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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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의 사명감이 깃든 동양인 차별에 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2014년, '코레암 저널(KoreaAm Journal)' 편집장이었던 하줄리 감독은 이철수라는 1세대 재미교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고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취재 방문이었다. 그곳에서 하줄리 감독은 자신을 언론인의 길로 이끌었던 멘토 이경원 기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이철수 사건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날 하줄리 감독은 이철수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에 눈뜬다. 동료였던 이성민 감독과 의기투합했다. 1년 후 이 두 명의 한인 2세 감독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 제작에 착수한다. 여기에 김수현 프로듀서까지 참가했다. 무려 6년이 걸린 대작업이었다. 덕분에 이 다큐멘터리 안에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와 푸티지를 넣을 수 있었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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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건은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거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중국 갱단원 ‘입이택’이 누군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 그로부터 5일 후 차이나타운 유흥가의 호객꾼이었던 21세 한인 청년 이철수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증인 3명은 이철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미 전과가 있는 절도범이었으며 집에서는 총과 실탄이 발견됐다. 

이철수 본인이 말하듯 그는 천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었다. 경찰의 사건조사는 허술했고 인종적 편견 속에서 진행됐다. 증언한 목격자들은 동양인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이었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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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에 수 백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중국계 목격자들은 폭력단의 보복이 두려워 증언을 거부했다.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한 총도 발견된다. 이철수가 실수로 벽에 쐈다고 주장하는 총알과는 강선흔이 달랐다. 당시 중국계 갱단 내부세력 다툼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계 이민자가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모든 정황과 증거는 그가 범인이 아님을 가리켰다. 이철수는 살인 누명에 관한 모든 것이 오해이기에 금방 진실이 밝혀져 감옥에서 풀려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의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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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일어났던 이철수 구명 운동은 미국 내 뿌리 깊은 동양인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국계 뿐만 아니라 일본계, 중국계, 필리핀계 등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가 하나가 돼 불합리한 미국 사법부와 사회적 차별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철수 구명 운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미국에서 공식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다. 교과서에 실리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지도 않는다. 만약 이철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면 그가 겪은 부당한 사건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은 달랐을 것이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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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가감 없이 인간 이철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보여준 행보는 구명운동을 하며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국에 살았을 때 가난했지만 좋았던 기억들, 미국으로 자신을 데려간 친어머니를 향한 복잡한 감정, 구명운동을 위해 변호사가 되어 변호인단에 들어간 친구 랑코 야마다, 법정에서 특별한 변론을 펼쳤던 토니 세라, 사건을 공론화한 아버지 같은 존재 이경원 기자 등 그의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 역시 세세하게 다룬다. 그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 심리적·정신적 문제와 일탈을 겪어왔는지 빠짐없이 보여준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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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작품은 6.25전쟁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재미교포 1세대들이 겪었던 불행하고 어두웠던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이철수를 통해 보여준다. 동시에 한인을 비롯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차별에 대한 영상물은 수없이 많지만, 동양인의 그것에 대한 영화는 흔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도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의미와 가치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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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가 교도소 호송길에 들었다는 타워 오브 파워의 ‘You're Still a Young Man’은 이 영화에서 테마곡처럼 사용된다. 이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노래는 희망을 전하고 있지만, 굴곡진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던 이철수의 삶과 대비되어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도 이철수처럼 될 수도 있었지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이경원 기자의 말은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로 남는다. 이경원 기자는 이철수 구명 운동 뿐만 아니라, 1992년 LA폭동을 취재하며 흑백갈등 사이에서 엉뚱하게 희생양이 된 한인 사회에 관한 기사를 썼던 언론인이기도 하다.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들의 의지를 기록한 영화 ‘프리 철수 리’는 건조하기 마련인 다큐멘터리 안에 공감의 감수성을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가 있기에 평범한 삶에 섞이려 부단히 애쓰며 모래알 같은 삶을 살았던 이철수를 누구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 철수 리. ⓒ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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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리 철수 리 (Free Chol Soo Lee)

감독: 하줄리, 이성민

출연: 이철수, 이경원, 유재건, 랑코 야마다, 제프 아다치, 세바스찬 윤(내레이터) 외

프로듀서: 김수현, 진 티엔, 조소나, 하줄리, 이성민

제작: 이철수다큐멘터리 유한책임회사 (Chol Soo Lee Documentary LLC)

배급: 커넥트픽쳐스 

러닝타임: 86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3년 10월 18일

스크린 리뷰 평점: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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