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자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 ‘안나 제거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작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트랜짓’(7월 2일 개봉)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불안하게 울려 퍼지는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진행하는 가운데 도시 봉쇄가 시작되자 난민 신분인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에게도 시시각각 체포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게오르그는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바이델이라는 작가에게 아내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가 묵고 있다는 호텔을 찾아가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상황에 휘말린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비점령지역이자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바이델의 아내 ‘마리’(파울라 베어)를 만나게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게 된다.
◆ 1940년대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
‘트랜짓’은 구 동독 출신 작가 ‘안나 제거스’의 나치 치하 경험을 토대로 한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감독인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원작이 가진 특징을 살리면서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가져오되 현재의 도시 모습과 생활의 일부 차용하고 상황을 전복시켜놨다.
정황 상 전쟁 중임이 명확하지만 전장의 포화나 총성은 없다. 독일 나치나 유태인 수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묘사도 없으며, 심지어 주인공 게오르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망명자.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이 영화는 대체 역사물이나 SF장르에 많은 패러렐 월드물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자동차나 거리의 모습은 21세기의 것 그대로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개인 컴퓨터 같은 디지털 제품은 등장하지 않는다.
직접 쓴 손편지와 타이핑한 서류가 오가는 것이 일상이며, 라디오가 보편적인 미디어인 점 등은 1940년대의 시대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놨다.
이러한 제한된 퓨전적 설정에는 나치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인 뮌헨의 동판 보도블록 ‘슈톨퍼슈타인’을 빗대어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목도한다”고 한 감독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난민으로 떠도는 게오르그에게 정착할 곳은 없었다. 죽은 동료 망명자의 가족과 친해질 수는 있었어도 그들 곁에 머물러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마리만이 유일한 희망인 셈.
마지막 탈출구가 돼버린 마르세유에서 망명을 위해 신분세탁을 하는 게오르그의 모습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의 여주인공인 신조 쿄코의 모습이 겹쳐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게오르그는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정도일 뿐.
삶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가 하면 포기와 권태, 부끄러움, 무력감이 공존하고 파시즘의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
그 속에서 위조된 신분으로 주변을 속이고 마리와의 사랑을 꿈꾸며 멕시코에서의 새로운 삶을 원하는 게오르그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죠?”라는 마리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 채.
마르세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부터 게오르그와 주변인들의 모습을 건조하게 설명하던 인물의 정체를 관객들이 알아차릴 즈음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
“누가 먼저 잊게 될까? 떠난 사람일까? 남겨진 사람일까?”라며 “남겨진 사람은 상대를 못 잊는다”고 한 마리의 대사는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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