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 세계에서 손꼽히는 벽지학교에 부임한 교사 이야기 담은 수작

-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대자연과 삶의 서사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1972년 즉위한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부탄 제4대 국왕은 2000년대에 들어 스스로 자신이 가진 무소불위의 절대왕권을 포기하고 민주주의 도입에 앞장선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선량한 통치를 이어온 부탄 왕가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던 국민들은 오히려 이런 국왕의 민주화 행보에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계속 왕정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내부의 부패한 왕권과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내전조차 불사해왔기에 이는 유례가 없던 경우다.

이렇게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온 국왕은 1979년 인도 뭄바이 공항에서 기자단과의 인터뷰 중 “나는 국민총생산(GNP)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민총행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한다.

이를 계기로 부탄은 1970년대에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부탄 정부는 행복정책 4대 목표로 환경보호, 문화보존·진흥, 공평한 사회경제적 발전, 좋은 통치의 기치를 내걸었고, 전통과 현대문명 그리고 물질과 정신적 행복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이끌었다.

이 가난한 나라의 풍요에 찬 아이디어는 전 세계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 행복한 나라 ‘부탄’ 그러나 떠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

대외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부탄.

하지만 이 평화로운 은둔의 나라도 수도 팀푸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서구 문화 유입에 따른 가치관 변화, 빈부격차, 마약과 실업문제 등 다른 국가들과 다르지 않은 사회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복지 측면에서는 의료 시스템이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지적된다. 경우에 따라 환자가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가야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은행 자료(2017년 기준)에 따르면 부탄 국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71.13세로 한국 82.63세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65세 생존율 경우 한국은 94.99%인데 반해 부탄은 70.89%로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이런 현실 앞에 적지 않은 부탄의 지식층 젊은이들은 경제부국들을 동경하며 부탄을 떠나고 싶어한다.

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 ⓒ슈아픽처스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데뷰작 ‘교실 안의 야크’(원제 Lunana : A Yak in the Classroom)는 이러한 부탄의 현실을 여과없이 그대로 반영한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유겐 도르지’(셰랍 도르지)는 항상 습관처럼 헤드폰을 끼고 다니며 음악에 빠져 사는 청년이다. 그의 직업은 교사지만 가수를 꿈꾼다.

청년실업난을 겪는 부탄에서 교육공무원은 그래도 꽤 안정적인 직업에 속한다. 그럼에도 영연방 국가인 호주로 떠나 멋진 가수로 성공하길 꿈꾼다. 사실 음악적 재능도 갖추고 있기에 마냥 헛된 바람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보니 '유겐'이 교사 직무에 성실할 리 없다. 교육부 장관과 면담하는 자리에서도 질책하는 잔소리에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성의 없는 사과만 할 뿐이다.

“저는 교사 체질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유겐'에게 장관은 루나나 지역학교로 갈 것을 명한다. 루나나는 팀푸에서 출발할 경우에도 가사 시내까지 차로 4시간 넘게 이동한 후 약 6일 동안 산악지대를 걸어서 통과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해발고도 4,800m의 오지 마을. 인공위성의 도움 없이는 인터넷과 이동통신 연결은 꿈도 못 꾼다. 전기 역시 오직 태양광 에너지에 의존할 뿐이라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런 외딴 곳에서 교사 공무원 의무계약기간 5년 중 마지막 1년을 채우라는 문책성 인사인 것이다. 마뜩잖아 입술만 배죽거리던 '유겐'은 고산병이 있어서 못 가겠다며 궁색한 핑계를 대본다. 하지만 그건 마치 영국인이 오아시스 노래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씨알도 안 먹힌다. 그는 호주 안내책자를 보며 이 시련이 빨리 끝나기 만을 바란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유겐'이 밤 늦게 가사에 도착하자 미리 와있던 루나나 마을의 ‘미첸’(유겐 노르부 렌덥)은 그를 살갑게 맞이한다. ‘미첸’은 루나나로 가는 길이 강 따라 걸어가는 수월한 코스라는 설명에 덧붙여 “경치가 굉장해서 길이 끝나는 게 아쉬울 것”라고 한다. 

이 말은 철석같이 믿은 ‘유겐’은 루나나를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것이 '미첸'의 선량한 배려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새로 부임하는 학교 선생님에 대한 기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들떠 있다고 말하는 '미첸'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릴 정도로 루나나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유겐’. 그는 마을에서 2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환영 나온 마을사람들을 보고도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마침내 루나나에 도착해 폐건물 같은 학교와 열악한 환경을 마주한 그가 곧바로 선택한 것은 ‘포기’였다. 마을 사람들의 실망에 아랑곳하지않고 부임 첫 날부터 다시 도시로 되돌아갈 것을 선언한 그는 불편과 불만이 가득한 마을에서의 밤을 보낸다.

이윽고 아침이 되었을 때 방문을 두드리며 그의 눈앞에 나타난 학급 반장 ‘펨잠’(펨잠). 이 당찬 소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유겐'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 교사 '유겐'을 통해 바라보는 삶과 행복의 의미

아무리 제1외국어라고는 해도 일상에서 또래들보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부탄 전통음악에 귀를 막아버리는 ‘유겐’은 전통보다는 서구 문화에 익숙해진 부탄 청년층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방전된 아이팟과 헤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벗어 던지고 마을 아가씨 ‘살돈’(켈텐 라모 구롱)이 부르는 ‘야크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전통을 되돌아보면서 대자연 속에 녹아들게 된 ‘유겐’은 자신의 지친 영혼을 되돌아보고 안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라는 교사의 참된 직업가치관과 소명의식도 함께 깨닫게 된다.

방수 등산화는 커녕 비닐장화만 구할 수 있어도 껴안고 잘 정도로 기뻐하며, 도시에서라면 흔해 빠진 학용품에 행복해 하고, 야크가 인간에게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해 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이스털린의 역설’과 ‘안분지족’의 삶과 행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교실 안의 야크.ⓒ슈아픽처스

이 영화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전혀 없는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선생 김봉두’(2003)와 닮은 꼴이기도 하다. 플롯면에서 보면 말썽꾸러기가 어느 소박한 가족 혹은 집단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 무리에 동화되어간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잔잔하고 차분한 관조적 연출은 어느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서적 치유의 과정 한가운데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또한 마을사람들과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사운드믹서 ‘데이비드 스티븐스’와 사운드에디터인 ‘두 치 투’, ‘이 첸 치앙’이 협업한 음향 결과물은 관객을 고산지대 루나나 마을 한가운데로 공간이동 시킨다. 

특히, 대만 출신 사운드 디자이너인 '두 치 투'는 '2046'(2004), '밀레니엄 맘보'(2001), '공포 분자'(1986) 등 중화권 영화계에서 80년대부터 활약해온 베테랑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잠시나마 험준한 산맥 저편 순진무구한 소녀 ‘펨잠’이 사는 루나나 마을 주민이 된 듯한 착각에 잠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영화에서는 '유겐'이 머무르는 장소 몇몇 곳의 해발고도와 인구수에 대한 데이터를 자막으로 보여 준다. 그가 속한 곳의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참된 교사로서의 삶과 행복감은 커졌기에 이루고자 하는 가수의 꿈은 과연 어느 높이에서 성취될 지 궁금해진다.

수입·배급을 맡은 슈아픽처스의 박상백 대표는 “많은 분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을 만큼 지친 상황에서 이 영화 속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정신적 힐링에 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9월 30일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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