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휘순, 손예진, 이병헌, 박찬욱 감독,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사진 왼쪽부터).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휘순, 손예진, 이병헌, 박찬욱 감독,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사진 왼쪽부터). ⓒ심우진 기자

박찬욱 감독 "각자의 이유로 서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비극 보여드리고 싶었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제작보고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배우가 참석해 이번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오는 9월 개봉을 앞둔 '어쩔수가없다'는 드라마틱한 전개, 견고한 연출, 그리고 아이러니한 유머의 블랙 코미디까지 더해진 작품이다. 평범한 인물이 갑작스러운 해고라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가는지를 박찬욱 감독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재취업을 위한 경쟁을 이어갈수록 극단적인 선택지에 직면하는 만수의 모습과 그가 겪는 내적 갈등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심우진 기자

박찬욱 감독은 "소설 원작을 처음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가 거의 20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이 작품에만 매달려 온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결국 이렇게 성사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빨리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63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에 공식 초청됐으며,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나이가 들다 보니 뭔가 했다 하면 20년 만이라고 말한다. '친절한 금자씨'가 경쟁 부문에 간 지 20년 된 건 맞지만, 그 뒤에 이병헌 씨와 '쓰리 몬스터'로 비경쟁 부문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간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한국영화가 경쟁 부문에 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30주년 개막작으로 초대받은 것은 특히 영광스럽다. 한국영화 부흥과 함께하는 역사라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원래 사춘기 시절부터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이것저것 읽었다. 이렇게까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작품이 없었다. 대개 미스터리 장르는 누가 범인이냐 수수께끼가 풀리고 나면 그냥 다 해소돼 버려 다시 음미하기엔 좀 그렇다"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수수께끼는 없다. 멀쩡했던 보통 사람이 사회의 시스템에서 이 사람이 이렇게 내몰리게 되는 과정과 여러 가지 심리 장치가 잘 되어 있다. 희생자들은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감독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씁쓸한 비극이었는데 새로운 종류의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 만한 가능성이 보였다.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이 있지만, '내가 만든다면 더 좀 더 크게 웃긴 그런 유머가 많이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제작 동기를 밝혔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병헌.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병헌. ⓒ심우진 기자

◆ 이병헌 "다양한 감정 느끼는 묘한 경험하게 될 것"

평생 헌신한 직장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진 후 남몰래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는 만수 역의 이병헌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감독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웃음 포인트가 너무 많았다. '이거 웃긴 거죠?'하고 여쭸더니 감독님이 '그러면 더 좋다'고 말씀하셨다"며 "그저 그냥 웃긴 코미디가 아니다. 감독님은 '슬프면서 웃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들면서 우스운 상황들이 생긴다. 다양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는 아주 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번 작품을 설명했다.

그는 "평범한 인물이 극단적인 상황을 맞게 됐을 때의 심리나 행동 변화들이 어떻게 하면 관객 감정 이입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다가갈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어느 순간 빠져나오게 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며 캐릭터 표현에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손예진. ⓒ심우진 기자

위기의 순간 더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의 손예진은 스크린 복귀작으로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박찬욱 감독님과 작품을 해보고 싶어서다.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컸다. 강렬한 서사의 이야기였다. 대본을 덮고 '이거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들면서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캐릭터와 관련해서는 "만수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 역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엄마나 이혼녀 역할을 해봤는데, 실제 경험한 것은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없다고 느꼈다"며 "아이와 있는 저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엄마의 모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족을 책임지고 싶어 하고 뭔가 따뜻한 엄마 역할을 해주고 싶은 그런 긍정적인 엄마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병헌, 손예진.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병헌, 손예진. ⓒ심우진 기자

이병헌은 "제가 촬영장에서 본 손예진 씨 모습은 달랐다. 딸로 나온 아이가 촬영 중에 계속 저희 둘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손예진 씨는 대답을 안 해주길래 '예진 씨, 물어보면 답을 좀 해줘요'라고 했더니 '그건 선배님이 맡아서 하세요. 저는 감정 몰입을 해야 해요'라고 하더라"며 촬영 비하인드를 전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에 대해 손예진은 "아이가 너무 호기심이 많아 리허설이나 촬영 직전까지 계속 물어봤다. 이병헌 선배님은 대사가 없었지만, 저는 감독님의 디테일한 디렉팅을 따라야 하는 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늘 호기롭고 다 가진 듯한 모습으로 만수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제지 회사 반장 선출 역의 박휘순은 이번 작품에 대해 "너무 재미있고 굉장히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았다. 극적인 갈등이 고조될수록 웃음의 강도가 더 커지면서도 페이소스가 있다. 박찬욱 감독님이 쓰셨다는 게 의아할 정도로 굉장히 독특했다"며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웃음 포인트가 많다. 박 감독님이 이번에는 칸을 포기하고 천만을 노리시나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성민, 염혜란.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성민, 염혜란. ⓒ심우진 기자

