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이란·중국 폐쇄적 국가 영화 제작자들 연대하고 힘 모아야"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이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참석해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모더레이터는 박성호 프로그래머가 맡았다.

오는 10월 1일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을 앞둔 이란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던 바히드가 자신을 지옥에 빠트렸던 한 남자를 상징하는 소리와 다시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복수 이야기를 그린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수상으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200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하면서 현존하는 감독 중 유일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앞서 지난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영화로 부산을 찾은 이후 아시아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서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 17년간 감옥에 갇혀 영화제에 올 수 없었다"며 "지난 30년간 한국은 표현의 자유, 영화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계속 도전하고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번 상은 그 투쟁 전선에 있는 모든 독립 영화인에게 바친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번 작품의 오스카 공식 후보 선정과 관련해 "영화를 만들 때 다른 영화제 출품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것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폐쇄적인 국가는 아카데미 출품할 때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이란, 중국 같은 일부 국가에서 일어난다. 이번 영화 제작자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 프랑스 공동 제작으로 출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06년 영화 '오프사이드'도 소니 픽쳐스가 출품하려 했는데 자국 상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출품을 포기했다. 저와 같은 독립 영화 제작자들이 함께 연대해서 자국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해결 방안에 대해 덧붙였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추모하는 말을 남겼다. 그는 "부산은 여섯 번 정도 왔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제 영화를 너무 좋아해 줬다. 출국 금지로 이란을 떠날 수 없을 때 저를 찾아줬다. 이란에 오셔서 저의 집까지 방문해줬다. 다시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도 했었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해줬을 때 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번에는 제가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영화 제작자가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면 사회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저는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서 저 자신을 찍은 경험도 있다. 그래서 제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영화의 모든 아이디어가 전부 제 내면에서 나오는 경험을 했었다"고 정부 검열 속에서 멈추지 않았던 영화의 열정에 대해 말했다. 

이어 "영화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택시 운전을 생각했었다. 그런 아이디어로 택시 안에서 카메라를 숨기고 찍는 '택시'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며 "저는 그 누구도 영화 제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의 제작을 막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 '그저 사고였을 뿐'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심우진 기자

그는 저항의 힘 원동력에 대해 "저의 힘은 제 아내에게서 나온다. 영화를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가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아마도 아내가 저를 버릴지도 모르겠다"며 "영화를 만들어야 저는 아내를 지킬 수 있고 결혼을 유지할 수 있다. 저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영화 산업과 관련해 "제 세대는 영화 제작을 할 때 요즘 젊은 세대가 누리고 있는 혜택, 제도, 기술들을 갖지 못했다"며 "매우 많은 가능성과 시설들이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굉장히 혁신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열심히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 ⓒ그린나래미디어
▲'그저 사고였을 뿐' ⓒ그린나래미디어

자파르 감독은 "영화 제작자들은 책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의무가 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영화는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 생각에는 전 세계 영화산업의 95%가 그런 작품을 제작한다. 다른 유형은 메시지를 주면 관객이 따라오는 영화다. 이런 영화가 나쁜 영화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모두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 제작자는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제작할 것인가 정하는 것이 첫 번째다. 영화는 제작자가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

끝으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그저 사고였을 뿐'을 전 세계 최초 개봉으로 만나게 될 한국 관객들에게 "많은 관객이 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