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거장의 삶과 가치관을 담아낸 마음의 거울 같은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던 해인 1941년에 태어난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다. 그의 아버지는 일가가 경영하는 비행기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했고, 태평양 전쟁에 쓰인 제로센 전투기 부품을 만들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어릴 때 전쟁으로 돈을 번 부역자 집안임을 부끄러워했고,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빈궁했던 또래들보다는 더 많은 것을 풍족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장을 들락거리는 기술자들 사이에서 비행기와 탱크 같은 전쟁 무기들에 매료되어 갔다. 미야자키 감독이 반전주의자인 동시에 밀리터리 마니아로 성장한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람이 분다’(2013)에 이어 미야자키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든 자전적 내용의 판타지 모험 영화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번 영화의 제목을 생전 지병으로 누워지냈던 어머니가 자신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아동문학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차용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마히토는 엄마를 잃는다. 이후 도쿄를 떠나 전투기 캐노피 조립 공장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 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직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와 너무나 닮은 이모 나츠코를 새엄마로 받아들여야 했다. 상냥한 새엄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복동생의 존재를 이야기할 때 그는 입을 굳게 다문다. 외가 저택에 들어서자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처럼 일곱 할멈이 마히토와 나츠코를 맞이한다. 그들 중 유달리 키리코는 마히토에게 얻어낼 것이 없나 기웃거린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마히토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기묘한 왜가리와 오래된 탑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탑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위험하니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한편 마히토의 감정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불안하게 떠돈다. 불안함은 거짓을 낳고 그 소동이 잠잠해질 즈음 마히토에게 다가온 왜가리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그를 미혹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여기서 당시 불온서적 취급을 받았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등장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히토에게 엄마의 유품인 이 책은 마음의 등불이 되어준다. 죄책감과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마히토. 수오지심을 깨닫게 된 그는 때마침 홀연히 사라진 나츠코를 찾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미스터리한 모험에 나선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작화, 색채설계, 배경 등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적통 작품임을 증명하는 최고의 비주얼과 시각효과를 보여준다. 또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의 집대성이라 할 정도로 그의 모든 작품이 부분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다.

프로덕션이나 구성면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이웃집 토토로’(1988)를 가장 많이 연상하게 하는 이 영화는 서사 측면에서는 저연령대에서 중장년까지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했던 미야자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성인인 20대 대학생 관객조차 지금까지 발표한 미야자키 감독 작품들과는 다른 톤앤매너에 난해함을 느낄 수 있다. 판타지 모험극이긴 하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1986)와 같은 흥미진진한 소년 만화의 스펙터클함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조차 잔잔하디잔잔한 상념의 피아노곡으로 채워진다.

시대극과 판타지물이 결합한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1988)와 같이 감독 자신이 직접 경험한 군국주의, 전체주의의 무서움에 대한 비판을 담는다. 개인의 행복과 집단이 추구하는 이익이 상충할 때 우리들은 미래에 부끄럽지 않을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함께 질문하기도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마히토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용기 내 들어선 이세계는 피트 닥터 감독의 ‘소울’(2020)에서처럼 태어나기 전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분명 낙원은 아니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현실 세계와 조금도 다름없는 악의로 물들어있다.

마히토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환상적이었던 여정의 종착지에 이르렀을 때, 죽고 죽이는 어리석은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가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때 마히토는 돌아가서 친구를 만들겠다고 당당하게 답한다. ‘온 세계 사람들이 서로 친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에필로그 메시지를 미야자키 감독의 방식으로 풀어낸 부분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메가박스중앙

극 중 유토피아 개념인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로 쌓아 올린 왕국’은 잉꼬대왕 같은 이들 앞에서 순식간에 무의미해짐을 인류 역사는 항상 증명해왔다. 이 영화는 무에서 다시 무로 돌아가는 인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모든 판타지를 잊어버린 일상으로 돌아온 후 건조하게 문을 닫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만들어낸 이번 작품은 세대에 따라, 각자가 지닌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누군가는 악의를 표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너무나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각자의 해석에는 옳고 그른 정답이 없다. 거장의 삶과 가치관이 담긴 '마음의 거울'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생을 반추하는 가운데 일종의 사모곡 같은 서사도 함께 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 동안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살아간다. 쿠키 영상은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메가박스중앙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메가박스중앙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원작/각본/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목소리 연기: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시바사키 코우, 아이묭, 기무라 요시노, 기무라 타쿠야 외

음악: 히사이시 조

주제가: Spinning Globe - 요네즈 켄시

수입: 대원미디어

배급: 메가박스중앙

러닝타임: 123분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2023년 10월 25일

스크린 리뷰 평점: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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