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문물에 대한 관심은, 설왕설래하고 있는 우리 고조선의 역사적, 지리적 위치에 대한 입증과 연결된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상윤 전 연세대 법대 교수 ⓒSR타임스
▲요하문물에 대한 관심은, 설왕설래하고 있는 우리 고조선의 역사적, 지리적 위치에 대한 입증과 연결된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상윤 전 연세대 법대 교수 ⓒSR타임스

◆ 홍용락 고문이 만난 '시대를 바꾸는 사람들' [17] 고조선의 뿌리를 중국 요하(遼河)유물로 입증한 이상윤 전(前) 연세대 법학과 교수 

지난 해 말 인터넷 기사 검색을 하다가 때가 지났지만 특이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내용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동북아 역사 속 우리 숨결’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열린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연상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서 우리 역사를 주장하는 유물에 대한 전시회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기사는 이어서 이상윤(66) 법학과 교수가 20년간 모은 기증 유물을 전시한다는 내용과 기증품이 무려 3만4000여 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법학과 교수가 유물을 20년간 모았다는 내용을 보고, 왜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을 평생해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같이 유발되었다.

언젠가는 한번 만나 보리라 생각하고는 해를 넘겼다. 우연히 이전에 문화재 청장을 하신 분과 식사하는 자리에 이 교수님을 잘 안다고 소개를 해 주었다.

매우 추운 날 찾아 간 개인 연구실은 비취와 옥 유물  몇 십점이 진열되어 있었다. 안쪽에 작은 수장고가 있다고 했지만, 열쇠를 가져오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유물 수집가들이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는 일종의 의례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귀중한 유물 보호를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편집자 주]

 

- 일부 우리 고고(역사)학계가 역사왜곡 방치를 보다 못해 개인 유물 수집가로서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 중국의 홍산(紅山)유물과 하가점(夏家店)유물 수집으로 우리 역사를 살려

- 흥륭와(興隆窪)문화의 신석기 유물 빗살 토기와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상관관계 분석...고대 신석기 문화와 연결 범주 입증 

- 고조선 청동기 문화가 홍산문화 후대인 하가점 유물과의 연결 입증해 고조선의 역사적 존재감 부각 

- "고조선영역이 지금의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요동지역까지 가능" 유물로 입증

 

Q. 한성백제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을 비롯해 중점적으로 수집한 유물이 어느 시대 유물인가요?

== 현재 중국 동북부의 홍산(紅山)유물 및 흥륭와(興隆窪) 문화를 포함하는 요하(遼河) 유물이라고도 불려지는 유물입니다. 이 유물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까? (질문자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계속 이어 갔다)

홍산유물(紅山遺物)은 B.C 4000~3000년 전 신석기 시대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B.C 2000~1500년 전에 있던 하가점문화 (夏家店文化)유물들도 있습니다.

하가점 문화 시대는 청동기 문화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많이 발굴된 지역으로, 홍산유물과 마찬가지로 행정구역상 중국 내몽고 지역이지만 실제로는 요동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중국 동북부 지역으로 우리가 쉽게 만주의 서쪽 지역이라고 말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국의 국가기원과 중국문명에 대해서도 먼저 알아봐야 나중에 하는 얘기가 이해가 쉽게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황화 하류지역의 황화 문명을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로 보고 있고, 또 중국국가(민족)나 문명의 기원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대가 기원 전 약1500년 전 이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황화문명을 말할 때 ‘문명’(Civilization)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청동기란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황하문명은 한자의 기원인 갑골 문자를 사용하며, 국가단위로 치수(治水)정책을 보이는 등 어느 정도 국가체계가 형성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지금의 중국 땅 동북부지방에 B.C 4000~B.C3000년경 홍산문화(紅山文化)라는 신석기시대의 고대 문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중국의 기원으로 알려졌던 황하문명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중국학계에서는 홍산문화를 주로 요하(遼河)문명의 일부로 불리워지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을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학계가 1980년대부터 이 지역 문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요하문명이 중원문화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것을 발견하고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소위 황하문명인 중원 문화보다 앞선 문화가 북동쪽 변방에서  발견됨에 따라 중국문화의 중원기원설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중국 역사의  중원(中原) 기원설 뿌리를 흔드는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중국은 중원문화의 연대를 올리고 요하문화의 연대를 낮추어 요하문화를 중국 중원문화의 일부로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을 실행하고, 이 내용이 동북공정의 핵심 골격입니다. 

