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 미장센과 음악이 아름다운 독특한 분위기의 프랑스 스릴러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을 맡게 된 한국 형사와 프랑스 국제 법의학자의 공조 수사를 담은 서스펜스 범죄 스릴러다.

'배니싱: 미제사건'은 프로덕션 단계부터 크게 화제를 모았다. 먼저, 국내외 필름메이커가 공동 제작을 맡은 이 영화에는 한국 배우 유연석, 예지원, 최무성, 박소이 외에도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블랙 위도우’(2021)의 우크라이나 출신 프랑스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올가 쿠릴렌코가 출연한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제 포렌식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는 서울의 어느 호텔,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 교수(올가 쿠릴렌코)가 자신이 개발한 지문채취 신기술을 열심히 설명 중이다. 모두가 그녀의 발표를 경청하는 진중한 분위기 가운데 한 남자만이 행사장 테이블 구석에 앉아 졸고 있다.

참석자들의 박수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깬 형사 ‘진호’(유연석). 그는 알리스에게 다가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는 수사 협조를 요청한다. 최근 발견된 변사체 사건 때문이다.

계곡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나 피부조직 손상이 심해 지문을 채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공교롭게도 서울을 방문 중인 이 프랑스 법의학 전문가의 신기술 도움이 절실했던 상황.

미궁에 빠졌던 사건에 곧바로 알리스가 개발한 신기술이 적용된다. 그리고 마침내 변사체의 신원이 밝혀진다. 앞서 시신에서 확인했던 혈액형의 특징을 토대로 예상됐던 부분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한편, ‘전달책’(최무성)은 밥이 맛없다며 식사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새로 데려온 가사도우미를 소개한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보이는 그는 ‘중간 보스’(김우형)가 맡기는 일을 우직하게 수행한다. 외과 의사 ‘닥터 리’(이승준)까지 가세한 이들 조직의 가장 위에는 ‘중국인 보스’(김명곤)가 존재했다.

이윽고 목격자의 외면 속에서 새로운 범죄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범행에는 결정적인 흔적이 남게 되고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들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알리스의 전담 통역사 ‘미숙’(예지원)은 사건 경과를 계속 확인하며 불안해한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그런 미숙이 알리스와 함께 진호 조카 ‘윤아’(박소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사건을 향해 방향을 급선회한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은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되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인 피터 메이의 ‘더 킬링 룸(The Killing Room)’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추격자', '마더' 등의 대한민국 대표 장르 영화들을 참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도입부를 얼핏 보면 한국 영화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지만, 분명히 이 작품은 프랑스 감독이 한국을 배경으로 연출한 프랑스 영화다. 일단 공항과 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치밀한 범죄행위 등 초반 진행되는 시퀀스는 긴박한 음악과 함께 빠른 화면전환으로 몰입도가 상당히 좋은 편.

한국식 정서나 문화를 담기 위해 공들인 흔적도 여럿 보인다. 집안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장면, 언어유희가 사용되는 장면, 유사과학 임에도 한때 크게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론 등 세밀한 로컬라이징이 눈에 들어온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이 영화는 다른 스릴러 장르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아름다운 미장센과 음악적 완성도가 차별점으로 부각된다. 트라우마를 가진 여주인공 알리스가 서울 밤거리를 배회하거나 택시 뒷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우수에 잠기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진호와 함께 떡볶이를 먹기도 하며 데이트하는 장면 등이 상당히 서정적이고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 대화 모습 뒤로 반짝이는 시티 라이트가 꽃처럼 흐드러진 도시야경과 함께 하는 몽환적이고 솜브레한 재즈 음악이 감미롭다. 이런 감성을 스릴러 영화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주연인 유연석과 올가 쿠릴렌코를 비롯해 예지원, 최무성, 이승준, 박소이까지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예지원은 평소 갈고 닦아온 프랑스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스펙터클한 액션보다는 심리극에 집중한 이 스릴러에서 시나리오상 가장 아쉬운 부분은 예지원이 맡은 통역사 미숙의 정체가 너무 초반에 드러난다는 점 정도.

이 밖에도 알리스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둔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프랑스어를 사용해 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듯 한국 정서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서구적 연출이 간간이 보인다.

예를 들어 총기로 연출되는 장면들은 액션 연출 면에서는 좋은 선택이지만 분명 유럽이나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이다. 또한 범인의 사체유기 방식 등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극 후반부 몇몇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부분들이 해외 관객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라면 충분히 허용될만한 연출 문법과 정서를 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영화 배경이 일본이나 중국이었다면 우리가 감상하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해외 로케이션 연출·제작진이 만든 영화가 완벽하게 해당 국가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 역시 어디까지나 프랑스 영화이며 원작 소설에서 이국적 배경이 된 중국을 한국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한 영화 안에서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다국어, 다문화가 사용되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 

결코 정통 한국형 스릴러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현재 한국문화 위상을 생각할 때 국내보다는 해외 관객 반응이 더 좋을 수 있는 작품이다.

운전할 때 항상 GPS를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가는 남자와 마음속 죄책감을 덜어내지 못하고 길을 잃었던 여자의 만남. 순간적으로 스릴러가 아닌 프랑스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유연석과 올가 쿠릴렌코의 연기 케미스트리는 자연스럽다.

개봉 이후 국내와 해외 관객 평가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배니싱: 미제사건. ⓒ스튜디오산타클로스

◆ 제목: 배니싱: 미제사건

◆ 감독: 드니 데르쿠르

◆ 출연: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최무성, 이승준, 성지루, 박소이 외

◆ 수입: 조이앤시네마

◆ 배급: 스튜디오산타클로스

◆ 공동 배급: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개봉: 2022년 3월 30일

◆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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