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성우의 길을 걸어온 배한성은 요즘도 한주에 3,4회 방송과 외화더빙 등 고정스케쥴로 스튜디오 녹음을 한다고 한다.ⓒSR타임스
▲56년 성우의 길을 걸어온 배한성은 요즘도 한주에 3,4회 방송과 외화더빙 등 고정스케쥴로 스튜디오 녹음을 한다고 한다.ⓒSR타임스

◆ 홍용락고문이 만난 '시대를 개척한 사람들' [3] 56년 경력 국민성우 배한성

여의도 한 호텔 커피숍 테라스에서 만날 때, 여전히 단정한 노타이 캐쥬얼 자켓차림에 앞부분 약간 붉은색 브릿지로 멋을 낸 단정한 머리카락 차림이다. 옆에 매고 다니는 배낭 스타일이 나이를 좀처럼 가름할 수 없게 한다. 1시간 인터뷰 후 근처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서둘러 인터뷰가 시작되었다.[편집자주]

 

- 천의 목소리로 듣는 사람의 감성을 녹이는 목소리 연기의 장인(Artisan)

 - 인생 '롱런' 위해서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로 산다

 - 21세 데뷔... 56년간 라디오드라마, TV토크 프로그램, TV드라마 배우 등 종횡무진 출연

 - 세월과 시대가 변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열정과 시대를 맞춰가는 자세와 노력뿐

 - 대중예술인 성우는,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앞에 새롭게 변화해야 생존 가능

 - 목소리연기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활과 취미까지도 미학적 미감을 높이는데 바탕을 둬야 

 

Q. 여전히 단정하십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 매일 전철을 애용합니다. 그리고 계단도 웬만해서는 배낭을 매고 걸어서 다닙니다. 그리고 매일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있고요, 또 여기저기 강연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마스크를 쓰고 전철을 타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긴가민가 하며 쳐다봅니다. 알아보는 거죠. 그럴 때 제가 쑥스럽지 않게 제가 먼저 인사를 건냅니다.

그런데 한번은 연세드신분들이 자꾸 쳐다보길래 인사를 드렸더니, “맞네 성우 배한성씨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망해서 인기스타가 전철을 타고 다닙니까” 하길래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맞아요 제가 지독하게 하나를 망했습니다. 제가 외제차만 타고 다니다 보니까, 건강 하나를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젊은 시절 같은 건강도 찾았고, 덤으로 일에 대한 열정도 얻었습니다” 라며 같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Q. 건강은 자신있으시다...(실제 연세가 1940년대 중반 출생이다).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같이 데뷔한 기라성 같은 성우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또 요즘의 인기 절정의 젊은 성우분들 사이에서도 출연활동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실제 저는 성우협회 이사장도 거친  말하자면 성우로서는 원로그룹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해서 오늘까지 젊은 시절에 라디오 드라마와 무수한 외화더빙을 통해 성우의 연기 기본을 잘 닦은 입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물려준 목소리에 젊은 시절 주변에서 배극성(?)이란 이름으로 불리워 지면서 열심히 목소리 연기를 변화 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성우시장을 팬들께서는 몇몇 유명 성우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걸 보면서 화려하게 보시지만, 사실 일이 없는 후배들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장르는 섭외가 와도 가능하면 후배들한테 양보합니다.

▲서울 강남의 ‘원 에디션 아트 스페이스’에서 5월부터 6월 하순까지 미적감각을 높이기 위해 취미로 수집한 고미술품과 에틱가구 전시회를 하고 있다ⓒSR타임스
▲서울 강남의 ‘원 에디션 아트 스페이스’에서 5월부터 6월 하순까지 미적감각을 높이기 위해 취미로 수집한 고미술품과 에틱가구 전시회를 하고 있다ⓒSR타임스

Q. 훌륭하십니다. 성우들이 관련 일에 섭외가 들어올 때, 선택하는 기준은 뭐가 있습니까? 일반 팬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거든요

 

== 우선은 본인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본인들의 능력이고요. 왜냐하면 성우들은 소위 독립사업가 아닙니까? 그래서 한번 섭외에 능력 평가가 잘못되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없어 지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성우협회 이사장 할 때 성우들에게 처음으로 성우연기 기초를 다지는 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두번째로 성우출연 때 고려할 점은 개런티 문제입니다. 요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쪽에서는 너무 저렴하게 성우출연 개런티를 책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후배들은 저한테 그 쪽(게임. 애니메이션 등 성우 저가시장)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배 선배가 앞장서서 단가를 높이 불러 전체적인 출연 개런티를 높여달라고 부탁도 합니다.

