃는다. “가족까지 건드리는 건 생양아치나 하는 짓거리”라며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인 양 태구에게 범인을 잡아 넘기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때 풍겼던 인간 냄새는 이미 태구에게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짙고 푸른 밤을 달려온 태구. 양 사장은 그를 제주도로 피신시킨다. 북성파에게 쫓기게 된 태구를 러시아로 밀항시키기 위해서다.

제주도에 도착한 태구는 한때 조직에서 이름을 날렸던 불법 무기상 ‘쿠토’(이기영)의 집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쿠토의 조카 ‘재연’(전여빈)은 삼촌이 다시 조직과 엮일까 봐 태구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재연의 불안감은 기우에 머물지 않는다. 태구가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북성파 이인자 ‘마 이사’(차승원)는 계산을 끝내기 위해 그를 쫓아 제주도를 행한다.

◆ 궁지에 몰린 이와 삶의 끝에 서 있는 이

‘부당거래’(2010), ‘악마를 보았다’(2010)의 각본가로 주목받은 이후 뛰어난 연출력으로 ‘신세계’(2012), ‘마녀’(2018) 등을 흥행시킨 박훈정 감독. 그는 또다시 누아르 장르에 특화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한 ‘낙원의 밤’을 완성해 냈다.

누아르 장르가 가진 특유의 비장미와 무게감을 무거운 톤으로 담아내는 이 영화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고 이국적인 섬 제주도다. 섬뜩한 폭력과 번득이는 칼날 그리고 화약 냄새 가득한 총격전 시퀀스 사이로 펼쳐지는 푸른 숲의 풍광과 잔잔한 바다의 평화로움은 서로 분명한 정서적 거리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이 상반된 장면들은 위화감 없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피로 물든 잔혹함을 지나 비애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풍경은 아름답게 담되 감정선을 녹여내는 부분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연출 덕분이다.

이러한 문법은 누아르 복수극과 불치병 로맨스의 장르적 결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레옹'과 '니키타'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결합. 말로만 듣는다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각의 플롯들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놀랍도록 흡입력 있는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들짐승 같은 광폭함과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가진 태구와 삶의 끝에 서 있는 재연. 그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랑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둘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만으로 로맨스 이상의 감성을 완성해 낸다. 

프로타고니스트 태구와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안타고니스트 마 이사의 대결이 기존 영화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음도 신선하다. 재연 또한 누아르 장르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고정된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만 주도면밀한 성격을 가진 마 이사가 후환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느낌이다. 대신 그 여지를 발판으로 영화적 장치가 시원하게 구동하며 결말에 이른다. 완성도가 높은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극장에서 만나 볼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와 관련해 "아름다운 남녘의 제주 바다와 하늘을 담고 그 안에 핏빛으로 얼룩진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며, ”배경과 스토리가 주는 아이러니함을 각각의 입장에서 흥미롭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화 ‘낙원의 밤’은 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