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화이트 이와이와 블랙 이와이의 감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음악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키리에의 노래’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에 이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음악영화다. 그가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안에는 제각각의 매력을 가진 가수가 등장한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는 옌타운밴드의 그리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신비주의 가수 릴리 슈슈가 나온다. 이번 영화에서는 버스킹 뮤지션 키리에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록밴드 Mr. Children 등 유명 뮤지션을 키워내며 90년대 일본 대중 음악계를 대표했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코바야시 타케시가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키리에 역에는 실제 싱어송라이터인 아이나 디 엔드가 캐스팅됐다. 실사 연기 데뷔작임에도 잇코 역의 히로세 스즈와 좋은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키리에와 복잡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나츠히코 역에는 ‘스즈메의 문단속’ 소타로 유명한 마츠무라 호쿠토가 캐스팅되어 슬픔에 찬 연기를 보여준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영화는 2011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의 타임라인 속에서 키리에와 그 주변 인물인 잇코, 나츠히코를 함께 그려냈다.

(이 리뷰에는 극장 상영 버전과 디렉터스 컷 버전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라한 행색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는 키리에. 어느 날 밤 화려한 모습의 잇코가 다가와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키리에는 코스튬 플레이어처럼 꾸민 잇코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한다.

사실 둘은 고등학교 시절 선후배 사이이자 절친이었다. 키리에가 버스킹을 하며 연주하는 기타도 사실은 잇코 아빠의 것. 두 사람은 각자 루카와 마오리라는 과거의 이름을 지운 채 키리에와 잇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뮤지션과 매니저의 관계가 됐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는 어린 시절 충격으로 발성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를 통해서라면 폭발하듯 자기 자신을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런 키리에와 매니저를 맡은 잇코의 노력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키리에는 인기가수가 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도 품어본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와 함께 집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잇코. 그녀는 평범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오리였던 10대 시절의 잇코는 스낵바를 운영하는 엄마의 돈 버는 방식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잇코가 어느 날 종적을 감춘다. 얼마 후 키리에에게는 잇코의 행방을 묻는 형사들이 찾아온다. 그와 함께 과거 속의 인물 나츠히코가 다시 키리에 앞에 나타나면서 또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항상 낯이 익다. 국내 관객에게는 ‘러브레터’에서 이미 익숙해진 1인 2역 설정은 이번 작품에도 적용됐다. 수미쌍관을 이루는 영화 속 키리에와 잇코의 우정 관계는 전반적으로 ‘하나와 앨리스’를 연상하게 한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디렉터스 컷 기준으로 볼 때는 블랙 이와이 작품으로 대표되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순한 맛 버전 같은 부분도 있다. 가족을 잃은 키리에가 후미(쿠로키 하루)에게 의지하는 관계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의 아게하와 그리코의 화이트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인물인 나츠히코 또한 이와이 감독 작품 안에서는 낯설지 않은 캐릭터의 모습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만들어온 지금까지의 캐릭터들을 잘 다듬어 정리해 놓은 느낌을 준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이와이 슌지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기자간담회에서 “2시간 버전을 본 관객들이 3시간 버전도 보고 싶어 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2시간 버전에서 불친절하고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은 3시간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디렉터스 컷에는 과유불급이라고 느낄만한 신들도 포함되어 있다. 덧붙여 이와이 슌지 감독은 잇코의 변화 이유에 대해서만은 소설을 읽어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키리에의 노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자신의 고향 센다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래서 같은 재난을 소재로 한 ‘스즈메의 문단속’과 정서적 유사성을 보이는 작품이다. 작중 키리에는 재해 후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극 중 키리에를 연기하는 아이나 디 엔드는 비명처럼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으로 슬픔과 상실의 정서는 분명하게 전달한다.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스틸. ⓒ이화배컴퍼니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특히 ‘키리에·동정을 위한 찬가’는 코바야시 타케시 특유의 작곡 편곡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현악 세션이 가미된 호소력 넘치는 곡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음악영화가 블랙 이와이 계열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대체로 화이트 이와이 혹은 회색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는 아련한 사랑과 우정, 발랄한 청춘 감성을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죽음과 결핍 그리고 부조리함과 추한 현실의 모습도 함께 담는다. 그 속에서 파란 원피스와 청색 색감이 강조된 비주얼 톤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키리에를 그리고 있다.

화이트 이와이 ‘러브레터’와 블랙 이와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구분 없이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팬에게 ‘키리에의 노래’를 추천한다.

▲'키리에의 노래' 포스터. ⓒ이화배컴퍼니
▲'키리에의 노래' 포스터. ⓒ이화배컴퍼니

 

제목: 키리에의 노래(キリエのうた)

감독/각본: 이와이 슌지

출연: 아이나 디 엔드, 마츠무라 호쿠토, 히로세 스즈 외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이화배컴퍼니

제작: 키이 무네유키

음악: 코바야시 타케시

러닝타임: 119분 (디렉터스 컷 179분)

일본 개봉일: 10월 13일

국내 개봉일: 2023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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