하지만 나 혼자 살수도 없는 세상 아닙니까. 그래서 그 쪽 부분 출연섭외가 들어오면 후배들한테 거의 양보합니다. '가제트 형사' 역이라든지 배한성이미지가 확고하게 들어가야 전체적인 스토리를 살릴 수 있는 것만 마지못해 출연합니다.

 

Q. 그렇다면, 배 선생님이 오늘날까지 무려 56년동안 인기성우로서 변함없는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면요?

 

==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면요. 우선 천부적으로 타고난 자질은 부인할 수가 없겠죠. 인터뷰하는 홍용락고문도 일반인치고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노력했으면 성우로서 대성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렇지만 타고난 자질만 가지고 성우연기자로 성공할 수는 없겠죠. 그 목소리를 매력있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타고난 끼에 계속 변화를 주려는 노력 없이는 절대 성우로서 기반을 잡기가 힘듭니다. 그러니까 머물지 말고, 새롭게 바꿔야하고, 계속 좋은 방식을 찾는 노력을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살이도 “롱런(Long- run), 오래 일해야 하는 시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롱런Long- learn), 즉, 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오랫동안 배우고 공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면서 가지고 다니는 배낭에서 시간날 때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게 읽을 책과 신문을 갖고 다니는 것을 꺼내서 보여준다)

▲90년대 티코와 다마스로 유라시아 횡단을 두달하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 카퍼레이드를 하기 전 배한성(오른쪽 두번째)ⓒSR타임스
▲90년대 티코와 다마스로 유라시아 횡단을 두달하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 카퍼레이드를 하기 전 배한성(오른쪽 두번째)ⓒSR타임스

Q. 계속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가 오늘날 배 선생님이 있게 한 요인이 되었군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는게 나이가 먹었다는 한문으로 ‘노인(老人)’이 되어서도 안되고, 또 부정적이고, 소통이 잘 안되는 이미지인 영어 ’노인(NO-in)인’이 되어서도 안되며, 뭐든지 잘 아는 ‘노인(Know-in)’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예술대학교에서 15년 가까이 교수생활을 병행하며 젊은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들은 세상과 전문분야를 혁신 시킬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 세대다. 또 여러분들은 시대를 빨리 끌고 가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나이든 세대도 좋은 지름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입장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며 노소동락(老少同樂)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Q. 그런 인생자세로 이렇게 젊게 사시는군요? 그렇다면 시대에 맞춰 성우연기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 “지금방식대로 하면 나의 직책과 수입이 그대로다” 라는 생각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죠. 즉, "같은 얘기도 오늘 한 것과 내일 하는 것이 다르게 들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노력했습니다.

한 예로 젊은 시절 영화 대부에 나오는 알 파치노 연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알 파치노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다른 감정톤의 연기로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실제 배우 알 파치노도 대사를 외울 때 한마디 대사를 수백 번 다른 감정으로 연습을 합니다. 어떤 대사는 1만 번 가까이 다른 감정으로 연습합니다.

(그러면서 즉석에서 알파치노 대사 하나를 열번이상 다른 목소리톤으로 실연을 해 보였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에 ‘역시 대가십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 했다)

또 하나의 시대 트렌드에 맞게 성우가 노력해야 할 부분은 평소 생활에서부터 절대 미학(美學), 절대 미감(美感)을 갖추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대본만 가지고 목소리 연기를 하면 듣는 사람들한테는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목소리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실제 연기하는 배우들보다 더 자기가 맡은 배우들의 특징과 극의 흐름을 분석하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천박한 역할을 하는 목소리 연기는 성우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만, 주인공의 고급스럽고 지적인 역할은 미학적 미감(美學的美感)이 갖춰진 사람이 아니면 잘 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어려서부터 취미생활도 미학적 미감을 갖추는 쪽을 택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학적 미감을 가지면서 미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는 인터뷰 시간이 허락되면 뒷 부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의도의 한 호텔 테라스에서 인터뷰할 때도 옆 테이블 손님에게 먼저 인사하는 배한성. “대중예술인은 대중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게 대중에게 갚는 최고의 예의라 한다.ⓒSR타임스
▲여의도의 한 호텔 테라스에서 인터뷰할 때도 옆 테이블 손님에게 먼저 인사하는 배한성. “대중예술인은 대중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게 대중에게 갚는 최고의 예의라 한다.ⓒSR타임스

