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 “‘젊은 남자’ 등 리메이크 또는 신작 가능성 열려 있어”
- “후배 감독들, 영화 본연의 예술성 찾아보며 생각해야”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상>편에 이어지는 인터뷰 기사입니다.)

Q. 감독님의 몇몇 영화는 로드 무비라고 볼만한 여정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정’을 보면 인물들이 떠나고 떠돌며 그런 가운데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한다. 반면 ‘젊은 남자’는 스릴러 요소가 있어서인지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작품 변화를 염두하고 만드셨는지?

늘 해왔던 걸 이번에는 이렇게 바꾸자 하는 그런 건 없었다. 만약 어떤 인물이 떠오르면 그의 삶에 집중한다. 그 삶을 통해 뭘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평범한 삼류 모델이 톱 모델을 꿈꾼다면 이런 압박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돌이켜 보면 아웃사이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그래야 고통, 갈등, 짓눌린 삶 또는 삶의 의지를 잘 그릴 수 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6.25 전쟁고아인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다룬 영화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역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다.

Q. 감독님 작품 속에서는 안성기, 김보연, 황신혜, 장미희, 이미연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 경우도 이정재 배우의 젊은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신인이었던 이정재 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셨는데 캐스팅 철학이 있다면?

첫 번째는 작품에 맞는 사람이다. 물론 그 사람이 스타면 더 좋다. 하지만 단지 스타이기 때문에 캐스팅하지도, 신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지도 않는다. ‘젊은 남자’ 직전에 만든 ‘천국의 계단’에서는 사진 모델을 주로 했던 이아로 배우의 가능성을 보고 캐스팅했다.

두 번째는 캐릭터에 대한 표현력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능숙함이 필요 없다. 신선함을 유지하면서 자기 표현력이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티켓파워 따지면서 캐스팅한 적은 없다.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Q. 이정재 배우가 감독님 작품을 통해 스크린 데뷔를 했고 이제는 세계적인 배우 그리고 감독으로 성장했다. 감독님의 당시 캐스팅 안목이 이런 성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지 않겠나?

이정재 배우는 내 영화로 데뷔를 안 했다 할지라도, 시기가 조금 늦어졌을 뿐 성공했을 것이다. 될 사람은 되게 되어있다. 

이정재 배우가 나와 작업할 때 격이 없이 지내는 게 좋았다는 인터뷰를 하더라. 영화는 뛰어나게 만들지만, 현장 지휘력이라든지 인화에 신경 안 쓰는 감독들도 있다. 나와 함께 했던 현장이 좋은 경험이었던 것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이정재 배우가 명절날이면 그만 와도 된다고 말해도 꼬박꼬박 인사하러 왔었다. 바쁠 텐데 날 잘 챙겨줬고 ‘흑수선’을 통해 다시 한번 영화작업을 함께 했었다.

영화감독 일에 관련한 조언은 전혀 없었다. 연기에 대해서는 집에 놀러 왔을 때 간단한 멘트는 했었다. 발성에 힘을 조금만 뺐으면 한다 라든지 넌지시 스쳐 지나가는 한 두 마디로 이야기해도 캐치를 잘한다. 

Q. ‘깊고 푸른 밤’을 만드시면서 한국 영화도 기술력이 받쳐준다면 할리우드 규모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당시에 밝히셨다. 감독님 말씀대로 이제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기생충’ 같은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다. 한국 영화와 문화 발전의 미래를 이미 40여 년 전에 예견하신 선구안이 있으셨다.

우리나라 민족의 창의성이 뛰어난 것은 예전에 간파했다. 50~70년대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 조명이 잘 안됐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현실적인 조건, 표현의 자유 문제로 못한 일도 있다. 

80~90년대 중반까지도 여러 가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부족했다. 투자, 제작비 규모, 기자재, 연기자의 다양성 부분에서 모자랐는데 그게 점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이제는 때가 된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 영화에 주목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 문화를 편견 없이 보게 됐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를 미국, 유럽 기준에서 봤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 봐준다.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Q. 감독님 작품 중에는 최인호, 박완서 등 유명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경우가 상당하다. 그래서인지 문학적인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영화들이 많다.

