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호' 요리연구가의 요리와 인생 담은 다큐멘터리
- 보석같은 요리들을 통해 정을 나누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인간이 음식을 만들고 이를 먹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본능이다. 그렇기에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식문화가 고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발전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는 신과 조상 그리고 손님과 부모님에게 정성 들여 만든 푸짐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에 정서적으로 큰 의미를 둔다.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노동력이 투입되기도 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남에게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의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공을 들여 손수 음식을 장만해오던 식문화의 전통은 산업화의 물결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저렴하고 간편하게 취식이 가능해진 인스턴트 식문화와 융합한다.
급격한 식품공학의 발전은 유화제, 인공감미료, 보존제 등 전에 없던 식품 첨가물질을 만들어냈다. 인류는 자극적이면서도 새롭고 강렬한 맛과 식감의 유혹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나 식품산업의 성장이 가져다준 풍요로운 삶은 비만 등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최근 들어 천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갈망하며 건강한 맛과 요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임지호' 요리연구가의 등장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그리워하던 이들을 기쁘게 했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재료 삼아 요리를 만들어내는 맛의 탐험가이자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하는 모험가라고 할 수 있다.
(※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숨겨진 내면의 쓰임새를 찾아내는 요리사
좋은 식재료로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모든 요리사의 목표다. 영화 속 임지호 요리연구가 역시 그렇다.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자연 속에서 식재료를 찾는 것에 골몰하는 자연요리연구가라는 점이다. 딱히 구하기 힘든 고급 식재료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연 속에서 식재료로 쓰지 못할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산속에서 오랜 세월 각종 나물을 채취해 먹어온 주민들조차 "이건 못 먹어"라고 단정했던 잡초를 가지고 자연 그대로의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선보이는 식재료의 맛에 탄복한다. 겉모습이나 고정관념에 신경 쓰지 않고 내면에 숨겨진 쓰임새를 찾아내는 그가 아니었다면 평생 맛보지 못했을 음식들이다.
박혜령 감독의 영화 '밥정'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궂은 날씨에도 세상천지를 떠돌아다니면서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요리사인 그의 모습과 함께 인간 임지호의 개인사를 차분히 서술한다.
임지호 요리연구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대를 잇기 위해 두 번째 부인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12살에 알게 된다. 뒤늦게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의 유년시절 속에는 냉대와 업신여김이 존재했을 것이며, 성인이 돼서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버려진 들풀을 식재료로 탈바꿈 시키듯 요리를 통해 자기 내면의 참된 가치를 끄집어내 세상에 알린다.
◆ 세 명의 어머니에게 세 가지 감정을 담은 요리
그는 오랜 방랑 속에서 요리를 매개로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한 인물이다. 그렇게 그는 어촌과 산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격의 없이 담소를 나누고 정을 키운다.
사람을 향한 정과 모정에 대한 그리움 한구석을 자신의 지혜로 엮어만든 음식을 주변에 듬뿍 대접하면서 채워나가는 것이다.
"같이 있으면 더 좋은데"라며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그는 매번 "아름답다"라는 말을 꺼낸다.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은 그에게 분명 상처를 주었을 터인데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거친 손등을 쓰다듬으며, 주름진 얼굴을 매만지면서 그렇게 아름답다고 되뇔 뿐이다
그가 빚어내는 요리들이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이 가진 찬란한 내면의 빛남을 따오기 때문일듯하다.
임지호 요리연구가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담아 3일 동안 한상차림을 한다. 평생 본 적 없는 생모에게는 더 없는 그리움을, 마음으로 낳은 자식으로 여겨 자신을 키워준 양모에게는 미안함을, 그리고 여정 속에서 모자의 정을 쌓은 '김순규' 할머니에게서는 아쉬움을 음식에 담아 올린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의 요리를 맛볼 수는 없을지라도 그가 만든 아름다운 음식들의 모습과 그의 모정을 향한 마음은 스크린 통해 느껴 볼 수 있다. 오늘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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