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광 관장은 앞으로 목인박물관에 꾸미고 싶다는 선친 고 김일환 장군부부 영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 민예품과 문화재를 모으는 DNA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말했다.ⓒSR타임스
▲김의광 관장은 앞으로 목인박물관에 꾸미고 싶다는 선친 고 김일환 장군부부 영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각국 민예품과 문화재를 모으는 DNA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말했다.ⓒSR타임스

◆ 홍용락고문이 만난 '시대를 개척한 사람들' [2] 김의광 전 태평양 장원산업대표

약속시간에 맞춰 청와대 뒤편 넘어 부암동 '목인박물관'에 도착했다. 마침 목인박물관이 기획한 '세계지팡이전시회'를 관람하러 온 나선화 전 문화재청장을 안내하고 있는 관장님과 합류하여, 지팡이전시회 뿐만 아니라 목인박물관 내·외부 안내를 자세히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목인박물관 전시물(목인 약1200점, 석물 약800점)을 둘러보고, 전시관 앞 수장고(관장님은 수장고, 학예사실, 본인 숙식사무실 등으로 사용한다 함)에서 인터뷰에 들어갔다. [편집자주]

 

 - '설록차' 전도사에서 문화재 보존 지킴이 목인(木人)박물관 관장으로

 - "겸손함과 너그럽고 상대를 배려하는 언행이 타고난 분"... 소탈한 인간미 돋보여

 - 민속문화재 수장가로 공적책임감이 강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美感) 앞세워

 - 화장품과 설록차의 대명사 태평양화장품그룹(아모레퍼시픽 전신)사위...대기업 반열에 올려

 - MBC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촬영지인 부암동 '산모퉁이카페'를 장안의 명소로 키워

 

Q.  '목인박물관' 안과 밖을 배경으로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찍어도 끝날 때까지 한번도 같은 장면이 나오지 않을 만큼 전후좌우 배경이 다른 풍광이 좋은 곳이네요. '산모퉁이카페'도 뛰어난 경치로 장안의 명소가 되었는데, 이렇게  좋은 장소를 찾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요?

 

== 목인박물관은 제가 ㈜장원산업 회장(현 ㈜오설록 아모레퍼시픽 그룹 계열사)을 퇴직한 후 2005년 인사동에 목인박물관을 설립했습니다.

인사동 박물관은 현실적으로 제가 가진 유물의 극히 일부만 전시할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김 관장은 통상 수장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수량은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문화재수량의 10배이상 소장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박물관을 확장하려고 터를 구하던 중에 산모퉁이 집(나중에 카페)을 구하게 되었고, 그래서 부암동 ‘산모퉁이카페’가 장안의 명소가 된 배경에는 드라마 촬영지가 계기가 되었지만, 또 하나는 서울의 도심과 둘러싸인 산들의 풍광이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전시공간도 외적인 풍광에 좌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 후에 건너편 인왕산 자락에 박물관 터를 구했습니다.

▲김 관장이 현재 기획전시중인 ‘세계지팡이전시회’의 유물들을 나선화(사진 왼쪽) 전 문화재청장에게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김 관장이 현재 기획전시중인 ‘세계지팡이전시회’의 유물들을 나선화(사진 왼쪽) 전 문화재청장에게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Q. 관장님은 대기업 근무 30여년, 문화재수장과 연구를 하는 박물관 관장님으로 비슷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어느쪽에 더 열정을 쏟았고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제가 일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두번 받았습니다.

한 번은 '설록차' 와 관련해서 1992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또 한번은 2021년 박물관을 발전 시켰다고 공로로 수상했습니다.

제가 관심과 열정을 쏟고 의미와 긍지를 가지는 것도 사실은 이 두가지 모두 해당됩니다 

우선 대기업인 태평양화학의 둘째 사위로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평사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너인 회장으로부터 편애 받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태평양화학 공장에서 평사원으로 일하다가 사업다각화를 위해 유영산업(반달표 스타킹)을 인수할 때도 참여 했습니다.

그 당시 새벽 6시반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하고 일요일도 한달에 두번 휴무하는 조건 속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 선 기업들의 목표인 수출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회사직원들 먹고 사는 과정을 저 또한 다른 근로자들과 차이없이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회사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오너와 장인과 사위라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또 그 시대 대기업 풍토가 오너의 뜻에 상명하복하는 분위기임을 감안한다면, 특별하게 변화를 요구하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 물론 오너는 전 재산을 걸고 돈도 벌고 책임도 지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임원들한테도 다양하게 주문도 하고, 시험도 합니다.

