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재난이라는 도구로 냉정하게 인간성 본질을 관통해 나아가는 캐릭터 드라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 리뷰에는 시놉시스 등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이 깬 민성(박서준)은 잠들어 있는 아내 명화(박보영)를 조용히 내려다본다. 창밖의 풍경은 참담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잿빛 도시로 변한 지 오래다. 오직 그가 살고 있는 황궁 아파트만이 유일하게 겨우 겉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은 구조대를 기다리지만, 이미 정부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 공권력과 치안의 부재로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가중된다. 난민은 증가하고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 동사자가 속출한다. 평범했던 이웃들은 살아남기 위해 폭도로 변해가고 식료품과 연료 약탈을 서슴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위협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폐허의 광기 속에서 민성은 사랑하는 아내 명화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런 이유로 민성은 황궁 아파트 최고 권력자인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곁에 선다. 민성은 가족을 선택한다.

얼떨결에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가 된 902호의 영탁. 그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영웅이다. 갑작스러운 화재 속에서 모두가 허둥댈 때 거침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희생적인 활약에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영탁을 리더 자리에 오르게 한다. 영탁도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방범 자경단을 조직해 황궁 아파트 주민 이외의 외부인을 몰아내고 생존 터전 사수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이끌고 외부로 나가 식량을 구해오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 하자 주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영탁은 그렇게 권력을 선택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반면 영탁의 행보에 반발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도 보일 수 있는 행동을 거듭하는 도균(김도윤)같은 이들은 점점 주민 집단 내에서 고립되어 간다. 각박한 현실에서도 외부인을 받아들이고, 간호사 직업을 살려 부상자를 돌봐온 선량한 심성을 가진 명화. 그녀는 점점 변해가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다정했던 남편 민성의 달라져 가는 모습에서도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명화는 이타심과 인간성을 선택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던 어느 날 대지진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외부 세상에서 다시 돌아온 903호 주민 혜원(박지후)의 등장을 시작으로 단단히 결속된 듯했던 황궁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서서히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가상의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와는 달리 VFX 액션은 주민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배경 요소 정도로 사용된다. 캐릭터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 따라서 ‘딥 임팩트’(1998), ‘투모로우’(2004), ‘그린랜드’(2020) 같은 이상기후, 지각변동 등 비주얼 체감을 우선하는 재난 영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등장인물은 평범한 우리들의 이웃이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려는 남편, 생존 경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아내,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배타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부녀회장 그리고 얼떨결에 권력을 얻게 되면서 그것을 휘두르는 주민 대표가 등장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캐릭터 드라마에서는 감성에 호소하는 안일한 휴머니즘을 내세우지 않는다. 억지스럽게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도 없다.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선영, 이윤지 주연의 독립영화 ‘드림팰리스’(2023)가 다룬 을과 을의 싸움 이야기와 연결 지어 볼 수도 있는 이 영화 속 대부분 주민들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에 집중한다. 또한, 극소수지만 이타적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몫을 내어주는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서로 공동체 안위를 위협하는 반사회 세력과 인간성을 포기한 전체주의 집단으로 여기며 반목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결과적으로 이 영화 속에서 각 인물은 자신이 놓인 입장과 타고난 성품에 맞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힘겹게 일궈낸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분열시킬 진실을 향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잃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비극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영화는 각자가 걸어가는 길을 드라이하게 회색빛으로 조명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주역 캐릭터 중 누구를 지목하더라도 명확하게 그 인물을 절대 선과 악으로 구분해내기 어렵다. 달리 말하면 특정할 수 있는 빌런이 없는 영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상의 사건을 다루며 때때로 연극 톤에 가까운 연기와 연출은 있지만, 묘하게도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이 매력적인 인물들의 전사를 플래시 백으로 엮어 치밀한 드라마를 일궈내는 각본과 연출이 뛰어나다. 극한 상황에 놓인 군상들을 펼쳐놓고 무심하리만치 냉정하게 바라보며 인간성의 본질을 관통해 나아가는 극사실주의적 서사 또한 큰 인상을 남긴다. 여기서 이병헌 배우가 분한 영탁이 그 중심에 있고 그의 연기력은 압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근원으로 자리한다. 

관객에게 거울을 들이미는 듯한, 현실 같은 이 가상의 이야기는 독립영화의 진중한 소재와 상업영화의 스케일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여름 성수기 텐트폴 영화로는 톤앤매너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현재 극장가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는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목: 콘크리트 유토피아

원작: 김숭늉 작가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

각본: 이신지, 엄태화

각색: 조슬예

윤색: 정승오

감독: 엄태화

출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외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공동제작: BH엔터테인먼트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30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스크린 리뷰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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