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쉽지 않은 소재 묵묵히 가공해 풀어나가는 임순례 감독만의 견고한 연출력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임순례 감독의 ‘교섭’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물과 사건이 창작된 영화라는 소개로 시작한다. 여기서 모티브가 된 실화란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과 김선일 피살 사건이다. 

영화는 비극적인 2001년 9월 11일 무역센터 테러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미국은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 소탕 등을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개시한다. 이 전쟁을 위해 미국은 동맹국의 협조를 요청했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여 전투병력이 아닌 복구지원부대 파병을 진행한다. 2004년, 이라크 현지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김선일 씨가 한국군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된다. 김선일 씨는 한국 정부의 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납치 22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다.

결과적으로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정부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24시간 영사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교민과 재외국민 보호에 전력하게 된다. 그러나 3년 뒤, 또다시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2007년 한국 정부의 엄중 경고를 무시하고 샘물교회 선교단이 제3국을 경유해 몰래 여행 제한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입국, 23명 전원이 탈레반에게 납치된 것이다. 탈레반은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한국군의 철수와 조직원 석방을 요구한다.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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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교통의 요지인 이유로 역사적으로 몽골, 영국, 소련 등 외세 침략에 맞서 끝없는 싸움을 이어온 국가다. 이제는 소련과의 전쟁에서 우방 관계였던 미국조차 적이 되어버린 상황. 이에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무력투쟁으로 끝내고자 하는 탈레반은 미군과 동맹군 그리고 친미 정부를 상대로 자살폭탄, 납치 등 테러를 자행했다. 선교단 피랍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다.

한국 정부는 자국민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납치된 이들은 자신들을 관광객이라고 주장하지만, 탈레반 조직원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관광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만약 선교 목적으로 입국한 것이 밝혀지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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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전문 외교관 ‘정재호’(황정민)는 번득이는 판단력으로 무조건 인질들을 자원봉사자로 보도 통일하라며 다급한 목소리를 낸다. 외교부 직원들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가 급히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해 마주한 국정원 베테랑 요원 ‘박대식’(현빈)과의 첫 만남은 삐걱거리는 불협화음투성이다. 원칙에 따르는 ‘정재호’는 자기만의 길을 가려는 오만한 ‘박대식’과 반목을 거듭한다.

하지만 ‘정재호’는 외교관의 최우선 사명은 자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기 생각과 국정원 조직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인질 피랍 사건만큼은 결코 외면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는 박대식의 내적 트라우마, 이 둘이 향하는 방향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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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아프가니스탄 뒷골목에서 생존본능 만렙으로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다가 인질 협상팀 다리어·파슈토어 통역 전문가로 영입된 ‘카심’(강기영)이 합세해 예측 불가한 인질 협상 구출 작전에 돌입한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기우였음을 인지하게 한다. 비난과 미화, 그 어느 쪽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직 인질이란 보호하고 구출해 내야만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본질의 대상화에 집중한다. 그 과정을 수행하는 캐릭터들의 눈부신 활약 묘사는 신중하면서도 차갑지만 때때로 따뜻하다. 

실화를 픽션으로 재구성한 이 숨어있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임순례 감독은 견고한 연출력으로 설득력 있고 진중하게 꾸려나간다. 임순례 감독이 가장 공을 들였다는 클라이맥스 부분인 최후 인질 협상 시퀀스는 전체 서사를 압축한 몰입감 전달을 시도한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인상은 관객 각자가 판단할 부분.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주요 캐릭터 구성은 안정적인 삼총사 설정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자국민 보호 최우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절대 멈추지 않는 행동파이자 브레인 담당인 ‘정재호’ 역의 황정민과 액션 시퀀스를 전담하는 특수요원 ‘박대식’ 역의 현빈이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간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진중함 속에서 사이사이 숨통이 트이게 하는 ‘카심’ 역 강기영의 분량은 인상적이다.

보통 이런 액션 스릴러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속한 조직 내부에 빌런 아닌 빌런 캐릭터를 넣어 반목과 갈등 장치로 작동하게 하는 클리셰를 넣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섭’에는 고구마 캐릭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인물은 방향성은 다를지라도 자신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해 일심으로 인질 구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영화 ‘교섭’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2012), ‘허트 로커’(2009)와 함께 감상한다면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두 작품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미국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임순례 감독의 ‘교섭’은 우리나라 시각에서 제작한 영화다. 이런 시도만으로도 ‘교섭’은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 ‘교섭’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만의 휴머니즘이 녹아있는 액션 스릴러라는 점에 주목하게 되는 작품이다.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교섭.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제목: 교섭 (The Point Men)
◆ 감독: 임순례
◆ 각본: 안영수
◆ 출연: 황정민, 현빈, 강기영 외
◆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제작사: 영화사 수박, 원테이크 필름
◆ 제작: 신범수, 남정일
◆ 기획: 신범수
◆ 사운드 포맷: 돌비 애트모스 (Dolby Atmos)
◆ 크랭크인: 2020년 4월 18일
◆ 크랭크업: 2020년 9월 14일
◆ 개봉: 2023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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