그 당시 창업주는 전통녹차를 대중화하는 것이 우리문화산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추진했습니다. 그 뜻은 공감하지만 경영적으로 너무 사업확장을 급속히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진언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는 당시 그룹에서 '태평양돌핀스' 야구단을 운영하게 되었고, 야구문외한인 저를 2대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유는 그 당시 태평양 돌핀스가 중위권이였고, 팀 내부의 갈등으로 쌍방울 팀과 같이 최하위권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주인 장인에게 “저는 야구의 '야'자도 모릅니다” 라며 인사 재고를 요청 드렸습니다.

그때 오너는 "모르는 사람이 잘 할 수 있어, 잘 아는 사람은 요령만 피워” 라며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부임 후 첫해 8구단 중 최하위 성적을 냈고, 감독, 선수, 단장등 운영진을 면접해 보니, 성적이 안 좋으면 자기들 잘못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당시 정동진 감독 탓을 하였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니, 여러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데, 야구의 특성상 성적이 나쁘면 감독을 바꾸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구단 구단주인 회장님을 뵙고 설명을 드린 후, 정 감독님을 2년 유임시켰고 그에게 전권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최하위로 떨어진 팀이 코리안시리즈 2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야외전시장에서 현재 제철인 앵두와 오디를 같이 따먹으면서 유물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김 관장(사진 오른쪽)ⓒSR타임스
▲야외전시장에서 현재 제철인 앵두와 오디를 같이 따먹으면서 유물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김 관장(사진 오른쪽)ⓒSR타임스

Q. 대기업 근무 시 시대적 상황을 주어진 입장에서 나름대로 바꾸는 노력을 하셨군요. 하지만, 대기업 30여년 CEO까지 하신 분이 민간에 흩어진 문화재보존과 수장에 나서는 것은 생소하기도 하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 아닙니까?

 

== 유물과 문화재보존을 위해서는 그럴수도 있습니다. 문화재 수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돈이 남아서 문화재를 사는 사람은 없다. 먹을것 입을것을 아껴서 구입한다”라고 합니다.

저도 대기업 CEO를 했지만 돈이 풍족해서 문화재를 구입하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제 아내 서혜숙씨의 도움으로 2015년에 목인문화재단을 함께 설립했고, 지금 목인박물관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관리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다행히 ‘ 산모퉁이카페’에서 얻는 이익금을 이 박물관 관리에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물과 문화재를 수장하면서 나름대로 민족역사에 자긍심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큰 돈이 되지 않지만 즐겁게, 자랑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Q. 민족문화보존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인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말씀해 주신다면요?

 

==그러니까 고인돌 같은 경우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80%를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이유의 하나죠.

그리고, 우리의 석조물과 비교해 그리스, 로마시대 석조 건축물, 피라미드 같은 대형석조물을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하지만, 목인박물관에 있는 무수한 장군석,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맷돌, 절구 등, 민속품은 작지만 우리 선조와 생활해온 숨결을 새삼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박정희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가 급속한 산업화로 고속도로, 댐 건설 , 국토개발 사업이 이뤄지면서 등잔 ,민속품,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 상여 등의 민예품이 버려질 수 있는 상황에서 민간에서 누군가가 보존해야 시대적으로 민족의 생활 가치와 정신이 이어질 수 있었지 않았겠어요.

 

▲제조과정에서 불량품으로 폐기된 장독과 도자기도 후대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물이 될 수 있다고 수집하는 김 관장만의 독특한 미감(美感)ⓒSR타임스
▲제조과정에서 불량품으로 폐기된 장독과 도자기도 후대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물이 될 수 있다고 수집하는 김 관장만의 독특한 미감(美感)ⓒSR타임스

Q. 요즘 크게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있다면서요?

 

== 지난 80년대부터 장례식에 사용하는 상여와 그 부장품 그 중에서도 상여인형 즉, 꼭두라고 불리는 것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장례문화를 상여로 꾸미는 나라는 중국 이외에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중국도 상여는 사용하지만 장식품은 없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Q. 관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우리 문화제 보존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 젊었을 때 태평양에 다닐 때, 미8군에 있는 미국친구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집 거실에 우리의 옛날 민속품을 수집한 미국 친구가 그것을 자랑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Q. 조금전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작고하신 아버님 사진을 모아두고, 앞으로 아버님 방을 하나 꾸미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네, 내가 이런 문화재를 보존하고 수집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있나 봅니다. 아버지는 육군 중장 출신에 이승만 대통령시절 내무, 교통, 상공부장관 등 3개부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건국에 기여하신 김일환 장군입니다.

