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김남규 기자]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해 사상 처음으로 한해 국가 예산이 700조원대를 돌파했다. 증가액 54조7,000억원 역시 역대 최대치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 전임 정부와 달리 확장 재정 기조를 공식화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뿌릴 씨앗이 부족하다고 밭을 묵혀둘 수 없다”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빚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확장 재정의 정당성을 설명한 발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총수입은 674조2,000억원, 총지출은 728조원으로 예상된다. 통합재정수지는 53조8,000억원, 관리재정수지는 109조원의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는 올해 말 1,300조원에서 내년 말 1,400조원대로 늘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GDP 대비 4%대 재정적자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주요 선진국들은 냉전 종식 이후 유로화 도입을 전제로 한 마스트리흐트 조약(1992)과 안정성장협약(1997)에 따라 연간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국가채무비율은 60%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GDP 대비 3%를 초과하면, 국가채무 증가에 따라 국채를 추가 발행해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채 가치 하락과 금리 상승이 반복되면서 민간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과 외국인 투자 감소도 당연히 이어지는 수순이다.
한 예로, 2010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GDP 대비 10%대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국가채무 급증은 IMF와 EU의 구제금융으로 이어졌고, 결국 긴축재정 시행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수렁에 빠졌다.
또한 정부는 향후 2029년까지 총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5% 수준으로 예상하며, 국가채무비율이 58%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EU 권고치인 60%에 근접한 수치다. 한국의 2024년 국가부채는 약 1,134조원(GDP 대비 약 45%)이며, 현재도 연간 30조원을 이자로 부담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부채 증가에 따른 심각성을 이해하기 쉬울 듯 싶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라빚 상환이 결국 다음 세대의 몫으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국가부채는 미래 세대의 세금으로 갚아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후세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과 같은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서는 연금과 의료지출 증가로 부채가 더 빠르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물론 60%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은 부채가 GDP의 250%를 넘어섰지만 아직 큰 위기를 겪지 않았고, 미국 역시 부채가 120%를 넘지만 달러 기축통화 지위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의 예산안에 인공지능(AI) 3강 진입을 위한 10조원과 35조원 규모의 R&D 예산이 대폭 늘어난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농어촌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 발행 등 선심성 예산이 다수 포함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문득 다산 정약용 선생이 편찬한 속담집 ‘이담속찬’에 수록된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당장 배가 고파도 미래를 위해 내년 농사를 지을 종자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 세대의 씨앗을 빌려오는 현 정부의 재정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저 예산안 발표 당시 “어렵게 되살린 회복의 불씨를 성장의 불꽃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구윤철 부총리의 발언이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미래 세대에게 갚을 씨앗을 남겨 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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