이렇게 중국은 홍산문화를 내세워 상고사를 재편하려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역사(고고)학계는 요하문화와 고조선을 포함한 우리나라 고대사와의 상관관계를 부정한 체, 요하문화의 지역권, 영향권, 문화권 등에 관하여 강 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입니다.

 

Q.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이 우리의 고구려 사(史)가 중국역사라는 주장을 하는 것에 우리가 반발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현재 지배하고 있는 지역인 홍산문화가 있는 만주지역의 고대사 역사도 중국 역사화(化)하는 ‘동북공정’과 관련이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내가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논문 등을 통해 논리적으로는 규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물 수집을 통해서 역사적인 진실을 입증하는 노력은 하고 있다고 봅니다.

앞서 얘기한 요하문화의 흥륭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빗살무늬 토기를 보면서, 한반도에서도 대표적 신석기 토기로 위 유물과 같은 빗살무늬토기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고조선 대표 유물인 비파 동검이 하가점 하층문화 유물로 같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유물들을 근거로 우리의 재야 사학자들 중에는 하가점하층문화가 단군왕검의 단군조선 문화라고까지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은, 홍산·하가점하층문화가 중국문명의 한 변방 문화에 속한다는 동북공정으로 가져다 붙이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단순히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한 변방의 역사로 치부한 것에만 많은 분들이 중점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 이전의 고조선 시대, 단군 조선 등의 우리 역사를 우리민족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거나 중국 변방에 중국이 다스리던 속국으로 평가한 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판단해서, 나는 홍삼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유물들을 수집했습니다.

역사적이거나 고고학적 주장은 아시다시피 ‘유물(遺物)’로 입증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Q.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고, 분명히 우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네요?

== 나는 유물 수집가이지 역사학자는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수집한 유물을 가지고 탄소검사 등의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서 또 이 결과를 문헌과 대비시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추측컨데, 홍산문화가 고대 한(漢)민족 즉, 중국민족의 활동무대인 만리장성 밖 요령성 일대의 지리적 입지를 가진 유적이란 점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성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중국의 동북지방, 즉 요동, 요서, 만주 등에서 펼쳐진 한반도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역사 왜곡 공작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韓)민족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내 소수민족 역사로 바꾸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땅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 유적을 당나라의 유적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Q. 그런 문제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산문화와 하가점유물이 중국의 문화보다는 우리나라의 고대 고조선 문화와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는군요? 

==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우리의 단군조선을 단지 신화(神話)로는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군조선과 고조선을 우리 한(韓)민족의 뿌리로 정식국가로는 인정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면 중국은 자기네 중국문화권 주변의 변방문화로 취급하고 싶은 의도를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나는 일부 향토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조선과 홍산문화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홍산문화는 신석기 문화이고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이기 때문에 같은 문화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죠.

다만 고조선은 청동기 국가로서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 수용을 통해 입지를 확보했다는 가설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청동기를 가진 환웅(桓雄) 족이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 족(族) 중 곰 토템을 가진 종족과 호랑이 토템을 가진 종족을 점령하는 하는 것이 단군신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곰족(熊族)은 굴복하여 생존하고, 호랑이 족은 반발하여 멸족하게 됩니다. 신석기 홍산문화 곰족 여인은 청동기 환웅 족의 씨를 잉태하여 단군이 탄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홍산문화의 우하량(牛河梁) 유적지에서는 곰 토템을 바탕으로 한 여신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단군신화를 역사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중국 역사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강남 연구실 벽에 진열되어 있는 홍산유물의 하나인 거북문양 토기 수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강남 연구실 벽에 진열되어 있는 홍산유물의 하나인 거북문양 토기 수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Q. 교수님이 고조선 사(史)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요하유물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돤 계기가 된 셈이네요?

==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또 다른 계기도 있었습니다.

