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에 이어 20년 만에 다시 영화화된 작품인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된 뒤 재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주인공 만수(이병헌)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태양 제지에서 25년 인생을 바친 종이 전문가 만수는 아내 미리(손예진), 아들 시원(김우승), 딸 리원(최소율), 반려견 시투, 리투 그리고 어렵게 장만한 아름다운 집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할 만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수는 덜컥 해고된다. 가장으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식구들 입에 밥을 넣어줘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머리를 짓누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재취업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만수.

▲'어쩔수가없다'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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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발랄했던 미리도 뒤늦게 알게 된 남편의 실직 소식에 한순간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부부는 일심동체. 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는다. 말 그대로 필사의 구직활동을 이어가는 남편 만수를 알게 모르게 물심양면으로 야무지게 돕는다.

만수는 취업 희망 1순위 기업인 문 제지에 이력서를 내밀어 본다. 하지만, 그곳에는 자신과 똑같은 포지션에 단단히 박혀 있는, 아주 잘나가는 작업반장 선출(박희순)이 있었다.

그에게 모욕적인 문전박대를 당한 후 물러설 수 없는 마음의 벼랑 끝에 몰린 채 독한 마음을 품게 된 만수. 결국, 그는 경쟁자들과의 전쟁을 결심한다. 만수는 그들이 하나같이 모두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닮아있었음을 발견한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종이밥 먹은 지 25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범모(이성민)는 제지업계 최고의 베테랑이었다. 그는 음악은 '바이닐'로만 듣고, 사진은 '필름'만 쓰고, 편지는 '종이'에만 쓴다. 범모는 철저한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온실에 틀어박혀 유일한 취미인 분재를 즐기는 아날로그 인간인 만수는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가 자신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내였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끼가 넘치지만, 남편에게 방치당해 이 산 저 산 뛰어다닌다는 아라(염혜란)는 범모가 제지업계에 재취업하기보다는 돈 많은 자기 아빠 도움을 받아 음악카페를 하길 바란다. 그녀는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려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시조(차승원)도 제지업계의 고급 기술자였다. 현재는 구둣가게 직원이지만, 제지업계 복귀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예술적인 분재 애호가 만수처럼 손재주가 좋았다. 더구나 시조의 딸은 리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만수와 같은 자리를 놓고 싸울만한 유력한 경쟁자였다.

처절하지만 어설픈 만수의 목숨을 건 구직활동은 인생처럼 슬픈 코미디다. 이 영화에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블랙 코미디적 순간들이 곳곳에 꽉 채워져 있다. 캐릭터 작명 등을 포함해 오카모토, 습자지 등 언어유희가 반짝이는 대사들과 배우들의 연기가 웃음을 유발한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무엇보다 고추잠자리 시퀀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우상 조용필 명곡을 원 없이 큰 소리로 전곡을 편집 없이 들려준다. 이 장면은 음악 요소와 배우 연기 합을 맞추기 위해 프레임 단위로 정밀하게 편집했다. 유치한 아이들 장난 같은 코믹함과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희비극이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선명하게 눈과 귀를 채운다. 

물려받은 유산을 사용하거나 혹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계속 이어가는 만수. 그의 행동은 최초의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을 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차선책이 있음에도 자기합리화에 매몰되어 선을 넘기 시작한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이 작품에서 박찬욱 감독만의 차별된 각색 특징은 이미 원작을 아는 관객들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안겨준다는 점이다. 만수가 상대하게 되는 경쟁자 숫자는 적어졌지만, 그들의 서사는 한층 확장됐다.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점은 만수 가족 부분이다. 

손예진이 연기한 현명하고 속 깊은 아내 미리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인물로 설계되어 대척점에 있는 염혜란의 아라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만수와 무거운 짐을 나눠서 진다. 결국, 다 이뤄낸 만수의 가족은 미리의 작품이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부모인 만수와 미리의 보호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폐 스펙트럼 딸 리원의 존재는 영화를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선의 가족극으로 이끈다. 박찬욱 감독의 의도에 따라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예언자적 존재로 설계된 리원은 다양한 복선을 던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룬 가족 서사가 아름답게 완성된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가장 아날로그적 인간이었던 만수는 노동자 모가지를 가차 없이 자르는 잔혹한 AI 도끼질에서 결국 살아남는다. 도태가 아닌 진화를 이뤄낸 만수는 승리자이자 생존자다. 환호하는 그를 보며, 저렇게라도 살아남고 싶다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밀려온다.

이 영화는 꽃잎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황폐해져 가는 심리적 여정의 종착지에 도달한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으로는 울 수밖에 없게 하는, 박찬욱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어쩔수가없다' ⓒCJ ENM
▲'어쩔수가없다' ⓒCJ ENM

 

제목: 어쩔수가없다 (No Other Choice)

원작: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액스'    

감독: 박찬욱

각본: 박찬욱, 이경미, Don McKellar, 이자혜

음악: 조영욱

출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외

제공/배급: CJ ENM

제작: 모호필름, CJ ENM 스튜디오스 

공동 제작: KG PRODUCTIONS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8분

개봉: 2025년 9월 24일

평점: 8.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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