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 상처 입은 가족관계에 초점 맞춘 심리 드라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미혹’은 무엇인가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진영 감독의 ‘미혹’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 믿음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이 지닌 상처를 깊이 파고들어 올 때의 공포와 비극 그리고 슬픔을 어느 시골 마을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석호’(김민재)는 우울한 표정의 아내 ‘현우’(박효주)에게 새로운 기회라며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목사인 석호는 비극적으로 죽은 셋째 아이 ‘한별’(송하현)의 죽음을 신이 준 고통이라 말한다. 현우는 그런 석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두 사람은 아직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호는 시각장애가 있는 아이 ‘이삭’(박재준)을 입양하는 것이 그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속죄와 구원의 길이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입양을 앞둔 현우는 망설인다. 그녀는 이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과연 이삭을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입양을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뭇거리는 현우와 달리 석호의 태도는 단호하다. 

석호는 아내의 깊은 고민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노력하면 된다면서 일방적으로 입양을 밀어붙인다.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입양한 이삭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 석호. 그는 가족에게 행복한 미소를 주문한다. 하지만 석호의 바람과는 달리 이삭은 첫째 딸 ‘주은’(경다은)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현우 또한 이삭을 좀처럼 마음으로 품지 못한다. 

어느 날 이삭은 가족들에게 죽은 한별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은은 이삭이 본 것은 악마라고 주장한다. 신도의 축귀 의뢰를 거부할 정도로 신앙심이 강한 석호는 딸의 말에 그런 것은 없다며 나무란다.

현우도 처음에는 한별을 봤다고 하는 이삭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속 간절한 그리움에 어느새 마음이 변해간다. 남편이 말한 그대로 정말 신이 주신 기회같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한편 남편 교회에 다니는 동네 청년 ‘영준’(차선우)은 뜻 모를 불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치 가족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영준. 현우가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가운데 뒤이어 알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한다.

‘미혹’은 김진영 감독의 공포 영화 ‘미혹’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안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기묘한 사건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점프 스케어 같은 말초적인 자극에 치중하기보다는 비극적인 가족 드라마에 포인트를 둔 차별점 있는 서사가 펼쳐진다.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이 영화는 남편과 아내,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중 모녀의 애증 관계에서 강한 심리적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먼저 석호는 지역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항상 도덕적으로 정의롭고 선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와 동시에 가장으로서 한 집안을 돌봐야 한다. 

석호는 압박감 속에서 종교적 믿음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균열이 생긴 가정의 평화를 어떻게 하든 지켜내려 한다. 아내 현우에게 입양을 종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김진영 감독은 어쩌면 빌런으로 보여질 수 있는 석호에 대해 “가장 나약한 인물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이고 일방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현우는 석호보다 더 복잡한 사연과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그녀는 죽은 아들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내지 못한 채 고압적인 남편의 의견에게 떠밀려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입양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지만 아무도 그녀를 돌봐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 고립감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의외의 돌파구가 되어주는 존재가 이삭이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보인다고 말하는 이삭. 의사는 그것이 실명을 앞둔 환자의 착각으로 치부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던 현우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되어준다. 그것이 진실한 모성에서 발현된 것은 아닐지라도 이삭은 이제 현우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가 된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첫째 딸 주은이다. 엄마를 지켜주겠다는 신념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 주은에게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삭은 불청객일 뿐이다.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미혹' 스틸. ⓒ엔케이컨텐츠

현우와 주은의 모녀 관계는 전사에서 비롯된 죄책감, 애정을 향한 갈망, 모성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여기에 갈등이 표면화되는 현우와 석호의 식탁 신에서는 가장 가깝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관계를 극명하게 묘사한다.

결국 현우는 나쁜 기억과 상처들 사이로 파고드는 간절한 믿음에 미혹되어간다. 그녀는 점점 광기에 휩싸여가고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영화 ‘미혹’은 비극적인 가족사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 요소 그리고 슬픔이라는 정서에 관람 포인트를 두고 볼 때 연출 의도와 메시지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한편, 이 영화는 박효주, 김민재 등 쟁쟁한 성인 배우들과 함께 공연한 경다은 배우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미혹'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미혹'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 제목: 미혹

◆ 각본/감독: 김진영

◆ 출연: 박효주, 김민재, 차선우 외

◆ 제공/배급: 엔케이컨텐츠

◆ 공동배급: 디스테이션

◆ 제작: 엔진을켜 스튜디오, 고집스튜디오

◆ 공동제작: 싸이더스

◆ 러닝타임: 112분

◆ 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

◆ 개봉: 2022년 10월 19일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