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 이정현·양동근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복합장르 SF 코믹 스릴러

- 다양한 영화의 오마주와 함께 국내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르적 시도 돋보여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서양의 격언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인간이라면 결국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한없는 욕심과 교만함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설파할 때 자주 거론된다. 평생을 가도 못 쓸 거대한 부를 축적했든 나는 새도 떨어뜨릴 명성과 권력을 쥐었든 인간은 탯줄을 끊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을 부여받은 생명체임을 자각하고, 항상 겸손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며 신과 죽음에 대해 경외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려 한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그 격언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 코믹한 ‘생활 개그’로 시작해 ‘SF 액션’으로 달려가다

첨단 IoT 기기들과 깔끔하고 단정한 인테리어에 둘러싸인 신혼부부의 집에는 고급스러움이 흐른다. 남편 ‘만길’(김성오)은 늦잠을 자는 아내 ‘소희’(이정현)를 다정하게 깨운다.

만길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A.I.(인공지능)가 검색해 준 레시피를 보고 만든 된장찌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내의 평가를 기다린다. 이윽고 그 맛에 감탄하며 맛있게 식사하는 아내 모습에 뿌듯해하는 만길. 알콩달콩한 둘의 사랑은 낮에도 뜨겁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모습은 잠시일 뿐. 만길의 외도를 의심하게 된 소희는 흥신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을 만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 헤드’(1977)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닥터 장은 능숙한 언변으로 새로운 고객 소희를 맞이한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그는 '미스터리 연구소'라는 오컬트 센스의 간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흥신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본업과는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자격증을 잔뜩 내걸고 있어 미덥지 않아 보이는 닥터 장에게 소희는 남편 만길의 뒤를 캐 줄 것을 부탁한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해 다음날까지 21시간 동안 이어지는 초인적인 그의 일과는 상상이상의 기괴함으로 가득했다. 그와 함께 의심스러운 남편의 과거까지 드러난다. 이 사실을 알고 안절부절하는 소희에게 서서히 위험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라이터를 켜라'(2002)' 등을 연출했던 장항준 감독 원작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신정원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담당한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도입부는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담아 소소한 생활 개그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영역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액션 장르로 호기롭게 방향을 급선회한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 '신정원 감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캐릭터들

신정원 감독의 데뷰작 ‘시실리 2km’(2004)를 본 관객이라면 그가 '나이 개그' 등을 비롯해 전작의 몇몇 부분을 이 영화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재활용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만길과 닥터 장에게서는 시실리 2km의 석태(권오중)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재미있다.

신정원식 캐릭터들은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거나 혹은 허세에 차 있다. 아니면 남 몰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캐릭터들이 '점쟁이들'(2012) 이후 8년 만에 개성있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스크린에 재등장한다.

단역 영화배우 일을 하는 ‘양선’(이미도)은 강한 사투리 억양으로 허세를 남발하지만 뻔하게 주변인들에게 실상을 간파 당한다.

그런 양선이 동창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소희에게 “서울년 다 됐네”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하지만 양선과 달리 차분하게 서울 말씨로 소희가 늘어놓는 남편 스펙 자랑에 동창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눈빛이 오간다.

양선은 이에 지지 않고 남자친구 자랑을 한껏 하지만 돌아오는 건 숨죽인 비웃음들. 이 부분에서 동창들 중 가장 지적일 것 같은 이미지의 소희만이 양선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허당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소희의 위기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창 ‘세라’(서영희). 센 언니 캐릭터인 그녀 역시 신정원식 영화에 딱 맞는 인물이다. 

여러 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그녀는 전 남편들을 토막살해했다는 황당한 소문을 부정하지만 말 끝자락에 애매한 여운을 남긴다. 극 중 종횡무진하는 그녀의 행동과 말들을 되짚어보면 ‘과연 루머이기만 할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젠더 이슈를 담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소희, 양선, 세라가 주축을 이루는 플롯들은 여성영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배드가이(Bad Guy)'가 선택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만길과 같은 배드가이 빌런들에 대항해 닥터 정이라는 희대의 개그 캐릭터와 함께 조화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신정원 감독만의 변함없이 유니크한 연출 스타일이 큰 빛을 발한다. 불쑥 튀어나오는 트릭 마술처럼 기대하지 않던 상황에서 뜬금없는 웃음을 짓게 하고, 여지없이 심리적 맹점을 찌른다. 이 정신없는 소동극은 그의 전작들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움을 갖추고 완숙해졌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TCO더콘텐츠온

◆ 다양한 영화들의 오마주를 발견하는 재미

이 영화는 수많은 SF 영화의 이미지를 오마주 한다. 시작부터 '에이리언' 시리즈나 '라이프'(2017)같은 SF 스페이스 크리처 공포물 장르의 이미지와 함께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패러디한다.

여기에는 배경음악으로 '네순 도르마(Nessun Dorma)'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이 오페라 곡이 담고 있는 ‘내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아무도 잠들 수 없다’는 이야기와 연결된 메타포를 알아차릴 즈음에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립 K 딕 소설 원작의 영화 ‘임포스터’(2001)를 거쳐간다. 그리고 그 끝이 마침내 '블레이드 러너'(1982)에까지 도달함에 놀라게 된다.

물론, 영화제목 자체에서 이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연상되는 것은 기본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자들 바람피우지 말자” 라고 서슴없이 답하는 신정원 감독의 연출은 확실히 독특하고 독보적이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 이후 외계인 소재 SF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한국 영화계에서 이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9월 29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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