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 '뷰티풀 마인드' 론 하워드 감독 연출…J.D. 밴스 원작 실화 영화

- 미국 제조산업 쇠퇴와 함께 몰락한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 가족 이야기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시즌 11까지 장수하며 올해 종영한 시트콤 드라마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는 제목 그대로 현대 미국 가정의 모습을 유쾌하게 묘사한다.    

이 드라마 안에서는 대표적으로 세가지 형태의 가족이 등장한다. 우선 매우 전형적이며 미국적인 백인 가족, 라틴계 이민자가 미국사회에 성공적으로 녹아든 재혼 가족 그리고 동성부부 가족이다.

이들 가족들은 형태가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모두 가족애로 똘똘 뭉쳐 있으며, 특히 무엇보다도 자녀들은 행복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과 복지를 누리고 있다. 미디어로 흔하게 접하는 미국 중산층 이상에 속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는 웃음을 주는 시트콤인 ‘모던 패밀리’와는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꿈도 희망도 없이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찌들어 정부가 주는 식권인 ‘푸드 스탬프(Food Stamp)’에 의존해 살아가는 애팔래치아 산맥 러스트벨트 지역 저소득 백인 계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사회는 그들을 레드넥(Rednecks),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그리고 힐빌리(Hillbilly)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힐빌리들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 백인 노동자 출신 예일대생 힐빌리

예일대 법대를 다니는 대학생 ‘J.D. 밴스’(가브리엘 바쏘, 이하 J.D.)는 세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2만 1,000달러가 넘는 학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반드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J.D.는 법무법인 채용 면접에 참가하지만 처음 접하는 상류사회 문화에 당황한다.

와인을 선택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테이블 매너를 몰라 식탁 위에 놓인 여러 개의 포크와 스푼을 두고 의아해한다. 전화기 너머로 여자친구 ‘우샤’(프리다 핀토)에게 ‘좌빵우물’ 매너를 전수받으면서 장난에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청년이다.

J.D.는 미국 주류사회 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다. 쇠락한 철강 도시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켄터키를 오가며 자란 그는 빈곤한 백인 노동자 가정의 힐빌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J.D.는 이부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로부터 어머니 ‘베브’(에이미 애덤스)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입원했으니 고향인 미들타운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는 J.D.는 고민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베브는 촌구석이라며 싫어했지만 J.D.의 가족은 원래 켄터키주 잭슨 출신이었다. ‘할머니’(글렌 클로즈)가 켄터키를 떠나게 된 이유는 13살에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명예를 중요시하고 폭력이 일상인 힐빌리 가족 문화에서는 용납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보 홉킨스)와 함께 23번 국도를 따라 오하이오로 도망친 이래로 J.D.의 가족은 미들타운에 정착해 살아왔다.

힐빌리 만의 애칭인 할모(Mamaw), 할보(Papaw)로 불리는 조부모 세대까지 만해도 러스트벨리 공업지대에 속했던 미들타운은 활기가 넘쳤다. 지역 산업을 이끌던 대기업인 철강회사 암코스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코스틸이 1989년 가와사키스틸과 합병하면서 AK스틸로 이름을 바꾼 것은 시대 변화의 상징이었다. 미들타운은 일본·중국 등의 값싼 제품들에 경쟁력을 잃은 미국 제조산업 몰락과 운명을 함께 했다. 결국 지역경제는 무너졌고 빈민가 지역이 점차 확대됐다.  

18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남부에서 대대로 소작농, 광부 그리고 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혈통인 J.D. 가족에게도 그 여파는 그대로 전해진다.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과 길들여진 무력감이 지배하는 힐빌리 가정에는 마약, 알코올 중독 그리고 가정폭력이 만연했다. 그들 중 대학 진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J.D.의 가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정폭력과 범죄에 노출되어 비행청소년으로 자랄 가능성이 다분한 J.D.의 인생을 구원한 것은 터미네이터 같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J.D. 곁에서 미시시피(Mississippi) 철자도 쓸 줄 모르는 불량한 친구들을 몰아낸다.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으니 포기하지 말라"며 그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 J.D.는 정부가 주는 빈민 지원 음식을 할머니와 나눠 먹으며 그 기회를 찾아낼 결심을 한다. 할머니의 집에서는 아무도 싸우지 않았고 약에 취한 사람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 가정폭력 그리고 마약에 빠진 어머니

반면, 베브는 좋은 어머니라 할 수 없었다. 아들 J.D.가 경기 성적을 줄줄 외울 정도로 좋아하는 조 몬태나의 풋볼카드를 돈을 내고 사주는게 아니라 자식 눈 앞에서 훔쳐서 준다. 아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만나는 남자도 계속 바뀐다. J.D.는 누구를 새 아버지라 불러야 할지 포기한지 오래다.

18살 이후로 아이들만 생각하며 살았다는 그녀지만 자녀들에게는 손찌검하기 일쑤다. 난폭함과 자상함의 이중적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던 불안정한 심리의 어머니는 끝내 마약중독자로 전락한다.

베브는 자신이 평생동안 잘한 것은 린지와 J.D.를 낳은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을 지 몰라도 자기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의 입원 소식에 미들타운에 도착한 J.D.는 약물중독 재활시설 입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어머니의 거처를 두고 고민한다. 장성한 아들 앞에서 마약에 빠져 이성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초라하고 가엾다.

베브는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는 아들 J.D.에게 곁에 있어 달라며 손을 뻗는다.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는 J.D.의 얼굴에는 숨 막힐 듯한 답답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 론 하워드 감독, "가족 문제에 초점 둔 영화"

영화는 과거와 현재 시점을 교차 편집하면서 J.D. 집안의 가족사를 조명한다. 이와 함께 백인이지만 라틴계나 흑인보다 더 빈곤하고 염세적 환경에 놓여있는 미국 내 하위 계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J.D.와 그의 누나 린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를 통해 폭력과 약물중독의 위험에 노출되고 ‘아동기 부정적 생애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을 겪게 되는 비극적이고 슬픈 모습이 묘사된다. 이와 함께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와 이모 역시 같은 일을 겪었던, 폭력과 빈곤의 대물림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그들과 유사한 모습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으로 빈민의 도시가 된 디트로이트에서 일하는 빈곤한 백인 노동자가 등장하는 ‘8마일’(2003)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 공업지대에서 충분히 안정된 직장에 속해 가정생활을 꾸려가던 과거 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이 산업구조조정으로 어떻게 곤궁하게 몰락해 버렸는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빈부 격차와 사회계층 간의 모습을 가족을 통해 묘사한 영화라는 점에서는 ‘기생충’(2019)과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인 J.D. 밴스의 동명 자서전은 2016년 발표되어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민주당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층들이 공화당으로 돌아선 이유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기도 한다. 

음악을 담당한 한스 짐머와 데이비드 플레밍은 원제목 그대로의 가족 위기와 사랑을 담은 슬픈 노래(哀歌) 같은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려준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인 존 내시의 실화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론 하워드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가족의 문제에 가장 초점을 두고 연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대, 중독, 경제적 어려움 등이 가족들을 무너뜨린다”며 “이런 모든 게 전 세계 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론 하워드 감독은 “실제 상황과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