아마 2000년경이었을 겁니다. 내가 일본 동경에 교환교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동경의 우에노 국립박물관에 들렸는데 거기에 한국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관 전시관에는 구석기 시대 일람표가 있고 그 다음 순서로는 한사군, 또 그 다음 순서에는 고구려시대 이렇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구석기 이후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즉 고조선이 있어야 되는데, 빠져 있는 거예요. 역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황당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때 일본이 이렇게 박물관 등에서 우리 역사 연대표를 잘못 정리하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각 시대별로 유물 정리를 못하는 나라입니다. 특히 고대국가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일본은 우리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버젓한 유물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단위로 유물 전시관을 꾸밀 수가 없었죠. 그래서 시대별로 유물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별 유물을 중심으로의 전시관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칼 종류 전시관, 토기 전시관 등등 유물 종류별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귀국 후 용산 중앙박물관에 가보았습니다. 문제는 거기에도 고조선 시대 실(室)이 없는 겁니다. 

지금 중앙박물관에 고조선 방이 따로 마련 된 것이 아마 7, 8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시대가 이렇게 경솔하게 취급 당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일제시대 식민지 사관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지 사관에서는 당연히 단군신화를 인정하지 않았죠. 

일본입장에서는 우리의 고려시대까지는 일본 자신들의 시대적, 특징적 문화권을 말하지도 못하는데, 우리는 단군 때부터 5000년 유구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고 하면 당연히 불편할 거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고조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부지런히 실증역사주의 입장에서 유물과 문헌으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더 첨부해서 지적해야 할 점은 한·중·일 3개국은 역사실증주의를 따릅니다. 그렇다고 똑같은 기준은 아닙니다. 

일본과 중국은 열 개 중 하나 유물이 입증되면 자신 국가의 유물이라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얘기하지만, 한국은 열 개 중 하나만 입증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유물이 아니라고 인정을 하지 않는 관행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학계나 고고학계가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고조선 유물은 현실적으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라도 나선 셈이 됩니다

 

 Q. 조금 이해가 되네요. 고조선 유물과 흔적을 찾아 북한에 쉽게 갈 수 있으면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다고 멀리 중국의 홍산문화와 하가점문화권을 가서 고조선과의 연관관계를 찿게 된 특별한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네요?  

== 우선 그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먼저, 북한의 국보 중에 빗살 무늬 토기가 있습니다. 이는 요하 문화의 흥륭와 문화의 빗살토기로 맥을 같이 하는 유물로 보입니다.

나는 거의 같은 토기를 10여점 수집하여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석기토기전을 개최하였을 때도 제 기증 토기가 대여품으로 초청받아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북한유물과 비교 해보며 다니지 못한 것은, 아시다시피 북한의 정치체제적인 문제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접근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현재 중국 땅 요하유물이 20세기 초부터 고고학과 역사학계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발견과 발굴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중국은 위 문화가 발견되기 전까지 양쯔강 중심의 황화 문명을 중국 문화와 종족의 기원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단군조선은 삼국유사에 B.C2333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지리적으로도 홍산문화권은 한반도와는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내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1990년대초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 교류가 시작되면서, 나의 관심사항인 유물수집이 중국에서 비교적 쉽게 가능한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는 고조선의 권역을 한반도에 국한해서 봐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중국 한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 등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고 관리를 직접 파견해서 다스렸다 합니다.

이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도 중국 고서에서 굳이 한반도만이 아니라 지금의 요동지방에 위치해 있었다고 나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학자 중에는 한사군 중 ‘임둔군’의 지명이 현재 만주(요동)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참고했습니다.

또, 홍산문화에 이어 같은 지역권에서 발견된 B.C 2500년경의 하가점문화 (夏家店文化)유물이  청동기 시대 유물이 주로 발견된 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조선 후반기의 청동기 문화에도 필연적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홍산문화권과 하가점 문화의 시기와 위치를 보아 우리 고조선과 관계가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수집된 유물들이 벽면을 싸고 있는 좁은 자료실에서, 이 교수께 유물들 설명을 들어가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홍용락(사진 오른쪽) 고문ⓒSR타임스
▲수집된 유물들이 벽면을 싸고 있는 좁은 자료실에서, 이 교수께 유물들 설명을 들어가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홍용락(사진 오른쪽) 고문ⓒSR타임스

