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  홍상수 영화 예술론의 총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스포일러 주의: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희’(이혜영)는 어느 작고 아담한 책방을 찾아간다. 하지만 다투는 소리에 곧바로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문다.

이럴 때 담배는 참 편리한 도구다. 어색한 순간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그뿐인가. 글 쓸 때, 시나리오 쓸 때 창작 에너지를 북돋는 화톳불이 되어준다. 숱한 소설을 써왔던 준희 또한 그 신세를 많이 졌을 것이다.

책방 주인 ‘세원’(서영화)은 갑자기 불쑥 찾아온 선배 준희를 보고 놀란다. 남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몰래 잠적한 자신을 어떻게 찾아낸 걸까.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이 재회가 불안하다. 겨우 얻은 평화가 연기처럼 흩어질까 두렵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세원과 달리 책방 일을 도와주는 ‘현우’(박미소)는 존경해온 유명 소설가 준희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홀로 타워 건물에 오른 준희는 우연히 영화 감독 ‘효진’(권해효)과 그의 처 ‘양주’(조윤희)를 만난다. 이 부부는 30년을 함께 살아왔다.

준희와 효진 사이에는 과거 일로 감정적인 앙금이 남아있다. 효진은 꼬여버린 둘 사이 불편한 감정을 털어내고 싶어 하지만 준희는 그게 쉽지 않은 듯하다. 준희의 입에서 조금씩 가시 돋친 말들이 흘러나온다.

만약 준희가 책방에서 배웠던 수어로 이 말들을 전했다면 덜 차갑게 느껴질까. 세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어색함은 도리어 관객에게는 희극적으로 다가온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세 사람은 공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배우 ‘길수’(김민희)를 만난다. 효진은 연기를 그만뒀다는 길수를 앞에 두고 “너무 아깝다”는 말을 연발하며 아쉬워한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준희는 효진에게 버럭 큰소리로 화를 낸다. 타인의 삶을 이러쿵저러쿵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세상 모든 이를 향한 듯한 호통이다. 직접 면전에서 들었다면 눈물이 쏙 빠졌을지도 모를 준희의 매서운 대사가 부부를 작품 밖으로 밀어낸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한편, 길수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준희에게 왠지 호감이 간다.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소설가라…이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작품인 ‘소설가의 영화’는 솔직하다. 홍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쭉 나열한다. 전작 ‘당신얼굴 앞에서’(2021)의 마지막 여운에서 이어지는 듯한 캐릭터의 감정선도 흥미롭다. 이번에도 등장인물들은 분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술자리에 모이고, 담배를 만끽한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실 풍경을 그대로 담은 이 영화에는 일반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가, 영화감독, 배우, 시인 등 예술 하는 사람들 중심이다. 하지만 타이틀 롤인 소설가는 글을 쓰지 않고, 배우도 더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은둔한 소설가와 배우는 정말 우연히 만나고 모여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린다. 소설가는 원고를 쓰는 대신 영상을 찍고 배우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 연기를 다시 시작한다.

극 속에서 홍상수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한 목소리를 낸다. 특히 그 만의 영화 예술론과 철학이 이혜영이 연기한 준희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홍상수 감독은 주역인 준희를 비롯해 영화 감독 효진, 젊고 부유한 영화학도 ‘경우’(하성국) 그리고 시인 ‘만수’(기주봉)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불어넣는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홍상수 감독의 롱테이크 신들은 이전보다 훨씬 대담해졌다. 그리고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그림 위에 덧칠하듯 입혀진 우둘투둘한 흑백 필름 입자 질감과 영화 속 영화의 디지털카메라 색감이 도드라진다. “그냥 해봤다”라고 단 답할지라도 그 연출 의도는 오직 홍 감독만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의 영화’는 홍상수 영화 예술론의 총화다. 홍상수 감독이 창작의 회전문을 수없이 반복해 드나들며 가장 개인적인 영역의 취향을 미니멀하게 압축하고 세공해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 안에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 독보적인 아티스트 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아울러 자신이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배우를 가장 편안하게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소설가의 영화.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 제목: 소설가의 영화 (영제: The Novelist’s Film)

◆ 각본/감독/촬영/편집/음악: 홍상수

◆ 제작실장: 김민희

◆ 동시녹음: 서지훈

◆ 출연: 이혜영,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조윤희, 기주봉, 박미소, 하성국, 이은미

◆ 상영 시간: 92분

◆ 제작: 영화제작 전원사

◆ 배급: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 해외 배급: 화인컷

◆ 개봉: 2022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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