Q. 어릴 때부터 타고난 목소리라 처음부터 성우를 지망하게 되었겠네요

복사

== 아닙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안좋았습니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를 나온 인텔리였지만 6.25전쟁 때 월북을 했기 때문에, 어린시절 식구들이 단칸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소년가장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꼭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서울 인현동에서 살았는데, 먹고 살기도 지쳐 있었지만, 근처 담이 나무로 되어 있는 국도극장과 대한극장을 몰래 들어가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세번이나 훔쳐 볼 정도였습니다. 특히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 배우를 너무 좋아해 그가 나오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한번은 당시 을지로5가에 계림극장이 있었는데, 로버트테일러의 ‘고성의 검화’를 몰래 들어가 보다가 그 극장 미술실로 끌려가 직원이 내 이마에 빨, 주, 노 삼원색페인트로 칠을 해 며칠 동안 지우질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소년가장을 하면서도 영화를 좋아해 서양의 발달된 거리, 자연, 풍경 등의 서양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배우 꿈을 키웠습니다.

 

Q. 그럼 영화배우를 하시다가 잘 안되어서 성우로 전환한 건가요?

 

== 꼭 그런건 아닙니다. 당시 집안형편이 어려워 인문계를 갈 수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최고의 상업계 중 하나인 덕수상업고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고등학생때도 막연하게 영화배우의 꿈이 있었지만, 그 때는 이성적으로 어느정도 생각해 보니까, 당시 영화의 주인공을 하려면 완벽한 미남이라는 고 신성일 선생님이 모델이었는데, 내 외모를 객관적으로 보니까 주인공감으로는 약간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에 라디오드라마가 또 대단한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고 한운사선생님이 집필한 ’현해탄은 알고 있다’ 같은 라디오 드라마 방송 때는 아주머니들이 다 듣기 때문에 서울시내 수도물 사용이 중단된다고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배우의 꿈을 버리고 목소리를 믿고 고등학교 2학년때 당시 동아방송(DBS)에서 라디오 성우 모집 시험에 6촌형 고등학교 졸업장을 대신 내고 응모했지만 떨어졌습니다. (당시 응시자격조건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었기 때문)
실망이 컸지만, 당시 신성일, 신영균 등 톱 클래스 배우들의 대사를 그대로 반복해서 연습하며 성우의 꿈을 계속 키웠습니다. (그 때 연습하던 ‘별들의 고향’ 신성일배우의 대사를 또 한번 직접 실연해 보였다. 

(‘경아~~~~~ 춥지~~~~~~이리와~~~~~)

그러다가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학교 전신) 방송과에 친구돈을 빌려 등록금을 내고 들어가서 당시 유명한 연출가였던 이원경교수님께 성우연기의 기초를 탄탄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TBC 2기 성우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성우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빈티지 가구 전문점인 ‘HLUT’와 올드카 문화 공간인 에레보( Erevo) 콜라보레이션 전시장에서, 같은 취미를 가지고 고미술품과 옛것에서 미적감각을 찿는 아버지(배한성)는 콜렉션의 거성(巨星), 아버지한테 취미와 미적감각을 배워온 아들(배민수)은 신성(新星)이라고 서로 추켜세운다.ⓒSR타임스
▲빈티지 가구 전문점인 ‘HLUT’와 올드카 문화 공간인 에레보( Erevo) 콜라보레이션 전시장에서, 같은 취미를 가지고 고미술품과 옛것에서 미적감각을 찿는 아버지(배한성)는 콜렉션의 거성(巨星), 아버지한테 취미와 미적감각을 배워온 아들(배민수)은 신성(新星)이라고 서로 추켜세운다.ⓒSR타임스

Q. 배선생님 목소리의 장점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제가 성우연기를 잘 할 수 있는 바탕은 우선 서울출생이어서 사투리 톤이 없고요. 또 영화감상을 많이 해서 감정이입이 잘되고요. 또 순간순간 원작에 맞는 변화를 잘 추구하는 극성(?)맞은 열정이겠죠. (허허 웃으며 쑥쓰러워 했다)

좀 더 세밀하게 말씀드리면 타고난 ‘비공(鼻空)’으로 내는 음성이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비공이 남보다 좋은 것은, 외국영화 더빙 할 때, 비공으로 주인공이 속삭일 때 공명이 살짝살짝 터치하니까, 자연스럽게 원작의 감정을 더 매력 있게 전달할 수 있죠.

