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 '장의사' 직업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절망 속 희망 담아 

- 상처 삭이며 꿋꿋이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성길(안성기)은 장의사다. 그가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깊게 주름진 얼굴로 시종 무거운 표정을 짓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성길의 일상은 어두운 수렁 속 같다. 일감은 대형 상조회사에 모두 빼앗기기 일쑤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다. 

집에 돌아가면 수북한 미납 독촉장과 소리 지르며 소동을 부리는 아들 지혁(김혜성)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고로 불구가 된 아들은 틈만 나면 삶을 포기하려 들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간병인 구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괴로운 삶이지만 성길은 마음을 다잡는다. 결국 상조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가맹점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이윤추구가 우선인 상조회사의 방침은 평생 동안 고인을 대할 때 진심을 다해왔던 성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성길의 고집스러움은 그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일 텐데 쉬이 내려놓지 못한다.

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어느 날 성길의 옆집으로 은숙(유진)과 딸 노을(장재희)이 이사 온다. 첫 만남부터 으름장을 놓는 성길에게 은숙은 천연덕스럽게 생글거리기만 한다. 흉 진 자신의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매사에 당당하고 적극적인 은숙은 성길에게서 지혁을 간병하는 일을 기어코 얻어낸다.

그렇게 성길·지혁 부자는 은숙·노을 모녀와 함께 하게 되면서 삶의 소중함과 희망을 되찾아간다.

소시민의 삶을 담은 자전적 내용의 첫 장편 영화 ‘어멍’으로 데뷔한 고훈 감독은 이번 영화 ‘종이꽃’에서는 각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희망을 꿈꾼다는 주제의식을 담아냈다.

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종이꽃. ⓒ스튜디오 보난자

63년간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을 연기해온 안성기가 이번에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품은 채 장애인 아들을 돌보며,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장의사 성길 역을 맡아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유진은 무섭고 아픈 과거를 뒤로한 채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은숙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다만 몇몇 평면적이고 과장된 톤의 캐릭터들은 극 전개에 대한 흥미를 희석시킨다. 상조회사 직원의 극단적 악역은 또 다른 극단의 캐릭터인 은숙까지 작위적이며 비현실적인 인물로 느끼게 만든다. 

또한 등장인물 각자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소구하는 방식이 단순한 서술에 머물러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겉도는 면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죽음을 존엄하게 마무리해 주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재조명하는 보기 드문 소재의 영화로, 힘들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한편, 영화 '종이꽃'은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백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2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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