만수의 잠재적 경쟁자인 제지업계 베테랑 범모 역의 이성민은 "캐릭터에 끌린 게 아니라 박찬욱 감독에게 끌렸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무슨 역할인지도 몰랐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무조건 해야 한다'하고 결정했다"고 작품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범모의 아내인 아라 역의 염혜란은 "시나리오를 보고 의아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캐릭터였고 '아름다운 미모'라는 말이 있어서 이 역할이 맞나 했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범모 캐릭터에 대해서 "제지 회사를 오래 다녔다. 종이에 비유하자면 원고지 같은 남자다. 전에는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원고지다. 그래서 불만이 좀 많은 상태"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만수의 또 다른 잠재적 경쟁자이자 제지업계의 실력자 시조 역의 차승원은 "저는 전체 영화에서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나오는 배우분이 47명 정도 되는데 제가 여섯 번째라서 거기에 아주 큰 의미를 두고 참여했다.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다 해주셔서 나온 모습을 저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시조 캐릭터와 관련해 "이런 캐스팅이 사실 어렵다. 등장 시간은 짧은데 비중은 심리적으로 커야 한다. 그래서 어렵게 캐스팅을 부탁했는데 해주겠다고 해서 제일 고마운 사람"이라고 전했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이병헌, 손예진(사진 왼쪽부터). ⓒ심우진 기자

◆  박찬욱 감독 "보편적인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주의 깊게 봐줬으면 하는 포인트에 대해 박 감독은 "만수는 자수성가한 인물인데 돈을 모아 폐허 같은 집을 사서 부부가 싹 고쳤다. 실직 상황에서 집을 팔아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봉착하자 그것만큼은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래서 집을 하나의 캐릭터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며 "60년대 70년대에는 똑같은 집을 지어 파는 집 장사라는 게 있었다. 불란서 풍이라고 부른 엉터리 유럽 주택인데 지금 와서 보면 독특한 절충적 건축 양식이라 매력이 있다. 여기에 나름 브루탈리즘 같은 다른 양식도 갖다 붙여 세상에 없는 독특한 집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사용한 음악에 대해서는 "재즈 요소도 있고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제일 모던한 편이다.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했다. 출연료도 깎고 영화 제작비를 정말 쥐어짜서 아끼고 아껴서 녹음 비용을 겨우 마련했다. 여기저기서 녹음을 해봤지만, 음질도 연주자 실력도 정말 최상"이라고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의 제목을 '도끼'다. 책 추천사를 쓸 때 영화로 만든다면 제목을 '모가지'로 바꾸겠다고 했다. 근데 어쩔 수가 없게도 '도끼'와 '모가지'를 모두 쓸 수 없게 됐다. 잔인한 신체 훼손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악마를 보았다' 이병헌 씨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바꾼 좀 비겁한 정서가 담겨있지만, 나쁜 짓을 하면서도 합리화하는 인물을 들여다보고 면밀하게 느끼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꼭 만수의 마음만을 표현하는 제목이 아니다. 심지어 만수를 해고하는 회사 중역 입에서도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슬픈 일이다. 그걸 행하는 사람들도 늘 하는 말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충돌해서 빚어내는 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심우진 기자
▲'어쩔수가없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휘순, 손예진,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 차승윈(사진 왼쪽부터). ⓒ심우진 기자

OTT가 아닌 극장 개봉 영화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보수적이라 그렇다. 어려서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영화관은 기본값이었다. 작은 소리나 색감, 화면 구석의 세세한 부분까지 시간을 들여 매만지는 공들이는 작업은 결국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 그리고 중간에 멈출 수 없는 폐쇄된 극장 환경에서 비로소 제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긴 이야기를 담아야 할 때는 시리즈라는 형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번 작품은 극장에서 관객과 마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언제나 천만 관객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번에도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영화 만들 때 오로지 한국 관객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나 농담보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영화를 특히 고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좀 오래 살아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다. 50년, 100년 후에 미래에도 찾아보는 작품을 하고 싶어서 더 극장 영화에 매달린다"며 "미래에도 웃고 울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당대의 외국인에게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외국인에게 유심히 봐달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나라 가요가 많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조용필, 김창환, 배따라기 노래가 참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 작가 조합(WGA) 제명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더 드릴 말씀이 없다. 저의 작가로서의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이나 제한이 없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은 "실직과 해고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무겁고 심각하기만 한 영화로 예상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스운 구석들이 있고, 웃기면서도 슬프고 또 슬퍼서 웃긴 지점이 있다"며 "다만 누군가를 안타까운 상황에 던져놓고 그것을 비웃는 식의 웃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 안에 있는 감정이고, 이웃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웃을 수 있고, 또 울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라며 제작보고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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