어쨌던 비공이 좋다는 것은 사랑장면을 더 서정적이고, 또 외롭고 쓸쓸한 주인공의 애수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데 꽤 유리할 수 있죠.

그래서 소설가 강유일씨는 그 당시 유명한 외화 '야망의 계절' 방송평을 통해, “보통 성우들은 원래 영화의 외국배우들의 외모와 매력에 덕을 보는데, 이 영화 주인공 ‘루디 조다쉬(피터 스트라우스)’가 성우 배한성씨의 설레임과 그리움을 담은 목소리 연기의 득을 본다” 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Q. 앞에서 성우는 미학적미감을 가져야 주인공역할을 잘 소화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취미생활도 그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십니까?

 

== 우리 고미술품과 앤틱가구(100년 이상 된 서양식 가구)를 수집합니다. 지금 강남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옛 미술품의 은은한 미감을 저 스스로 즐기면서 즐거움도 갖습니다. 또 시계와 자동차도 수집하면서 그 정교한 미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오래된 것도 수집해서 타고 다니면서 직접 미감을 느낌으로 체험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수집 중독을 화려한 것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절대 크지 않을 것, 배기량 2000cc를 넘지 않을 것, 누가 봐도 아름다울 것 세가지 원칙을 지킵니다.

제가 차 디자인을 보면서 미감수준을 높이는 것이 알려지면서 1992년에는 티코와 다마스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한 적도 있습니다.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에게 요청해 4명이 2대의 차로 체코, 폴란드 등 수교를 했던 국가를 거쳐 시베리아를 두달동안 지구 지름의 반 거리인 1만9000km를 돈 유라시아 횡단이었습니다.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배한성 씨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SR타임스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배한성 씨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SR타임스

고생도 많이 했죠. 당시는 워키토키 연결거리가 500미터밖에 되지 않아 눈보라속에서 서로 찾느라고 밤을 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또 러시아에서는 길 안내 하던 사람이 갑자기 권총을 들이대어 가진 것을 몽땅 털린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북경의 천안문광장에 골인 후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왔는데, 당시 김우중 회장이 김포에서 서울역 대우빌딩까지 카퍼레이드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흔히 당시에 한국에서 유명VIP(귀빈)범주에 들어가려면, 새해에 보신각타종에 선발될 수 있어야 하고, 또 청와대와 미국대사관 초청 식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카 퍼레이드를 한번 해야 만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저도 카 퍼레이드를 해 봤으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마흔이 넘어 얻은 아들도 차 매니아이기 때문에, 부자가 같이 유라시아 횡단 같은 나의 미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

 

Q. 아드님은 고등학교때 부터 SBS ’붕어빵’ 등등에 자주 출연하던 그 아드님이죠.

 

== 대학교에서 영화공부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 뭐하나요?

민수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TV에 출연해서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봐 입담정도가 장난이 아니게 좋았습니다. 또 나를 닮아 지독한 수집광이기도 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더니 축구선수 유니폼 수집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차 수집 중독도 물려 받는 거 같습니다. 요즘은 삼청동에서 스칸디나비아스타일 빈티지 가구전시장 훌러트(HLUT)를 경영하며, 방송출연과 취미활동을 병행하는 사업을 합니다.

▲서울 강남의 ‘원 에디션 아트 스페이스’에서 5월부터 6월 하순까지 미적감각을 높이기 위해 취미로 수집한 고미술품과 에틱가구 전시회를 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원 에디션 아트 스페이스’에서 5월부터 6월 하순까지 미적감각을 높이기 위해 취미로 수집한 고미술품과 에틱가구 전시회를 하고 있다ⓒ

나도 가끔 가서 격려도 해줍니다. 손자 같은 아들이지만 부자가 취미생활과 미적공감대가 비슷해서 자주 어울리는 편입니다. “가족들한테서 행복공감대를 찾아야 자기하는 일에 전념하는 프로정신이 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인터뷰를 서둘러 마치고 근처 스튜디오에서 국회의원 25시 나레이션 녹음에 제작진과 약속시간을 지켜 가야 된다고 서둘러 일어서는 당대 최고 성우의 꼿꼿한 뒷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또, 가끔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는 것을 보면, 높은 경지에 도달한 한 대중예술인이 성숙된 인간적가치도 완성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대담=홍용락 논설고문]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