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발전, 근본적 변화 예고…영화 속에 녹여내려 시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의 기자시사 및 기자회견이 지난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배우가 참석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유만수(이병헌)가 아내 이미리(손예진),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게 되면서 재취업 성공을 위해 벌이게 되는 사건들을 그린다.

먼저 박찬욱 감독은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인데 정말 오래 걸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30주년인 데다 개막작으로 오게 된 것은 처음이라서 설렌다. 참 감개무량하고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떨리는 마음을 안고 개막식에 참석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 작품의 인물들이 고집스럽게 제지업을 놓지 않는 것과 영화 산업의 현실이 맞닿아 있는 부분에 대해 "이 작품을 보고 영화인의 삶보다는 자신의 삶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다만, 제가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감정 이입한 부분은 보통 사람들은 종이 만드는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등장인물들은 자기 인생 자체라고 말하는 지점"이라며 "영화가 삶에 현실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일도 아니며 그저 2시간짜리 오락거리일 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가진 것을 다 쏟아부어서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영화 업계가 어렵다. 특히 다른 나라들보다 회복이 더딘 상태다. 이런 상태에 영영 머물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이런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국 영화계 회복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소설에 없지만 제가 보탤 만한 것이 떠올랐다. 하나는 코미디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하는 일을 가족이 눈치채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부분이 이 이야기를 훨씬 더 대담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레이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완전히 딱 결합해 바깥으로도 향하고 안으로도 향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역설도 있다. 아주 순수한 동기에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직업에 계속 종사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시작한 일이 도덕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부분을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시했던 미장센에 대해서는 "만수가 애정하는 집이 중요한 캐릭터다. 영화 속 집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미술팀이 아주 새롭게 개조해 정원과 온실을 꾸몄다"고 전했다.

주인공 유만수 역의 이병헌은 "이번 작품도 재미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제가 맡은 캐릭터는 아주 개성 강하거나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평범한 인물이 큰 상황에 부딪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극적인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또 그 결정을 실행해 가면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겪는다"며 "저는 촬영 내내 '만약 진짜 평범한 사람이 이런 극적인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감정 상태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지점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고 연기 주안점을 밝혔다.

만수의 아내 이미리 역의 손예진은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엄마처럼, 또 아내처럼 보이고 싶었다. 일상의 모습들이 과장되거나 특별히 꾸민 듯한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야기 속에는 비극적인 순간과 극적인 상황이 많지만, 미리는 생각보다 낙천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을 돌파하는 방식이 더 지혜롭고 현실적인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잘나가는 제지 회사 반장 최선출 역의 박희순은 "이 작품을 선택할 때 작품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도 크지만,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시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래서 감독님의 영화 세계를 엿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작품에 참여한 동기를 밝혔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한 소감에 대해서는 "감독님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는 점이었다"며 "마치 종이를 만드는 과정처럼 꾸준한 연습과 정성이 필요한 부분들을 아주 세심하게 챙기시는 모습에서, 제가 상상했던 감독님의 모습과 이 작품이 담고자 하는 의도들이 겹쳐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감독님의 유머였다. 아주 긴박하거나 적대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유머를 놓치지 않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 같은 정서를 가지고 계셨다. 감독님은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고 계시지만, 동시에 그런 한국적인 정서를 어떻게 담아낼지 늘 고민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구범모 역의 이성민은 "이번 영화에서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지점은 박찬욱 감독님의 의도와 디렉팅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저의 바람은 박찬욱 감독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흥행 성적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또 제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풍부한 감성을 소유한 구범모의 아내 이아라 역의 염혜란은 "박찬욱 감독님의 언어나 시선이 워낙 강렬하고 독창적이어서, 그 부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쓰신 책과 작품들도 다시 보면서 공부했다"고 작품에 참여하면서 신경 쓴 지점에 대해 설명했다. 연기에 중점을 둔 지점에 대해서는 "부부 캐릭터는 공통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었는데요. 어떤 장면에서는 마치 미리의 이야기를 대신한다는 지적도 있었고, 또 어떤 부분은 전혀 다른 지점도 있어서 그 균형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또한, 염혜란은 "아라의 역할은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반대 지점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관객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에 정당성이 있는지,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염혜란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신 중 하나인 고추잠자리 신에 대해서 "완벽한 콘티가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더해져 완성된 장면이었다"며 "사실 감독님이 처음부터 '고추잠자리'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틀어놓고 들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어떻게 붙여지고, 어떻게 완성될까를 계속 상상하면서 준비했다. 이병헌, 이성민 배우가 많은 아이디어를 내줘서 콘티 이상으로 풍부해졌다. 힘든 신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찍었다"고 촬영 비하인드를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 속 AI에 관한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AI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분명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 산업과 일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단계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발전 속도가 워낙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 조만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저는 이 알 수 없는 혼돈 상태를 드라마 속에 녹여내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만수가 취직한 그 공장이 어떻게 보이는지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각본 완성 단계에서 도입된 것이다. VFX 작업까지 마친 상태에서도 계속 만지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가 미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적 배경으로 옮기면서 예를 들어 집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가부장적인 제도와 사회적 풍습의 흔적 때문에 드러나는 만수라는 인물의 한계나 어리석음을 적절히 묘사하려고 노력했다"며 "한국 관객들은 다른 나라보다 더욱 잘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아이고, 저거'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지켜봐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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