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규 금융부국장 
▲김남규 금융부국장 

[SRT(에스알 타임스) 김남규 기자] 주식·코인 시장이 다시 들썩이자 개인 신용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른바 ‘빚투’ 열풍이다. 금리 인하 기대, 반도체 등 특정 종목 급등, SNS발 단기 수익담이 겹치면서 레버리지가 또다시 기회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빚투의 결말은 늘 같다. 상승장에서는 착시를 만들고, 하락장에서는 재앙이 된다.

논란은 정부 고위 인사의 한마디로 더 번졌다. 최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투자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빚을 내 투자하라는 신호 아니냐’는 해석을 낳은 것이다. 과열 국면에서 리스크 관리보다 ‘기회’를 강조한 셈이어서 비판이 거셌다. 그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사과했지만, 시장에는 이미 “당국도 상승장을 밀어준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 금리가 더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도 빚투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강한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하면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금리가 더 낮아지는 기형적 구조가 자리 잡았다.

KB·신한·하나·우리은행 모두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보다 낮아졌고, 비아파트 담보대출과의 금리 차는 더 크다. 신용대출 잔액은 10월 한 달에만 1조4,000억원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금리 구조가 빚투 심리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빚투는 개인의 투자 차원을 넘어 가계 재무건전성, 금융 시스템 안정성, 국가 경제 리스크를 동시에 키운다.

신용대출 기반 투자는 변동성에 가장 취약하다. 미래 수익을 담보로 현재 위험을 키우는 만큼 가격이 흔들리면 손실과 상환 부담이 한꺼번에 터진다. 금리가 예상 경로를 벗어나면 취약 차주는 순식간에 부채의 덫에 갇힌다. 연체 전파 속도도 담보대출보다 빠르다. 신용 레버리지가 커질수록 자산 가격 하락은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시장 불안을 확산시킨다.

집단투기 구조도 위험을 키운다. 청년층의 영끌·빚투, SNS 기반 ‘묻지마 투자’, 단기 급등 종목·코인 중심의 군집행동은 거품을 만들고 무너뜨리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결국 가계의 장기 재무구조는 흔들리고 취약층은 더 늘어난다.

역사 역시 같은 경고를 남겼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 주식 거래의 약 40%는 신용 레버리지였다. 폭락이 시작되자 부채 청산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시장 전체가 붕괴했다. 1980년대 일본 버블도 대출 기반 투기가 촉발했고, 거품 붕괴 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에 빠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부동산 레버리지 붕괴의 총합이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영끌·빚투 열풍은 금리 정상화와 함께 연체·파산 급증으로 되돌아왔다.

교훈은 분명하다. 빚낸 투자에서 수익은 우연이지만, 위험은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장을 앞당기려는 무모한 레버리지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기업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노력이 우선돼야 하고, 신용대출 총량 관리와 고위험 자산군 모니터링, 투자자 보호 장치 보완 등 정책 점검도 다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당국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발언을 더는 해서는 안 된다.

빚투는 개인의 모험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금융 시스템 전체를 시험하는 구조적 문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부를 쌓으려는 국민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빚을 낼 패기’가 아니라 ‘빚을 멈출 인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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