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 세상에 기억을 남긴 모든 이에게 바치는 진혼의 서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이야기다. 사랑에 빠진 소녀 ‘스즈메’가 우연히 재난의 문을 열면서 시작되는 서사 속에는 만남과 이별, 고난과 성장이 함께 한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7살 ‘스즈메’(하라 나노카)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비탈길에서 처음 보는 남자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와 마주친다. 그리고 일순간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는 폐허에 존재하는 어떤 문을 찾고 있었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소타’에게 한눈에 반한 ‘스즈메’는 등교를 멈추고 뒤돌아서서 무작정 폐허의 마을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에 ‘소타’는 없었다. 대신 그가 말한 기묘한 문은 정말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마법처럼 아름다운 들판과 하늘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곳은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즈메’가 열어둔 그 틈 사이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재앙이 마을을 급습한다. ‘소타’는 그것을 ‘미미즈’라 부르며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스즈메’와 함께 가까스로 열쇠로 문을 봉인한 ‘소타’는 ‘요석’이니 ‘뒷문’이니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그는 집안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막는 ‘토지시’ 일을 해오고 있었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소타’는 이전의 소동으로 다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스즈메’의 집을 방문한다. 기묘하게 생긴 정체불명의 말하는 고양이 ‘다이진’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소타’는 갑자기 ‘스즈메’가 어릴 때부터 소중하게 간직해온 애착 의자에 앉아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속에 갇혀 버린다. 

‘소타’에게 ‘미녀와 야수’에나 나올 법한 저주를 걸고 도망치는 ‘다이진’. 그 뒤를 쫓는 추격전을 시작으로 ‘스즈메’와 의자 속에 갇힌 ‘소타’는 일본 각지에서 벌어지는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은 로드무비다. 이들은 규슈에서 도쿄까지 일본을 여행하며 새로운 인연을 쌓아나간다.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은 악의 없는 착한 사람들뿐이라 ‘스즈메’는 항상 가슴 따뜻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사람 좋은 동급생 ‘치카’(하나세 코토네)나 스낵바의 ‘루미’(이토 사이리) 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스즈메’는 이모 ‘타마키’(후카츠 에리)의 내리사랑 속에서 자랐다. ‘타마키’는 자신이 무엇을 잃게 될지 알면서도 고아가 된 ‘스즈메’를 거둬 자신의 인생 안에 품었다. 둘은 애정도 원망도 갈등도 같은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친 모녀와 다름없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눈을 감으면 언제나 상실의 꿈속을 배회하는 ‘스즈메’는 미국인들이 2001년 9월 11일을 영원히 기억하듯이 12년 전 2011년 3월 11일을 기억한다. 그녀는 동일본 대지진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슴 속 깊이 차가운 무언의 요석으로 억누르고 있는 이들을 상징한다.

 

청량한 파란 하늘, 초록색 대지, 새하얀 구름, 따뜻한 오렌지빛 매직아워가 스며든 자연과 일상은 평화롭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이 언제나 그랬듯 배경 시퀀스의 프레임 한 장 한 장이 모두 아름다운 일러스트다. 매혹적인 색채설계와 산란하는 십자 플레어 시그니처도 여전하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모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스즈메’들을 위해 치유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패배감과 허무주의에 빠진 사회를 향해 사람 안에서 생명력과 희망을 찾아내자는 메시지를 남겼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살다’(1952)와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열쇠는 문밖과 안, 과거와 현재의 이어짐을 매개하는 상징성을 지닌 일상의 소품이다. 서구권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 도어락이 보급된 이후 열쇠는 거추장스러운 구시대 물건이 됐다.

손에 쥔 열쇠의 단단한 촉감을 느끼며 집 현관문을 여는 기억은 잊힌 지 오래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로 열쇠가 일상에서 등장하는 신에서 직관적인 정서 공감이 조금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 밖의 것이다. 변덕스러운 신과 토테미즘에 기대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애착 물건이 토템이 되기도 한다. ‘인셉션’(2010)의 팽이처럼 ‘스즈메’가 다른 세상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토템은 ‘의자’다. 그 안에 담긴 기억이 단단하게 ‘스즈메’의 삶을 지탱해준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형태가 없는 노래는 관객의 토템이 되어준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RADWIMPS의 곡들도 세계관 일부가 되어 재등장하고 술집에서는 나카지마 미유키의 ‘실’, 신칸센 플랫폼에서는 고다이고의 ‘은하철도 999’가 흐른다. 

‘소타’의 친구 ‘토모야’(카미키 류노스케)는 고양이와의 여행이라면 이 노래라며 마츠토야 유미의 ‘루즈의 전언’을 틀어준다. 그 밖에도 마츠다 세이코, 이노우에 요스이, 사이토 유키, 고쿠쇼 사유리, 카와이 나오코의 70~80년대 노래가 이어진다. 이 장면들에는 추억의 유행가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일본 세대만의 시대 정서가 담겨있다. 그래서 그들만의 노스텔지어를 담은 진혼가로 느껴지기도 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편에 걸쳐 희생자를 추모한다. ‘스즈메’ 일행이 항상 향하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다. 재앙을 봉인하기에 앞서 그곳에 머물었던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또한 그들의 일이다.

영화는 남은 이들에게는 슬픔을 이겨내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아침의 빛 속에서 세대를 반복해 어른으로 성장해 미래를 살 것이라 예언한다. 

뜻하지 않은 참사의 슬픈 기억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다. 이 판타지 로맨스 로드무비는 비극을 딛고 우리가 ‘삶’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하기를 당부한다. 단점과 비판 지점도 있겠지만,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아름다움과 선한 영향력을 함께 지닌 영화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 제목: 스즈메의 문단속
◆ 원작/각본/감독: 신카이 마코토
◆ 캐릭터 디자인: 타나카 마사요시
◆ 작화 감독: 츠치야 켄이치
◆ 미술 감독: 탄지 타쿠미
◆ 제작: 코믹스 웨이브 필름
◆ 수입: 미디어캐슬
◆ 공동 제공: 로커스
◆ 배급: 쇼박스
◆ 국내 개봉: 2023년 3월 8일
◆ 관람 등급: 12세이상관람가
◆ 러닝 타임: 122분
◆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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