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 “영화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춰야”
- “대중들에게 영화는 ‘정서적인 양식’”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980년대와 1990년대 충무로 영화계를 평정했던 배창호 감독을 SR타임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올해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배창호 감독은 80년대 K-Cinema를 선도한 스타 감독이다. 

그는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서부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후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등 흥행작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등을 통해 탁월한 연출력으로 예술성을 보여주면서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인정받아왔다.

또한 1994년 제작사 ‘배창호 프로덕션’을 설립한 배창호 감독은 X세대의 감성을 담은 영화 '젊은 남자'를 창립작으로 발표했다. 이후 ‘러브스토리’(1996), ‘정’(2000), ‘흑수선’(2001), ‘길’(2006), ‘여행’(2010)을 연출했다.

과거 촬영 현장에서 유명했던 배창호 감독의 온화한 인품에 대한 소문은 인터뷰 현장에서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 전 부인 김유미 배우와의 통화 모습에서는 서로를 존대하는 다정함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Q.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흥행작들을 만드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평하기도 했다. 1982년 29세 젊은 나이로 ‘꼬방동네 사람들’을 통해 감독 데뷔하셔서 그해 영화상을 휩쓰셨다. 영화감독이 되신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 했다. 꿈을 쭉 가지고 있다가 대학에서 연극활동을 많이 했다. 영화에 관한 생각의 폭이 넓어지면서 감독이라는 직업이 맞는다고 느꼈다. 대학 졸업 때 감독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Q. 영화감독이면서도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셨다. 여러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하셨고 ‘개그맨’, ‘러브스토리’, ‘길’에서는 배우로 연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독을 하면서 배우는 전혀 생각을 안 했다. 이명세 감독이 ‘개그맨’으로 데뷔할 때 시나리오를 같이 썼다. 배역에 대해 논의하다가 이명세 감독이 배우 출연을 제의했다. 처음에는 그냥 웃었는데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라. 이명세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있고 해서 배우로 출연했다. 

이후로는 연기 생각을 안 하다가 ‘러브스토리’는 역할에 진정성과 참신함을 두고 싶었다. 아내에게 “영화에 출연한다면 같이 나갑시다”했다. 당시 영화계에서 선입견이 있으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걸 무릅쓰고 작업했다. 관객동원에는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내 의도는 맞았다. 당시 작품에 대한 열렬한 팬층이 생겼다.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Q. 지금까지 총 18편의 영화를 만드셨다. 그중에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 7편이 이번 감독 특별전에서 성황리에 상영됐다. 이번 작품 중 작업하시면서 부담감이 컸거나 힘들었던 작품,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으신다면?

가장 부담이 갔던 건 ‘러브스토리’다. 일단 흥행면에서 모험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다.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는 그때그때의 결의가 있다. 제작을 직접 했고 스폰서도 제작비도 내가 끌어와야 했다. 그런 작업 과정에서는 아내가 더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정’도 나왔다. 

‘젊은 남자’는 일상성과 드라마가 합쳐진 영화다. ‘러브스토리’는 드라마는 배제하고 일상적인 것만을 끌고 갔다. 그런 부분을 더 심화한 것이 ‘정’이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 아닌가? 우리의 윗세대분들 이야기다.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는 말하기 어렵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영화감독이 완벽주의자면 많은 작업을 하지 못한다. 당시 주어진 여건하에서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애착 가는 영화를 하나만 말하면 다른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 서운해하신다. (웃음).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작품은 ‘정’이다. 이것도 직접 제작했다. 예산이 만만치 않은 영화였다.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스태프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다. 제작비가 생기면 찍고 없으면 촬영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찍고 싶은 건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정’은 극장 스크린으로 봐야 내가 의도한 여러 가지 요소를 느낄 수 있다. ‘고래사냥’은 강원도 산간에서 촬영할 때 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Q. ‘젊은 남자’는 1994년에 만들어져서 28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재개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으로 이정재 배우가 주목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정재 배우의 첫 데뷔 작품을 볼 수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다면 다시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 영화의 정서, 느낌, 스토리가 지금 젊은이들에게도 한번 들려줄 만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지난해 12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이야기에 대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의상, 장소, 음악도 좋아해 줘서 기획전을 하면서 재개봉하게 됐다.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배창호 감독.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Q. ‘젊은 남자’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 시드니 셀던의 소설 ‘거울 속의 이방인’처럼 야망에 불타는 청춘이 극단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20세기 영화지만 21세기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서사라고 본다.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야망을 성취하려는 젊은이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청춘에 관한 공통된 이야기 원형에 1994년을 살던 젊은이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덧입힌 부분이 있다. 지금이 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짐에 대한 욕구와 부추김이 많을 것이다. 젊음의 순수함, 욕망, 좌절을 담은 영화다. 

Q. ‘젊은 남자’는 1990년대에 실존했을 법한 어느 삼류 모델의 이야기다. 극적인 부분을 빼고 본다면 ‘정’처럼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로 엔딩의 여운이 강하다. 연출 철학이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예술성, 대중성, 흥행성 등으로 구분한다.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는다. 자기 혼자만의 만족을 위한 영화는 8mm 영화 만들 때 이미 해봤다. 

자본을 받아 만든 영화는 투자자와 서로 윈원할 수 있어야 하며, 대중들에게는 시간과 돈을 들인 만큼의 영화적인 즐거움을 줘야 한다. 그게 대중성이다. 그 즐거움 속에서 내가 영화예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내 스타일로 표현해 담음으로써 대중들에게 ‘정서적인 양식’이 되는 것. 그것이 영화다. 영화가 불량식품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리얼리즘과 상업성을 합치기 위해 작업해왔다. 

‘정’에서처럼 사랑이 환경 때문에 막힐 때가 많다. 영화를 통해 그걸 서로 발견함으로써 사랑이 더 확장될 수 있는 그런 영화면 좋겠다. 아니면 ‘젊은 남자’처럼 욕망의 모습을 통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인생은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 마음의 양식이 됐으면 한다.

Q. 극 중 삽입곡 ‘In Dreams’는 ‘이한’이 좋아하는 노래로 나온다. 그의 테마곡으로 딱 어울리는 가사의 노래다. 이 곡을 사용하게 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공동으로 시나리오 쓴 배병호 작가가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는 걸 좋아한다. 같이 음악을 듣는데 ‘In Dreams’가 나왔다. ‘이한’이 좋아하는 곡으로 넣으면 딱 좋을 것 같은 곡이었다. 영화 개봉 당시에도 이 노래를 들은 관객들 반응이 좋았다. 

사실 영화 만들 때는 가사를 안봤다. 나중에 들여다보니까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고 걷고, 꿈이 깨면 사라지고’ 하는 가사가 주인공과 딱 맞았다. 

(<하>편에서 인터뷰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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