Q.  지금은 엄연히 중국 땅이기 때문에 홍산, 하가점 문화권 유물을 수집하는데, 어려움은 많지 않았나요? 또 한국으로 반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 어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1990년대는 시기적으로 구입, 운반을 하는 데 지금보다는 편한 시기에 일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또, 중국사람들은 옥이나 비취 등에는 관심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토기에는 관심이 떨어져 내가 구입을 합법적으로 조금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도 들면서 중국의 문화재 법이 크게 강화 되면서, 이어서 해외 반출 금지령까지 내려졌습니다

나는 그 전에 부지런히 홍산지역과 하가점을 방학 기간과 심지어 학생들 시험기간까지도 짬을 만들어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드나들었습니다.

 

Q. 그렇게 애써서 모은 유물을 한성백제박물관에 기증한 이유가 특별히 있습니까?

== 제가 완제품만 2만5,000점을 기증했습니다. 파편 등을 합하면 3만 4천점 쯤 됩니다.

기증을 하게 된 동기는 우선 보관이 힘들었습니다. 유물 보관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갖춘 수장고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것을 장만할 형편이 안되죠.

다른 하나는 내가 개인으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다 보니까 학자들이 고조선과 연관지어 평가 해줘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인 된 박물관에 수장하면 유물에 대한 관심에 대해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고대국가에 대한 논리를 쉽게 전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기증한 한성 백제 박물관이 중국 유물 중 가짜는 기증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진품에 의존해서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고대국가와의 관련 논리를 쉽게 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가 한성 백제 박물관에 기증한 홍산, 하가점 유물은 국가 설립 지질연구소에서 과학적으로 진위여부를 확인 한 결과 85%가 진품으로 판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연대 측정 결과 전체가 고조선과 우리의 삼국시대 전(前)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유물을 학문적으로 분석 정리하고 매년 10회에 걸쳐 특별전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어 준다기에 수집가인 제 입장에서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기증한 것입니다.

 

Q. 장시간 유물과 고대사에 대해, 공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한테 세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평생 수집한 이 많은 유물을 기증한 분으로서 하고 싶은 말씀도 있을 것 같은데요? 

== 네.....

중국은 자기나라 역사도 짜깁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중국민족의 기원인 황하문명이 B.C2000경 시작되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청동기문화인 하가점 문화가 중국의 황화 문명보다 500~600년 앞서는 것으로 발견된 유물을 통해 학계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황한 중국은 하가점 문화를 기원전 2500년에서 300년 늦게 시작된 문화로 기록하고, 황하문명을 기원전 300년 앞서서 시작되었다고 바꿔서 기록을 하면서 주장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하가점문화의 연대가 BC 2000~2500년인 것은 고조선의 건국연대인 BC 2333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대비되는 상황을 억지로 선점하기 위해, 중국은 중원 문화 즉 황하문명의 기원으로 반 전설국가로 가공된 하(夏)나라를 내세우기까지 합니다.

즉, 중국의 황하문명과 소위 중국민족의 기원이라는 황제족(黃帝族)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주변에 문화권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의 역사 자체를 지워버리는 방법으로 중국 한(漢)족의 우월성도 과시합니다. 우리나라에게도 2000년 초부터 시작된 ‘동북공정’으로 민족적 자존심에 패배감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역사를 지켜 나가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참 간결하신 분 같다, 힘들게 유물을 구입하러 다녔으면 비화도 많을 듯한데... 전혀 구구한 말을 하지 않는 분 같다

유물 수집 과정에서 있을 법한 기념 사진도 안 찍었다고 한다.

또, 작년 연세대에서 정년도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노동법에 대해 연구가 꽤 있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다.

앞으로 관심사항을 물으니, 옥과 비취를 수집해 보려 한다 고 말했다. 그제서야, 어릴 때부터 우표수집, 동전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취미가 그림수집등으로 이어졌고 유물수집까지 이어졌다고 짧게 속내를 비춘다.

소박하게 말하지만 취미활동이 결국은 개인이 나라를 위한 애국을 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귀 기울여 볼 얘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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