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작품'과 '상품' 사이, 열정과 닮아있는 욕망에 관해서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거미집'은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인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온 김지운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다. 이번 작품은 19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김지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60~70년대를 풍미한 한국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열 감독(송강호)은 계속 같은 꿈에 시달린다. 이미 촬영을 끝낸 영화 ‘거미집’을 다시 찍는 생생한 꿈이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에서처럼 영화의 결말을 바꾸면 인간의 부조리한 본성을 드러내는 엄청난 걸작이 탄생할 것 같았다. 

김 감독의 콤플렉스는 스승인 신상호 감독이다. 신 감독이 죽은 후에도 늘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호평받은 데뷔작 ‘불타는 사랑’조차 신 감독의 유작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예술가가 되다만 평론가들에게는 싸구려 치정극이나 만드는 감독 취급당한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절치부심하며 고쳐 쓴 시나리오를 들고 신성필름 스튜디오로 한달음에 달려간 김열. 제작사 대표인 백 회장(장영남)에게 이틀만 재촬영을 허락해달라고 애걸복걸해보지만, 상황은 절망적이다. 문화공보부도 반체제적이라며 승인을 거부한다.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신상호 감독의 조카이자 신성필름의 실질적인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가 바뀐 시나리오를 읽고는 프란츠 카프카가 쓴 거 같다며 열렬한 극찬과 함께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김열은 돈줄을 쥐고 있는 미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배우들을 다시 불러 모은다. 엉망진창인 현장에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를 비롯해 마지못해 왔지만 어떻게든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한유림(정수정), 촬영보다는 그런 한유림을 더 걱정하는 바람둥이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그리고 김열 감독의 막장 콩가루 현장에 익숙한 오 여사(박정수)가 함께 한다.

김열 감독은 바뀐 내용을 이해 못하는 배우들과 검열필 도장도 없는 대본으로 촬영에 돌입한다. 만약 발각되면 관련자 모두 남산으로 끌려갈지 모를 상황이지만, 이미 카메라를 멈출 수 없는 상황.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가고 설상가상으로 서슬 퍼런 문공부 검열담당자까지 들이닥치자 스튜디오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과연 김열 감독은 무사히 자신이 원하는 걸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창작자라면 누구나 세상에 보란 듯이 세기의 명작을 내놓는 통쾌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영화 ‘거미집’은 신선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박과 집착에 사로잡힌 어느 영화감독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모두에게 좌불안석인 촬영장은 기저의 죄의식이 뜬금없이 발로하는 김열 감독의 불안정한 집착에 정신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이 대소동극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의 황당무계한 서사 전개에 웃음 포인트를 둔 코미디와 닮아있다. 원신 원컷 안에 서사를 담아내는 플랑세캉스(plan-séquence)장면은 ‘1917’(2019),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8)와 같은 리얼리즘의 미학과 참신한 재미를 추구한다. 메타적 구성인 영화 속 영화를 통해서는 ‘아메리카의 밤’(1973)에서처럼 영화 예술이 협업과 임기응변의 산물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당시 피할 수 없었던 엄혹한 검열과 가위질의 애환이 더해진다. 아울러 거장들의 오마주까지 이어지며 희화된 공포로 암울했던 영화업계를 풍자한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일반 관객을 위한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송강호는 자나 깨나 영화밖에 모르는 예술가의 열정과 열등감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인 감독의 모습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재현한다. 전여빈은 능청스럽게 코믹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열정적인 과몰입형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극과 극의 연기톤 갭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임수정, 까탈스러운 감정 연기로 소란극 중심에 서는 정수정과 그 곁을 맴돌며 안절부절못하는 바람둥이 배우로 분한 오정세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케미가 재미를 더한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컬러와 흑백, 극 중 극 등 다양한 형식과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멀티장르를 하나의 영화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담다 보니 균형을 잃는 듯한 구간도 나타난다. 코미디극의 재미로만 봤을 때는 전반부부터 폭소를 안겨 주는 것에 성공한다. 다만 모두가 각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허둥거리는 소동극 후반부로 갈수록 웃음소리가 잦아드는 것은 아쉽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순수 예술 ‘작품’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흥행 ‘상품’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영화의 본질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한국 영화계와 시네필들에게 큰 영향을 준 신상옥 감독과 김기영 감독 작품에 대한 오마주 요소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팬데믹을 거쳐 침체기에 들어선 것이 한국영화산업의 현주소다. 한국영화가 과거 홍콩영화와 같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지는 알 수 없다. 1970년대 문화검열의 암흑기와 현재 영화계가 안고 있는 고민 지점이 똑같지는 않지만, ‘거미집’이라는 작품을 통해 영화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

▲거미집.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바른손이앤에이

 

제목: 거미집 (Cobweb)

감독/각색: 김지운 

각본: 신연식

출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제작:앤솔로지 스튜디오

공동제작 : 바른손 스튜디오, 루스이소니도스

러닝타임: 132분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3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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