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리뷰, 한국형 어반 판타지물의 부활 [심우진의 S.R.]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어반 판타지(Urban Fantasy)는 현대를 배경으로 마법, 이세계, 오컬트, 흡혈귀, 이능력자 등 초자연적 요소를 담은 장르물이다. 소설, 영화, 만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져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서양권에서는 ‘월드 오브 다크니스’, 일본에서는 키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시리즈나 타입문의 ‘공의 경계’ 시리즈가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이우혁의 ‘퇴마록’이 대표적이며 ‘도깨비’, ‘호텔 델루나’ 등 드라마로도 인기를 얻었다.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하는 김성식 감독의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각자 전문적 능력을 갖춘 비밀 결사팀이 세상을 위협하는 미스터리한 악과 싸우는 이야기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튜브 ‘하늘천 TV’를 운영하는 천박사(강동원)는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일을 한다. 그의 조수 인배(이동휘)는 독실한 종교인인 어머니에게 자신이 정신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하이테크 치료센터’에서 일한다고 변명하기 바쁘다. 

따지고 보면 천박사가 의사 면허증이 있는 진짜 정신과 의사라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가 명탐정 코난 뺨치는 뛰어난 두뇌와 관찰력으로 고객의 마음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가짜 퇴마쇼로 돈 뜯어내는 사기꾼이라는 것. 그런 그는 정작 귀신을 믿지 않는다.

한편, 인배는 천박사에게 틈만 나면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짐꾼부터 기술 서포트까지 혼자서 일인 다역을 해내니 그럴 만도 하다. 천박사에게 매번 짜장면을 빼앗기는 골동품 가게 황사장(김종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대대로 마을을 지키던 당주 장손이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게 안쓰럽다. 

사기 행각을 정신과 치료라며 궤변을 늘어놓는 천박사에게 어느 날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자신의 동생 유민(박소이)의 퇴마를 해달라는 것. 천박사는 견적이 안 나온다며 문전박대를 하려다가 유경이 돈다발을 들이밀자 냉큼 사건을 접수한다. 인배 또한 나름 유경에게 반해버려 이번 일은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유경이 사는 동네로 접어드는 순간, 음산한 어둠의 힘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천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왔던 비극의 기억과 연결된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똬리를 틀고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존재가 되려는 사악한 욕망을 품고 있는 범천(허준호)의 존재를 마주한다. 그런 범천에게 노림 당하는 유경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천박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에 뛰어든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한국형 어반 판타지 영화다. (이 장르는 ‘퇴마록’ 등장 이후 2000년대까지는 인기를 얻었지만, 이제는 이능력자 배틀물이나 현대 갑질물 등 다른 장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실 배경만 중세 판타지 시대에서 현대로 옮겨왔을 뿐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갖춘 팀원들이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파티를 결성하고 모험을 하는 RPG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래서 천박사는 마검사, 인배는 메카닉, 황사장은 샤먼에 대응하는 캐릭터 속성으로 극 속에서 활약한다. 

전반부는 코미디와 호러가 공존하는 오컬트형 '고스트 버스터즈’의 재미를 보여주며 만족스러운 출발을 이룬다. 천박사가 당주라는 단어에 발끈하는 내면의 깊은 이유가 밝혀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악령과의 빙의 배틀 액션을 보여준다. 사건의 단서를 짚어보는 서사 분기점 파트에서는 선녀무당(박정민)과 선녀 카메오 배우가 등장해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는 등 연출에 공을 들였다.

다만 CG와 액션 설계에는 한정된 제작비로 인한 아쉬움이 있다. 위기가 닥치고 이를 벗어나는 시퀀스 등에서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편. 신선하고 강력한 한방 액션 설계도 아쉽다. 그러함에도 무속신앙과 호러적 요소가 결합한 장면과 카체이싱, 검술 격투 등 다양한 볼거리가 포진해 있는 부분은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코미디에 있다. 대부분 진중하고 다크한 어반 판타지 작품들과는 달리 강동원·이동휘 콤비가 웃음으로 영화 분위기를 예열시켜주는 부분에서 좋은 연출을 보여준다. 귀신은 없고 결국 정신의 문제라며 당당하게 사기 치고 다니는 천박사의 쾌활함, 대전 빵집 같은 이동휘의 감칠맛 나는 개그 대사 전달이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영화 전반부 ‘기생충’ 패러디는 독립된 단편 코미디 영화로 따로 놓고 봐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훌륭하다. 영화관에 늦게 입장해 앞부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에도 코믹한 에피소드가 추가됐다면 좀 더 재미있는 끝마무리가 됐을 듯하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손익분기점은 240만명이다. 흥행 성적이 좋을 경우 앞으로 강동원 원툴 영화 ‘천박사’ 시리즈를 계속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키 영상에서는 후속편 가능성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