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 '체인소 맨'은 츠루마키 카즈야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프리크리'(2000)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인간계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수많은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는 세계관이지만, '체인소 맨'은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독특한 서사를 펼쳐낸다.
이 작품은 성서에서 비롯된 전쟁, 기아, 죽음 그리고 지배라는 4가지 신학적 키워드를 꺼내 들고 인간 존재론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전쟁을 겪으며 인간이 왜 그토록 잔혹해졌는지 고민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사상이 스며들어 있는 '체인소 맨'은 모종의 이유로 2차 세계대전도, 원자폭탄 트라우마도 없는 다른 세계선의 1990년대 일본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덴지는 어릴 때부터 학대와 착취를 당하며 빚을 갚기 위해 장기까지 팔아야 했다. 비참한 환경에서 자라온 그는 식욕, 수면욕, 성욕 등 인간 기본 욕구에 대한 결핍과 갈증만이 남은 상태다. 인간 이하의 삶 속에서 그가 의지할 대상이라곤 전기톱과 개가 합쳐진 기묘한 모습의 악마 포치타 뿐. 덴지는 포치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자신을 착취하던 야쿠자 조직의 배신으로 궁지에 몰려 악마의 심장을 가진 체인소 맨으로 거듭나 날뛰게 된다.

그런 그의 앞에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가스라이팅 능력을 지닌 공안 특이 4과 리더 마키마가 나타난다. 그녀에 의해 공안의 개 신세로 전락해 악마 퇴치 도구로 휘둘러지지만, 삼시 세끼와 깨끗한 잠자리를 제공받는 인간적인 삶에 만족감을 느낀다.
TV판 시즌1에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1999)에서 영감을 얻은 원작 에피소드를 영상화했다. '인랑'이 '빨간 두건' 동화를 활용했다면 이 작품은 이솝 우화 '시골쥐와 도시쥐'에 등장 캐릭터를 빗대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 메타 시네마로서의 전반부
시네필인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는 자신의 작품 안에 명작 영화의 패러디나 오마주 장면을 다수 사용해왔다. 이 영화에서는 '인랑'을 비롯해 '매트릭스'(1999) 등 다양한 영화의 명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달리는 말'을 패러디한 장면 등이 등장하는 요네즈 켄시의 'IRIS OUT' 오프닝 뮤직 비디오에서는 제작진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전반부에 배치된 덴지와 마키마의 영화관 데이트 시퀀스는 이 작품의 메타 시네마적 성격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두 인물은 돈만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억지 울음을 유도하는 신파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낮부터 밤까지 연이어 함께 본다. 온종일 본 영화들이 모두 재미없었다는 덴지에게 마키마는 "한 편의 영화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작품을 함께 관람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공감할만한 잔향을 남기는 장면이다.

이후 서사에서는 이들이 앞서 본 로맨스, 코미디, 공포, 액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전개 시키는 구조를 통해 영화를 향한 헌사를 전한다. 특히 로맨스 영화로서의 절정을 보여주는 덴지와 레제의 수영장 신은 다양한 앵글의 섬세한 인체 묘사, 실사 영화를 모사한 듯한 시네마틱 연출로 고전 멜로 드라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90년대 셀 애니메이션의 움직이는 일러스트 화집 같은 아름다운 색감과 작화 그리고 OST 'in the pool'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완벽하게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 작렬하는 경이로운 스펙터클 액션…감각적 팝 아트 비주얼
중반부에 접어들면 한없이 달콤했던 로맨틱 코미디가 깜박이 없는 급커브를 튼다. 웬만한 공포 영화에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점프 스케어다. 뒤를 이어 사랑과 살의, 욕망과 배신이 다양한 형태로 뒤엉켜 양가성 액션 파노라마를 펼친다.

그로테스크한 신체 변형과 파괴,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초고속 액션 비주얼 미학이 스크린을 장악한다. 핸드 드로잉과 CG가 융합된 아름답고 잔혹한 영화적 순간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연인끼리의 정사 장면이 폭력과 죽음으로 치환된 듯한 광폭한 액션 시퀀스는 시각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와는 또 다른 결의 현란한 감각적 팝 아트 비주얼 연출이 시각적 흥분을 극대화한다.
'샤크네이도' 시리즈의 패러디인 상어의 마인 빔과 체인소 맨 콤비가 펼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광란의 폭풍 액션도 눈을 즐겁게 한다. 조연 분량으로 등장하는 천사의 악마와 아키 사이의 관계성도 주목할 부분이다. 각자 비극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의 서사는 다음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 영화적 쾌감 가득한 OST
이 작품은 OST로도 또 하나의 새로운 영화적 쾌감 경험을 선사한다. 사랑과 배신의 아슬아슬하고 위협적인 감정선을 반영한 거친 노이즈가 사용된 곡과 이에 대비되는 정적이고 내밀한 순간의 심리적 여운을 증폭시키는 앰비언트 음악의 서정성으로 다층적인 레제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또한, 액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거친 기타 리프, 보컬 샤우트, 메탈 사운드로 폭발적인 격투 장면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4DX 특별관 의자에서 타격감 있는 비트를 체감해볼 수 있는 오프닝 주제가 'IRIS OUT'의 경쾌함을 지나 결말에 이르러 흘러나오는 우타다 히카루와 요네즈 켄시가 부른 엔딩곡 'JANE DOE'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영화의 여운을 더욱 깊게 한다.

하얀색과 붉은색의 데이지 꽃말대로라면 뒤엉킨 감정 속에서 덴지와 레제가 원했던 삶과 진심은 결국 서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자인 후지모토 타츠키는 "연애 상대가 저주가 되어 계속 존재하는 것을 좋아한다. '레제편'을 보신 분들에게 레제라는 존재가 여러분 안에 저주로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유증을 남기는 엔딩일 수밖에 없다.
영화 오프닝에서 덴지에게 문을 열지 말라고 하는 포치타의 말과 마지막 쿠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 배치는 원작 1부 내용을 아는 관객에게는 절묘하게 느껴질 수미상관의 서사적 메타포이기도 하다. '극장판 체인소 맨: 마키마편'도 제작되길 기대해 본다.

제목: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
감독: 요시하라 타츠야
음악: 우시오 켄스케
주제가: IRIS OUT(요네즈 켄시), JANE DOE(요네즈 켄시, 우타다 히카루)
제작: MAPPA
수입/배급: 소니 픽쳐스
일본 개봉: 2025년 9월 19일
한국 개봉: 2025년 9월 2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평점: 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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