아버지는 6.25당시 육군대령이었는데,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된 국보 15점, 보물 124점과 한국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트럭 두 대분의 금괴와 은을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송시켰습니다.

이 금괴들은 1955년 한국이 IMF 가입할 때 출자금으로 충당했고 국보들은 휴전 후 세계순회전시를 한 후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또, 아버지는 작고하신 유명한 언론인 선우휘씨 후임으로 2대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도 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영향인지 김 관장은 (사) 한국사립박물관 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사)국립민속박물관회의 부회장도 맡고 있다. 또, 본인 출신교인 대광중고등학교 발전재단의 이사장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김 관장이 현재 기획전시중인 유물들을 나선화(사진 왼쪽) 전 문화재청장에게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김 관장이 현재 기획전시중인 유물들을 나선화(사진 왼쪽) 전 문화재청장에게 설명하고 있다.ⓒSR타임스

Q. 관장님께서는 문화재를 금전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취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애써 수집한 문화재를 때맞춰 필요한 곳에 기증도 하신다면서요?

 

== 뭐 내세울 건 없지만, 돈 때문에 문화재를 수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문화재를 통해 조상의 생활상과 의식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수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재가 필요한 곳에 기증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하려면, 우연, 필연, 시기가 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재작년 인천에서 수원으로 운행하던 협궤열차 3량을 구입해 2량은 송도문화공원에, 1량은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해 전시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목인박물관에 전시하려 했습니다만, 저는 평소 문화재가 있어야 할 곳은 적재적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나눔의 시기도 적기에 해야만 그 문화재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조건이라는 것을 그 일을 통해 배웠습니다

 

Q. 사실 이 기증도 돌아가신 선친의 DNA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들 합니다

 

== 그럼 그게 2대에 걸쳐 문화재 기증하는 가족 사례가 됩니까? (김관장께서 ‘허허’ 하고 한참 웃는다)

사실 아버지도 1972년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여사가 주신 궁중십장생 병풍을 평소 사랑을 많이 받았던 김활란박사의 탄생100주기를 맞아 1998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아낌없이 기증하셨습니다.

 

Q. 관장님께서 문화재수집에 돈과 크게 연관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목인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이 재단법인화 했다는 것을 보면 이해된다는데, 무슨의미인가요?

 

== 제 아내와 함께 2015년에 재단법인 목인문화재단을 설립해서 목인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목인박물관의 문화재는 제가 개인적으로 처분 활용할 수 없고, 자녀들에게 상속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제가 재단을 운영하다가 운영이 안되면, 국가나 유사단체에 귀속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 있는 문화재는 제 개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단의 것이고, 재단의 것은 곧 국가의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김 관장과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SR타임스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김 관장과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SR타임스

인왕산자락에 있는 목인박물관은 앞으로는 북한산 스카이라인과 맞닿는 봉우리들이 병풍으로 진을 치고 있다. 또 옆은 인왕산 바위와 한양도성 성곽이 목인박물관을 휘감는다.

그리고 3000여평 야외전시장과 7개 전시장은 우리나라 민예, 민속 문화재 뿐만 아니라 인도, 아프리카, 유럽의 굴뚝 같은 옛날 민간 생활도구뿐 아니라 국가적 가치를 지니는 문화재까지 김 관장의 독특한 색감(色感)과 미감(美感)에 의해 수집되고 배열되어 있다.

▲ⓒ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김 관장은 매일같이 산모퉁이카페와 박물관에 출근해 정원을 가꾸고 유물을 매만지면서 관람객들에게 설명도 하고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대만족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욕심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삶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란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먼저 자신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라고.

앞서가야 하는 대기업 CEO가치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가치변화가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사회를 살리는 길임을 알아채고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대담=홍용락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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