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 마음을 사로잡는 웰메이드 뮤지컬 로드무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최국희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오래전 누군가가 들려준 어머니에 대한 추억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그의 어머니는 참외를 사면 곱게 깎아 어린 자식들 앞에 내밀고는 ‘난 이게 제일 맛있다’며 항상 참외 꼭지 부분만 입가로 가져가셨다고.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문득 생각날 때면 참외 꼭지의 그 쓰디씀을 맛보곤 한다는 이야기였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가족을 위해 인생을 헌신해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웰메이드 뮤지컬 로드무비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진봉’(류승룡)은 어느 날 아내 ‘세연’(염정아)과 함께 그녀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 나선다. ‘뭐지? 이 남자, 아메리칸 스타일인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 큰 착각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영화 시작부터 분노 조절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보이는 진봉은 세연을 낮잡아보며 버럭버럭 소리 지른다. 진봉은 이 시대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가부장적 남편 타입 그 자체다. 

하지만 괴팍한 남편의 닦달에도 아랑곳없이 세연은 꿋꿋하게 버스를 기다린다. 택시비가 아까워서다. 절약 정신이 몸에 밴 그녀는 평생 쓸 거 안 쓰고, 입을 거 안 입으며 가족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헌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를 향한 가족의 사랑과 존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무뚝뚝한 남편, 대화 없는 아들, 반항적인 딸의 무시 속에서 몸종과 다름없는 덧없는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덧 47살 먹은 아줌마가 됐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 오세연, 이제는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다

세연은 자신의 여름옷을 버려야 할지 겨울옷을 버려야 할지 한참 망설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계절은 단풍잎 떨어지는 가을뿐이다. 

튀김 요리를 너무 많이 하며 살았던 걸까? 공기청정기를 살 걸 그랬나?
폐암이란다. 앞으로 살날이 딱 두 달 남았단다.

걱정과 위로의 말 대신 “너 담배 피우냐?”고 고함치던 인정머리 없는 남편은 세상모르고 침대 위에 곯아떨어져 있다. 그 뒷모습이 한없이 야속하다. 설움이 복받친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세연은 문득 지금껏 제대로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억울하고 분했다. 가족 뒷바라지가 지긋지긋해졌다. 이제는 ‘야’ 대신 ‘오세연’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기로 한다. 세연은 ‘사랑받는 여자’로 행복하게 죽고 싶었다.

남은 생의 일분일초가 아까운 세연은 다짜고짜 남편 진봉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생일선물로 고등학교 때 첫사랑 ‘정우’(옹성우)을 찾아내 자기 앞에 바치라는 것.
 
황당한 세연의 요구 따위는 당연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진봉. 하지만 세연에게도 꽁꽁 감춰뒀던 필살기는 있었다. 진봉은 아연실색한다. '다시는 누릴 수 없을 계절'을 호화롭게 만끽하면서 상상도 못 했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들이미는 세연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마는 진봉.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과연 진봉은 1988년 그때 그 시절, 자신보다 먼저 아내 세연의 마음을 훔친 ‘첫사랑’의 남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세연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모두 이룰 수 있을까?

마지 못해 억지로 차에 올라탄 진봉과는 반대로 마음이 부풀 대로 부푼 세연, 두 사람은 서울에서 땅끝마을로 이어지는 사랑과 판타지의 여정에 나선다. 

◆ “음악이 흐르면 판타지가 시작된다”...단 하나의 K-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해외에서는 ‘그리스’, ‘라라랜드’ 등 수많은 명작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가 만든 작품들처럼 거대자본이 투입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출신 작곡가가 만든 화려한 오리지널 넘버도 없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리에게 있어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손익분기점이 220만명인 이 작품은 한국 영화사에서 쉽지 않은 장르적 도전에 나선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과 차별점은 오직 대한민국 국민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감 정서가 완벽하게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도 웰메이드 뮤지컬 코미디 영화 보유국이 됐다.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답게 이 작품에는 신중현의 ‘미인’, 이문세의 ‘조조할인’, ‘알 수 없는 인생’, ‘솔로예찬’, ‘애수’부터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에코브릿지 &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유열의 ‘이별이래’ 등 다채로운 명곡들이 극 중 플롯과 상황에 맞춰 차례차례 등장한다. 노래 제목은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던 곡들이다.

“음악이 흐르면 판타지가 시작된다는 콘셉트였다”는 최국희 감독의 말처럼 익숙한 선율과 가사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마법처럼 완벽하게 작동한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 음악은 엄청난 감정 버튼 역할을 한다. 곡 한 곡 한 곡 플레이될 때마다 마음속 가장 아래에서부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억지 웃음이나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소재가 독특하다 할 뿐 보통의 평범한 대한민국 부부와 가족 모습을 담은 극의 흐름에는 어색함도 지루함도 불협화음도 없다. 연출, 시나리오, 연기, 촬영, 미술, 의상 등 모든 면에서 조화롭다.

주연을 맡은 염정아와 류승룡은 엄청난 케미의 연기력을 스크린 위에 펼친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 1년간 연습했다는 가창 실력과 6개월을 투자한 안무의 하모니는 제대로 그루브를 탄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는 염정아와 착시효과로 20대 연기를 소화해냈다는 류승룡의 연기가 반짝인다. 그리고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연기를 통해 뜨거운 감정의 파도를 불러 일으킨다.

세연의 아름다운 과거 추억 세계는 첫사랑에 빠진 어린 세연 역의 박세완, 완벽한 외모와 표준어를 갖춘 첫사랑 오빠 정우 역의 옹성우 그리고 세연의 단짝 현정 역의 심달기가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는 2021년 문을 닫은 추억의 ‘서울극장’이 등장한다. 그곳에 걸려 있던 ‘사랑과 영혼’은 이제 주말의 명화가 아닌 OTT 영화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본다고 서울행 기차를 탔던 10대들은 이제는 학부모가 됐고, 그들의 아이들은 콘서트를 보기 위해 KTX에 오른다. 지금 10대들이 중년이 된 미래에 만약 ‘인생은 아름다워’ 속편이 나온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지 궁금하다.

시대가 변해도 언제나 우리의 인생은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티켓값을 확실하게 하는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 제목: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 감독: 최국희 
◆ 출연: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 옹성우, 심달기, 하현상, 김다인 
◆ 특별출연: 전무송, 박영규, 김혜옥, 신신애, 김종수, 고창석, 염혜란, 김선영, 류현경
◆ 제작: 더 램프
◆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크랭크인: 2019년 10월 14일
◆ 크랭크업: 2020년 2월 6일
◆ 러닝타임: 122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개봉: 2022년 9월 28일

◆ 평점: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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