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 불꽃처럼 타 들어가는 딸...지켜보는 부모 심리 세밀하게 묘사

- 서사·영상 완성도 높은 작품성...가족과 삶의 의미 되돌아보게 해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역 승강장에서 또래들과 떨어져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16세 소녀 ‘밀라’(일라이자 스캔런) 눈앞으로 ‘모지스’(토비 월레스)가 뛰어든다.

밀라는 이 갑작스러운 첫 만남에서 모지스를 올려다보며 회색 하늘과 함께 마음속에 그의 얼굴을 각인한다.

영화 ‘베이비티스’는 가족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로맨스 성장물이다. ‘작은 아씨들’(2019)에서 베스 역을 맡았던 일라이자 스캘런과 이 작품을 통해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받은 토비 월레스가 주연을 맡았다.

(주의: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밀라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인상의 모지스를 부모님에게 곧바로 소개한다. 어른들의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반응에도 그녀는 무척 당당하다. 오히려 모지스를 대놓고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어머니 ‘애나’(에시 데이비스)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창문 너머로 사라져가는 모지스를 바라보던 밀라는 제4의 벽을 뚫고 관객과 눈을 마주친 후,  ‘그래, 나 단단히 사랑에 빠졌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미소 짓는다.

아프리카 민속음악과 R&B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가 결합된 수단 아카이브의 노래 ‘Come Meh Way’에 맞춰 춤을 추는 밀라의 모습은 노래 가사만큼이나 감정적이며 즉흥적이다.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딸이 느끼는 사랑과 삶에 대한 깊은 갈망의 몸짓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음 짓는 애나의 눈에는 모정이 일렁인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 ‘헨리’(벤 멘델슨)가 처방해 주는 항불안제 등이 없으면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내면이 무너져내려 있는 상태다. 딸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침착하고 꿋꿋이 버텨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헨리 역시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이 붕괴 직전의 운명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숨 막힐 정도로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의 간절함 속에는 충동적인 심리도 엿보인다.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부모

밀라의 말처럼 모지스는 들개 같은 남자다. 나쁘게만 말하자면 돈과 약물을 얻기 위해 밀라 곁을 맴돌기 시작했고, 책임감 따위는 길바닥에 던져버린 부랑자다. 그랬던 모지스의 마음도 어느새 밀라를 향한 사랑으로 채워진다.

거리에서 마약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를 헨리와 애나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윤기 없이 부스스한 머릿결의 밀라가 균형 잃은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그들은 가여운 딸이 최악의 상대와 만났음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헨리와 애나는 모지스라는 존재를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모르핀 없이는 편한 아침을 맞이하기 힘든 밀라가 모지스 곁에서 생기를 얻고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엠엔엠인터내셔널

배우 출신의 리타 칼네제이스가 각본을 맡은 영화 ‘베이비티스’는 불치병을 소재로 한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나우 이즈 굿'(2012),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처럼 애틋하게 연인들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가며 추억을 남기는 식의 아름다운 전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섀넌 머피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인 이 작품에서 병에 지쳐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는 십대 소녀 밀라와 가족에게도 외면 당하는 불량스런 청년 모지스를 중심인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에 저마다 결점을 가지고 있는 주변 인물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 위태로운 감정 등을 배치하여 섬세한 연출 감각으로 플롯들을 완성해 나간다. 아울러 인물의 관점에 따른 클로즈업·롱테이크 촬영과 함께 깨끗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조명을 통해 수준 높은 영상미를 보여준다.  

제퍼 4중주단이 연주하는 ‘Golden Brown’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젖니가 컵 속에 천천히 가라앉는 이 영화의 인트로 장면은 밀라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길 원하는 극중 바램과 맞물려 강한 여운을 남긴다. 22일 개봉 예정.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