주로 80~90년대 초까지 영화작업을 활발히 하던 시절에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했다. 당시에는 읽었던 소설 작품을 영화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많았고 제작 트랜드가 있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원작에서 빌려왔지만, 거의 창작 시나리오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감독에게 좋은 점은 이미 원작자가 숙성을 시켜놓은 재료를 가지고 영화적으로 바꾸면 된다는 점이다. 좋은 덩어리를 만들 노고를 덜어준다. 최인호 선배, 이동철 씨, 박완서 씨, 김성종 씨, 이광수 선생 등 뛰어난 작가분들이 영화의 원천을 많이 제공해줬다. 

영화는 종합예술로써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작품들은 문학성이 결여돼 있는 느낌이다.

Q. 감독님의 신작을 기대하는 관객들이 많다. 관련해서 말씀 부탁드린다.

지금 진행하려는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영화다. 이제껏 예수 그리스도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다. 영화는 시대마다 관객들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고 이번에 추진하려 한다.

스태프에는 한국팀이 들어가더라도 연기자는 전부 외국인이다.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십자가 수난을 중심으로 한다면 이번 작품은 전 생애를 다룬다. 3부작으로 계획하고 있다. 글로벌한 프로젝트이며 다시 한번 열정과 의지를 갖추고 만들어낼 생각이다.

이전 작품에서는 종교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우리 삶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하나님’에서는 보잘것없는 인생 속에서 존귀한 생명의 탄생을 그렸다. 이제는 완전히 종교성을 드러낸 영화를 만든다. 종교적 영화이면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다. 

영화는 300억원 예산이든 3억원 예산이든 만드는데 힘든 건 똑같다. 소홀함 없이 똑같이 열정을 들인다. 학교 실습작품 편집할 때도 학생들에게 “내 작품 편집할 때와 똑같은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말해준다. 다만 대작을 만들 때는 투자자를 찾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Q. 혹시 ‘젊은 남자’같은 장르의 신작을 만들 계획도 있으신지.

가능성은 열려있다. ‘젊은 남자’도 과거에 리메이크 제안이 있었다. 여건이 된다면 앞서 말한 예수 그리스도 영화 프로젝트를 잠시 미루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자도 나도 만족하는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또한 극장에 오는 관객층이 뚜렷해졌다.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있지만, 제작비 투자를 받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Q. 끝으로 최근 한국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시각이나 생각이 궁금하다. 후배 감독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린다.

현실과 충돌하면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실이 힘들게 하더라도 한가지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에는 고유한 표현법이 있다. 촬영·편집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투자자, 제작자의 말을 따르더라도 자신의 색깔, 자신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그것이 영화 본연의 예술성이다. 영화예술이 탄생한 이후로 1990년대까지도 선배 감독들이 그런 것들을 쌓아왔다. 예술성에 대해 다시 찾아보고 깊이 생각하고 느꼈으면 한다. 

‘젊은 남자’를 만들 때 수미상관까지 다 계산하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다음 컷은 무엇이 좋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며 만들어야 감독 고유의 시그니처가 들어가게 된다. 다만 그것을 과시적으로는 하지는 말아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고전 영화들을 다시 되새겨 보고 자기 표현법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또 한 가지는 영화가 무엇인가,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까지도 더불어 성찰해야 한다. 흥행 부담의 여건 속에서도 찾아내야만 한다.

▲'젊은 남자' 포스터. ⓒ스튜디오보난자
▲'젊은 남자' 포스터. ⓒ스튜디오보난자

시대의 거장이며 영원한 현역 배창호 감독의 마스터피스이자, 이정재 배우의 스크린 데뷔작인 ‘젊은 남자’는 1990년대 신인류 X세대 청춘들의 질주하는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로 오는 12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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