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 분노, 연민의 감정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강렬한 서사의 범죄 스릴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있습니다.)
갈라지고 메마른 땅이 광활하게 이어진 외딴 농장. 집안에 방치된 갓난아기는 달래주는 이 없이 목이 터져라 울고 있다. 파리가 들끓는 이 집에서는 총에 맞은 여성과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호주 연방 경찰 ‘에런’(에릭 바나)은 20년 만에 고향 키와라로 향한다. 한때 친구였던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에런의 기억 속 고향은 강물이 흐르고 수풀이 우거진 곳.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말라버렸다.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놀았던 계곡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에런은 바싹 마른 땅 위에 우두커니 선다. 고향을 떠났던 시점에는 분명 강이었을 이곳에는 여자친구 ‘엘리’(베베 베텐코트)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상실의 아픔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뉴스에서는 루크를 아내 ‘캐런’과 어린 아들 ‘빌리’를 죽이고 자살한 존속 살인 용의자로 보도 중이다. 고향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크의 갓 난 딸 ‘샬럿’은 가족의 장례식에서도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는다.
루크의 죽음에는 목소리 낮춘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의 유족 생각은 달랐다. 에런은 루크 아버지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해오자 거절하려 한다. 하지만 그 부탁은 위협적일 정도로 절박했다.
부탁을 받아들인 에런은 살인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지역 경찰 ‘레이코’(키어 오도넬)를 만난다. 불안정해 보이는 레이코는 이번 사건으로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코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경찰이었다. 그는 루크가 범행에 사용한 총알과 집에 보관하고 있던 총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루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에런과 함께 자주 낚시하던 호수가 있던 곳이다. 물 한 방울 남지 않은 호수 바닥 위에는 검게 말라붙은 혈흔이 아직도 선명했다. 이 주변 땅은 루크 가족을 포함해 여러 집안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엘리의 아버지 ‘맬’과 그의 조카 ‘그랜트’는 고향으로 돌아온 에런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20년 전 마을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의 기억은 아직도 에런을 괴롭히고 있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은 살인자가 경찰이 되어 돌아왔다며 에런에게서 날 선 적대감을 거두지 않는다. 그들은 에런이 20년 전 엘리의 죽음과 관련돼 있지만, 진실을 은폐한 채 도망쳤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이 괴로운 과거는 에런을 옭아맨다. 그는 사랑, 슬픔, 죄책감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인생을 보냈다.
이제 옛친구의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오게 된 에런은 이를 계기로 유령 같은 과거에 맞서기로 한다.
어릴 적 3명의 친구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등학교 교사 ‘그레천’(제네비에브 오렐리)은 에런을 반갑게 맞이한다. 총을 잘 다루는 그레천은 엘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레천과 이야기를 나누던 에런은 그녀가 루크에 대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루크의 아내 캐런은 사건 전까지 같은 학교에서 그레천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레천의 동료교사인 ‘휘틀럼’(존 폴슨)은 외지인이라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과 달리 에런에게 호의를 베푼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그는 마약중독자가 들끓는 대도시를 벗어나 아내 ‘샌드라’와 함께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샌드라는 죽은 캐런과는 아주 친한 사이로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샌드라는 에런 앞에서 범행 용의자인 루크에 대한 증오심을 숨기지 않는다.
에런은 루크 가족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과 거짓말을 확인한다. 용의자 중 한 명인 ‘제이미’는 에런에게 '오래된 거짓말은 몸에 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가뭄이 들어있는 것은 고향 땅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메말라 있었다. 그들은 에런이 진실에 접근해 갈 때마다 한 명씩 등을 돌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에런의 마음은 더욱 거세게 타들어간다.
그 불길은 단단하게 침착(沈着)한 거짓의 껍질을 한 꺼풀씩 태워내며 사건의 실체에 파고든다. 이윽고 그 표면에 탐침이 다다르자 과거와 현재의 진실을 숨기고 있던 진짜 얼굴들이 연쇄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과연 이 사건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용의선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은 20년 전 진실과 함께 예측 밖의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로버트 코놀리 감독의 ‘드라이’는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어느 경찰이 가상의 마을 키와라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안정적인 연출로 풀어나가는 범죄 스릴러다.
이 영화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며 진실의 퍼즐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사에 시나브로 몰입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고양감을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호주 출신 작가 제인 하퍼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 속에서는 작렬하는 햇빛 아래 목이 말라오는 듯한 유사체험의 건조함이 시종일관 지속된다. 또한 감춰진 진실에 한땀 한땀 접근해나가는 긴장감이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한다.
영화 ‘드라이’는 미제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집념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정통 수사극의 맛이 살아있는 범죄 스릴러다.
여기에 더해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해버린 트라우마, 되돌릴 수 없는 비극, 희생된 이들에 대한 연민, 이름을 앗아간 비참한 범죄 그리고 죄의식 없이 견고하게 진실처럼 꾸며진 뻔뻔한 거짓에 대한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드라이'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관객의 가슴 속에 서서히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강렬함을 지닌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 제목: 드라이
◆ 원제: The Dry
◆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 감독: 로버트 코놀리
◆ 출연: 에릭 바나, 제네비에브 오렐리, 키어 오도넬
◆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 러닝타임: 117분
◆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개봉일: 2022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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