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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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웰메이드 하우스 호러 (feat. 가족 코미디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들어왔어.”

잠들어 있던 수진(정유미)은 남편 현수(이선균)가 갑자기 내뱉는 말에 깜짝 놀란다. 잠꼬대였을까? 

다음날, 아랫집에 이사 왔다는 사람이 일주일 내내 층간소음에 시달렸다며 불편을 호소한다. 아마 전에 살던 진상 할아버지는 이사갔나 싶다. 그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층간소음을 일으켰다는 건 억울하다. 어젯밤 딱 한 번뿐이었는데. 

▲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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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회사에 다니는 만삭의 임산부 수진은 가뜩이나 예민한 상태다. 어젯밤 소동도 기억 못 하는 남편이 서운하다. 토라진 수진에게 현수는 아마도 외우고 있던 대사를 잠꼬대한 걸 거라며 수진을 달랜다. 

현수는 아직 꽃피지 못한 단역 배우다.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 장면은 연기가 바보 같다면서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의 잠꼬대는 배우라는 직업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현수의 잠꼬대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잠들었을 때 기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잠에서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남편이 딴사람이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수진의 불안감은 커진다. 병원에서는 현수를 ‘렘수면행동장애’라고 진단한다. 수진의 배 속에는 곧 태어날 아기가 있다. 그녀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었다. 

▲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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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수면 클리닉 처방을 철저히 따른다. 하지만 현수의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수진은 점점 병원에서 내린 진단이 과연 정확히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왠지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수진의 의심이 짙어져 가는 순간, 뜻밖의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이때부터 다정했던 신혼 부부의 이야기는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간다.

▲잠. ⓒ롯데엔터테인먼트
▲잠.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은 3장으로 구성된 독특한 서사를 지닌 복합장르 영화다. 하우스 호러, 미스터리, 오컬트 그리고 코미디 요소로 관객들의 다양한 영화적 취향을 만족시킨다. 등장인물의 시점, 관찰하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단서나 지점도 곳곳에 숨겨져 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은 알콩달콩했던 신혼부부의 심리변화를 따라가게 만드는 동시에 신마다 극도의 텐션을 유발해 심장을 조인다. 부부의 탄탄한 의지를 흩트리기도 하고 역으로 더 단단하게 옭아매기도 하는 지점들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 관찰자 입장에 있는 관객을 계속 인물에 빠져들게 만드는 극의 흡입력도 뛰어나다. 

▲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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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멀리서 보면 코미디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알콩달콩한 부부애를 보여주며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가족애와 모성애가 서로 삐걱거리며 상충한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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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과 샤머니즘이 한 공간 안에서 시점을 달리해 과도하면서도 기괴한 형태로 펼쳐지는 부분도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일상이 무너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게 되는 모순된 지점들은 장마다 미술, 조명, 음악 등 프로덕션의 디테일을 살려 현실감을 높였다.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도 압권이다. 이선균 배우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다정한 남편, 소름 끼치는 괴인, 공포에 맞서 가족을 지키려는 모습 등 다채로운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 정유미 배우는 소름 돋는 감정연기로 장마다 극적으로 변화하는 수진의 내면을 광기 어린 눈빛으로 강렬하게 연기해낸다. 

▲잠.ⓒ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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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입체적인 인물 묘사와 서사에 몰입하다 보면 장과 장 사이의 빈 여백 지점에서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는 점도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때로는 죽음과 탄생을 연이어 던지며, 기묘한 공포와 함께 희로애락의 감정이 공존하게 한다.

감춰진 여러 극적 장치들을 숨바꼭질하듯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최종장에 다다른다. 이 여정에서 부부가 그려내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툭툭 던져지는 단서를 차근히 곱씹다 보면 의외로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해석하는 사람의 시선이나 가치관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게 한 서사 설계는 치밀하다. 영화를 본 후 어떤 해석을 내놓더라도 그 무엇도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유재선 감독이 설계한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장르 영화의 새로운 시도와 진화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하우스 호러와 코미디극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번 작품은 재미있는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유재선 감독의 목표가 성공적으로 잘 반영된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다. 그의 다음 작품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잠.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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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잠 (SLEEP)

각본/감독: 유재선

출연: 정유미, 이선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루이스픽쳐스

촬영감독: 김태수

미술감독: 신유진

음악: 장혁진, 장용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94분

개봉: 2023년 9월 6일

스크린 리뷰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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