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 ‘진정한 기자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하비 와인스타인. 그는 2010년대까지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흥행 제작자로 명성을 누렸다. 그가 설립한 미라맥스는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등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연이어 배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타고난 승부사였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그에게 부와 명성 그리고 권력을 안겼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하비 와인스타인은 어느새 할리우드 최고 거물 위치에 오른다. 그는 오스카 캠페인을 통해 자신이 무소불위의 권력자임을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그의 입김으로 마땅히 오스카상을 받아야 할 작품과 배우가 노미니에 그치고 고배를 맛봐야 했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들은 의아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는 영화업계 모든 종사자가 두려워하는 블랙 기업 미라맥스의 수장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봉준호 감독도 그의 횡포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에게 대항해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눈 밖에 난다는 건 곧 영화계에서의 영구 퇴출을 의미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공포 그 자체였고 아무도 그의 역겨운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달랐다. 그곳에는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는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와 ‘조디 캔터’(조 카잔)라는 참기자 듀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의 강제 추행 의혹을 취재하던 뉴욕타임스 소속 기자 메건은 망설이는 피해자를 설득해 폭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이후 트럼프 본인의 항의, 타 매체의 왜곡 보도, 지지자들의 살해 협박 등이 이어진다. 이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그녀가 겪는 출산후 우울증 위에 더해진다.

한편, 뉴욕타임스 데스크는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인 빌 오렐리에 대한 성추문 폭로 기사로 큰 성과를 얻자, 그 후속편으로 직장 내 만연한 성희롱을 공론화할 수 있는 탐사보도를 기획한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이 기획에 뛰어든 조디는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배우가 성폭행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탐사보도 취재 승인을 받아낸다. 하지만 피해자인 취재원들은 냉담했다. 대부분 몸을 사린다.

취재 소스의 당사자인 로즈 맥고언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무슨 일을 당했고,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조디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거대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까지는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조디는 취재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자 앞서 폭로 가사를 써본 경험이 있던 동료 기자 메건에게 도움을 청한다. 메건 입장에서는 우울증을 털어버리고 직장으로 복귀할 좋은 기회였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이후 메건과 조디가 자매처럼 짝을 이룬 탐사 취재팀은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한다. 리사 블룸 같은 아이코닉한 여성 운동가마저도 자기편으로 포섭한 하비 와인스타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다. 두 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은 곳곳에 있었다. 그러함에도 굴하지 않는 두 기자 앞에 마침내 흑막 속에 가려졌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언 어듀케이션’에서는 풋풋한 사춘기 소녀, ‘드라이브’에서는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옆집 유부녀,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는 복수의 화신 등 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해온 캐리 멀리건이 이번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 메건 투히 역을 맡아 깊이 있고 안정적인 연기로 극을 이끈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역시 실존 인물인 조디 캔터 역을 맡은 조 카잔은 엘리아 카잔 감독의 손녀로 유명하다. 그녀는 굴하지 않는 강한 신념을 가진 기자와 엄마의 역할 양쪽에서 캐릭터 포인트를 집어내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친다. 

미투 운동의 출발점이 된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 성범죄 파문의 전말을 담은 이 작품은 사회고발 영화에서 결핍되기 쉬운 드라마 요소가 잘 안배되어 있다. 스릴러 적인 긴장감과 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각본과 연출이 빛을 발한다. 또한, 등장하는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함께 알고 있다면 그만큼 영화 감상의 잔재미가 늘어나는 부분도 이 영화의 장점.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소재로만 보면 추악한 성범죄와 그에 종복하는 업계 시스템을 고발하는 내용이지만, 주제로 넘어가 보면 진정한 저널리즘의 역할이란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팩트 취재를 하라고 했더니 주관식 판타지 소설을 쓰는 기자에게 대중들은 ‘기레기’라는 불명예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는 익명 보도가 난무하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영화 속 취재원 보호, 취재원의 허락이 없는 인용 보도 금지 등 당연한 것들이 오히려 낯설 정도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실명 보도는 기사의 설득력을 훨씬 강하게 만든다는 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발로 뛰며 취재로 얻은 팩트 소스가 한줄 한줄 문장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담은 신의 몰입감도 만족스럽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취재원의 허락에 기뻐하는 한편, 치밀한 법적 책임 검토에 들어간다. 충분한 반론의 기회가 선전포고처럼 상대편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송고 직전까지 꼼꼼한 퇴고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기사 최종본이 완성된다. 

그렇게 해서 1992년 어느 날, 한 여성이 헝클어진 옷차림으로 도심 한복판을 울먹이며 달려야만 했던 이유와 진실이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진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기자 명함을 가진 이들에게 수오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저널리즘 영화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 제목: 그녀가 말했다
◆ 원제: She Said
◆ 감독: 마리아 슈라더
◆ 각본: 레베카 렌키윅츠
◆ 원작: 조디 캔터, 메건 투히의 동명 베스트셀러 ‘그녀가 말했다’
◆ 출연: 캐리 멀리건, 조 카잔, 패트리시아 클락슨, 안드레 드라우퍼 외
◆ 장르: 드라마
◆ 상영시간: 128분
◆ 개봉: 2022년 11월 30일
◆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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