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다양한 장르 간 결합…완성도 높은 연출과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 영상

- 상식을 뒤엎는 인버전…복잡한 이야기 구조 이해가 관건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타버린 성냥개비가 불타기 전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이다. 영화 ’테넷’은 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전통적 첩보영화와 SF물 간의 장르적 결합

'테넷'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첩보물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른다.

초반 오페라하우스 장면에서부터 강한 정의감과 함께 인본주의적 면모를 보이며 초국가적 범죄 조직과 맞서는 '이름 없는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거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빌런인 '안드레이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설정, 007시리즈의 Q를 떠올리게 하는 과학자 '로라'(클레멘스 포시)의 인버전 설명 장면 등이 그렇다.

또한, 사토르의 아내지만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은 본드걸을 연상시킨다. 다만 과거의 본드걸 같은 이미지 소모성 역할이 아닌 극의 흐름을 이끄는 주도적 인물로 나온다. 이 밖에도 '닐'(로버트 패틴슨)의 등장을 통해 버디 무비의 요소까지 변칙적으로 곁들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여기에 전작 ‘인터스텔라’(2014)에서 보여준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SF 장르 결합을 다시 한번 시도한다. 이를 위해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 증가 현상이 역전되는 미래 기술이 등장한다는 설정을 영화 속에 심어 넣는다.

놀란 감독은  낯설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한 인버전 액션을 스크린에 담아냄으로써 독특한 시각적 묘사와 함께 정밀하게 설계된 서사를 펼쳐 낸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고정관념이 깨졌을 때 주인공이 해낼 수 있는 수많은 일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선보인다. 이것이 이 영화를 구성하는 이야깃거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테넷’의 장·단점은 '크리스토퍼 놀란 스타일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실험적인 인디 영화 감각의 ‘메멘토’(2000)에서는 기승전결의 교차편집을 통해 시간의 순서를 바꿔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동시에 몰입감을 안겨줬다. 

이와는 달리 ‘테넷’에서는 주인공의 시점이 정방향으로 진행되고 관찰자인 관객 역시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방해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던 규칙이 깨진 세계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한눈팔 사이도 없이 화면 구석구석 파편화돼 감춰진 단서들과 모든 대사의 숨겨진 의미 또한 꼼꼼하게 놓치지 않고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인식론과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 등 다양한 철학적 사고까지 제시한다. 

한 번에 이 모든 퍼즐을 맞추기는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심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토르 마방진'의 다섯 가지 단어 쓰임새를 확인하는 것을 비롯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타임라인의 이해와 퍼즐을 푸는 실마리가 될 사건의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은 놀란 감독 스타일의 영화를 선호하는 팬들에게는 더 없는 지적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이 특징은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내러티브의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반대로 매우 불친절하고 장황한 플롯으로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영화의 감상과 해석 측면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피로감 높은 영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 구조는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오랫만에 선보이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

이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라고 하면 ‘미행’(1998)과 같은 그의 초창기 저예산 영화를 떠올리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내는 영화의 규모와 영상미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높다.

70mm IMAX 필름 포맷으로 촬영된 노르웨이·이탈리아 등 7개국의 이국적인 풍광과 실제 보잉 747 여객기를 이용한 건물 폭발 장면 같은 고품질의 스펙터클한 액션과 인버전 전투 영상 등은 압권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극장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테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시작부터 강한 타격감을 주는 러드윅 고랜슨의 음악은 영화의 스펙터클한 흥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마치 활시위를 놓기 전 카운트다운처럼 울려 퍼지는 그의 음악은 잠입 액션 장면이나 인버전 시 백마스킹 음향효과 등과 맞물려 극도의 긴장감을 유도한다. ‘덩케르크’(2017)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많은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한스 짐머의 웅장한 오케스트라나 반복적인 서브리미널 느낌의 오리지널 스코어와는 또 다른 인상을 준다.

‘테넷’은 엔트로피의 역행이 시간여행과는 다르다는 영화 속 설명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1984), ‘백 투 더 퓨처’(1985), '타임크라임’(2007),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등 과거 타임패러독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과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테넷'이 만듦새 좋은 영화인 것은 스파이 액션물과 SF 등 다양한 섞임 속에서 엇박자 없이 뛰어난 장르적 결합의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류에 대한 혐오보다는 사랑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담은 인간 찬가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8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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