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 '김록경' 감독 연출...'하준'·'소주연' 주연 

- 가족의 진정한 의미 되짚는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경미’(소주연)는 오래된 집 아파트 계단에 서서 오빠 ‘경만’(하준)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불러본다. 무명 MC로 행사를 다니며 생계를 꾸려가는 경만은 밝은 표정의 여동생에게 퉁명스럽기만 하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 자던 경만은 채 지워지지 않은 분장이 묻어 있는 자신의 구레나룻를 만져보는 '아버지'(박경근)의 손길에 놀라 잠을 깬다.

낚시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병원생활과 재활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경만은 아버지 병원비와 가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행사 일감을 잡으려고 사방팔방으로 노력한다. 경미 또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빠와 교대로 아버지를 돌본다. 병간호와 병행해 소화해내야 하는 빡빡한 행사 스케쥴 그리고 금전적 어려움으로 삶에 지쳐 있는 경만은 경미에게 짜증내기 일쑤다.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어느 날, 행사를 끝내고 창고 한 켠에서 분장을 지우고 있던 경만은 오열하는 경미의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제대로 된 영정사진조차 미리 준비 못한 남매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밀린 병원비와 장례비를 구해야 한다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하다.

걱정하는 여동생 앞에서 경만은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그도 딱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던 중 팔순 잔치 행사 진행 제의를 받은 경만은 상 중임에도 곧바로 이를 수락한다. 그리고 여동생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팔순 잔치 진행을 맡기 위해 삼천포 궁지마을로 향한다. 

이윽고 마을에 도착한 경만은 팔순 잔치 주최자인 ‘일식’(정인기)을 만난다. 인성이 꽤나 좋아 보이는 일식은 경만에게 웃음을 잃은 어머니를 웃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여기에 마을 ‘청년회장’(오치운)도 은근슬쩍 행사비에 더해 보너스를 챙겨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 가뜩이나 돈이 궁한 경만은 한껏 기대에 부푼다. 

작은 시골마을 잔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흥을 돋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던 경만.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

한편,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고 있던 경미는 여러 주변인들에게 휘둘리며 곤경에 처한다. 그럼에도 오빠는 기약없이 곧 돌아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 경미의 감정은 점점 격해져 간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 아이러니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격랑

2일 개봉하는 영화 ‘잔칫날’에서  경만·경미 남매는 긴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비용조차 없는 답답한 상황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들에게는 이 힘든 처지를 진정으로 위로해주거나 보탬이 될 지인이나 친척이 거의 없다. 경만에게는 살갑게 느껴지지 않은 친구들과 빚 독촉하는 사촌형이, 오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장례식장을 지켜야하는 경미에게는 닦달하며 훈수를 두는 소란스러운 고모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아이러니가 배치 되어있다. 예를 들어 장례비가 절실한 상황에서 그나마 경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얻게 된 시골마을 팔순 잔치 행사 일감 덕분이다. 경만에게 이 일이 맡겨진 이유는 원래 가야할 사람이 아내의 출산 때문에 급히 행사에 대타 MC를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죽음과 생일잔치 그리고 새생명의 탄생이 함께 맞물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궤를 함께 한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여기에 더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 상주 경만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웃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경만은 슬퍼도 괴로워도 돈을 벌기 위해 눈물 대신 웃음을 지어야 하는 광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가족인 여동생에게는 웃음에 인색하다.

궁핍한 경만·경미 남매 아버지의 쓸쓸한 빈소와 온 동네 사람을 모아 잔치를 벌이는 부유한 일식 어머니의 팔순 잔치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밖에도 남매에게 결과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들은 장례식장에 나타난 친척들이 아니라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남들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남매가 마주하는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에 감정의 격랑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는 마침내 갈등과 화해를 이끌어내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작품의 각본·연출 맡은 김록경 감독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떠나보낸 사람과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영화는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작품상, 배우상, 관객상,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잔칫날. ⓒ트리플픽쳐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