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양재사옥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기아 양재사옥 ⓒ현대자동차그룹

- 현대차그룹, “최상의 서비스 위한 철저한 준비” 필요…고금리·경기침체 따른 시장 위축도 지연 이유

- 소비자들, 완성차 업체 중고차 시장 진출 ‘환영’…신뢰도 향상과 파이 확대 ‘기대’

[SRT(에스알 타임스) 이승열 기자]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올 상반기에 시작하려던 중고차 사업을 올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당초 올해 1월 시범사업에 나서고 지난 5월 본격 충고차 사업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지난해 5%대 였던 중고차 할부금리가 15%대까지 치솟으면서 중고차 시장의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자 사업 시점을 미룬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이하 심의회)는 지난해 4월 28일 현대차그룹에 올해 1~4월 회사별로 5,000대 이내 시범판매를 진행하고 5월부터 본격 사업을 시행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사업이 늦춰진 것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상의 중고차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부문별로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올해 하반기에 판매를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최근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겹쳐 중고차 거래가 위축되고 재고가 빠르게 늘어나는 등 시장이 불안해진 것이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 시점을 미룬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중고차 시장 진출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융합형 플랫폼, 전문인력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현대차와 기아 내부적으로 중고차 시장 진입 준비가 생각 이상으로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대차·기아, 중고차 사업 어떻게 하나

현대차와 기아는 심의회의 권고에 따라 앞으로 ‘제조사 인증 중고차’만을 판매할 수 있다. 5년·10만㎞ 이내의 현대차·기아 브랜드 차량 중 200여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을 선별한 후 신차 수준의 상품화 과정을 거쳐 판매하는 방식이다. 

중고차 시장 점유율도 제한된다. 현대차는 2023년 5월 1일부터 2024년 4월 30일까지 전체 중고차의 2.9%, 2024년 5월 1일부터 2025년 4월 30일까지는 4.1%만 판매할 수 있다. 같은 기간 기아의 중고차 판매 대수는 각각 2.1%, 2.9%로 제한된다. 올해 1∼4월에는 시범사업을 통해 각각 5,000대 내에서 인증 중고차를 시범 판매할 수 있었으나 하반기 본격 진출로 일정을 변경한 만큼 이 과정은 생략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대차·기아는 고객이 신차를 사는 조건으로 자사 브랜드의 기존 중고차를 팔겠다고 요청했을 때만 이들로부터 해당 중고차를 사들일 수 있다. 매입한 중고차 중 5년·10㎞ 미만 인증 중고차로 판매하지 않는 물량은 경매에 넘겨야 한다. 이때 경매 참여자는 중소기업으로 제한하거나, 현대차·기아가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협의해 정한 사업자에게 경매 의뢰하는 물량이 전체의 50% 이상 돼야 한다. 

◆완성차 업체 중고차 사업 진출 가능하기까지

중고차판매업은 지난 2013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다가 지난 2019년 2월 지정 기한이 만료됐다. 이후 중고차 업체들이 다시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을 신청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소비자 후생과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 하락 등을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 후 6개월 이내에 ‘중고차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정식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2년 넘게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그동안 대기업 완성차 업체와 중고차 업체들의 갈등이 이어졌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을지로위원회 주재로 완성차와 중고차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중재를 시도했으나 상생안 도출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에 중고차 업체들은 2022년 1월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그러자 현대차와 기아는 심의위의 결정이 나오기 전인 2022년 3월 7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사전에 공식화하고 중고차 사업 방향을 처음 공개했다. 계획에는 정밀 성능검사와 수리를 거친 자사 인증 중고차 출시, 시장점유율 자제 제한을 통한 기존 중고차 매매업체들과의 상생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생태계를 독식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열흘 후인 3월 17일, 마침내 완성차를 만드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렸다. 이날 열린 심의위에서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것. 심의위는 “중고차 판매업은 서비스업 전체와 도·소매업, 자동차 및 부품 판매업에 비해 소상공인의 비중이 작고 소상공인의 연평균 매출액이 많으며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작다”면서 “지정요건 중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완성차 업체의 진출에 따른 제품에 대한 신뢰성 확보, 소비자 선택의 폭 확대 등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전 심의를 맡은 동반성장위원회에서도 2019년 11월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낸 점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심의위는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된다”며 “향후 심의회에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적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부대의견을 제시했다.

4월 28일에는 중고차 업체들의 사업조정 신청에 따른 심의회의 권고가 나왔다. 심의회는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당초 예정일보다 1년 늦은 2023년 5월에 하고, 시장 진출 후 2년 동안 중고차 판매 대수를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사업조정 당사자들이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중기부는 ‘이행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불이행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대승적 차원에서 권고 내용을 따르겠다”고 했다. 두 회사는 “중고차 시장의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 소비자를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라면서도 “중고차 소비자들의 권익 증대와 중고차 시장의 양적·질적 발전, 기존 중고차 업계와의 상생을 목표로 중고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들, 완성차 업체 중고차 시장 진출 ‘환영’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소비자들은 전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원이 2021년 1월 이후 중고차거래앱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1,3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22년 8월31일∼9월14일)에 따르면, 완성차 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에 대해서 응답자 대부분이 찬성(4.0점, 5점 척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는 ’안전한 매물이 많아질 것(4.06점)‘,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4.04점)‘,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 것(3.94점)‘, ’중고차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될 것(3.90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시장을 과도하게 독점할 위험이 있다(3.41점)‘,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피해가 갈 것(3.13점)‘이라는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중고차 시장 내부에서도 경쟁력 강화를 전제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오토플러스의 비대면 중고차 브랜드 ‘리본카’는 지난 13일, 2023년 중고차 시장을 주도할 키워드로 ‘스펙업’(SPEC-UP)을 선정했다. 스펙업은 ▲객관적 품질(Specification) ▲플랫폼(Platform) ▲실속 있는 매물(Economical) ▲소비자 중심(Consumer Orientation) ▲비대면 거래(Untact) ▲소비자 선호(Preference)의 영어 단어 앞 철자를 모은 것이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만큼 기존 업체들도 철저한 검증으로 양질의 매물을 확보하고 객관적 품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한 플랫폼 구축도 중요한 키워드로 지적됐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면서 “브랜드가 있는 완성차 업계가 시장에 들어오면 허위 미끼 매물, 성능 미고지 등 문제점이 개선되고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등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성용 중부대 교수도 “대기업이 진출하면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하 교수는 “완성차 업체의 권고사항 이행과 상생안에 대해 정부에서 잘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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