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수·이정은·노정의…깊고 차분한 연기로 완성도 높여
- 박지완 감독 첫 장편영화 데뷔작…공감 이끌어내는 완숙한 연출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현수’(김혜수)는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전부 무너져 내린 것을 받아들이기도, 실감하기도 쉽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왜 몰랐을까?”라며 그녀는 스스로 반문한다. 촉망받던 경찰대 출신 형사인 현수는 교통사고로 인해 긴 공백기를 갖는다. 사고와 함께 개인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일에 몰두해 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현수의 상사는 어떤 사건의 수사종결 보고서 작성 임무를 맡긴다. 사고로 인해 징계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현수의 복직심사를 위해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준다는 명목이다. 챙겨주는 척하며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 것이 뻔하지만 현수는 군말없이 받아들인다.
곧바로 차를 운전해 밤새 해당 사건이 일어난 외딴 섬마을로 향하는 현수. 차 안에서 선잠을 잔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관할 지구대를 들어서는 것을 시작으로 범죄사건의 증인이었던 고등학생 ‘세진’(노정의)의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꼼꼼하게 조사한다. 세진은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 건과 관련해 증인보호 차원에서 그 섬에서 지내고 있었으나, 태풍으로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유서를 남기고 절벽 끝에서 사라졌다.
현수는 외딴 섬에서 세진이 지내던 집과 투신이 추정되는 장소를 조사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간의 행적을 꼼꼼하게 살피던 중 세진이 언어장애가 있는 ‘순천댁’(이정은)과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편, 조사를 계속하던 현수는 세진이 따르던 보호관찰 담당 형사 ‘형준’(이상엽)을 비롯해 새엄마인 ‘정미’(문정희)까지 석연치 않은 모양새로 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후 세진이 순천댁에게 크게 의지했음을 파악해가던 중 현수는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 타인의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
현수에게 세진의 사건은 단지 자신의 복직과 정신적으로 집중할 뭔가를 찾기 위해 맡은 업무일 뿐이었다. 그러나 세진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점점 사건이 보다는 고립과 절망 속에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한 소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현수 자신과 아주 닮았음을 깨닫는다.
현수가 타인을 통해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공감의 과정은 진중하지만 자연스럽다. 이와 더불어 각자 삶의 극단을 경험한 각 캐릭터가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접점을 달리하며 미스터리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흐름의 연출은 지루함 없이 매끄럽다. 마치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2014)의 카타르시스 버전처럼 느껴진다.
‘내가 죽던 날’은 박지완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완숙한 연출이 돋보인다. 여기에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의 깊고 차분한 감정연기 또한 미스터리 장르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준다. 1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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