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기쁨, 후회와 눈물을 포옹하며 영원히 살아가다
꿈을 이어받은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
Don't ‘Look Back’ In Anger - 오아시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체인소 맨’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단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룩백’은 만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한 후지노와 세상과의 단절 속에 만화만이 전부였던 쿄모토가 운명처럼 만나 만화가 콤비로서 자신들의 꿈을 부단히 이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늦은 밤, 눈처럼 서서히 내려앉는 카메라의 시선이 누군가의 등 뒤를 지켜본다. 불 켜진 책상 위 작은 거울. 그곳에 비친 소녀의 얼굴에는 고민이 가득하다. 학보에 낼 4컷 만화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의 방 작은 책장에는 만화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대단해! 이러다가 장래에 만화가가 되는 거 아니니?”

후지노는 친구들 칭찬에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재능에 덧붙인 뒤에서의 남모를 노력은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을 안겨 준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자만심의 충전 그리고 드높아지는 에고와 짜릿한 중독적 쾌감. 그래서 후지노는 만화를 그린다. 더 재미있는 4컷 만화를 그리고 싶다. 머릿속에는 또래들을 잔뜩 웃기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동급생 쿄모토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마냥 그랬다. 어느 날, 후지노는 등교거부 학생인 쿄모토가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학교도 못 나오는 겁쟁이’ 따위가 무슨 만화냐 싶어 바로 비웃어버린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얼마 후 후지노는 학보에 실린 쿄모토의 4컷 만화를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켠다. 격차는 극명했다. 쿄모토의 만화는 프로 수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 난 줄 알았던 후지노의 자존심은 그대로 밑바닥 수직 낙하한다. 이게 자괴감이구나!

분했다. 얼굴도 모르는 은둔형 외톨이 따위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날부터 후지노는 본격적으로 인체 드로잉 연습에 밤낮없이 매진한다. 비워진 책장에는 스케치북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렇게 후지노의 등 뒤로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뀐다. 하지만 만화에 진심을 다할수록 부모님도 친구도 ‘만화가 밥 먹여 줄 것 같냐? 취미로만 해라’라는 식으로 눈치를 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달렸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그만둘 거야...”

후지노의 만화를 멈추게 한 것은 쿄모토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후지노는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후지노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쿄모토의 초등학교 졸업장 전달을 억지로 떠맡게 된다. 

영원한 소울메이트 후지노와 쿄모토의 만남. 문틈으로 빨려 들어간 운명의 4컷 만화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시간선을 영원히 이어준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 살아 움직이는 만화책...영화적 표현의 작화와 다층적 감정선 서사

이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단 몇 컷으로 묘사된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기세의 후지노 달리기를 비롯해 스케치북의 복도, 한겨울의 편의점, 도심의 크레이프 가게, 맞잡은 손,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쿄모토 등 원작 속 여백의 미가 촘촘하고 완벽하게 채워진다. 여기에 초등학생에서 성인까지 소화해내는 카와이 유미와 요시다 미즈키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이 더해진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은 살아 움직이는 만화책이다.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하게 대상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영화적 표현의 작화와 카메라 앵글에 감탄한다. 또한 열등감의 원인이자 동경의 대상인 서로에게 등이 되어주는 두 사람의 다층적인 감정선 그리고 살짝 그로테스크한 원작 화풍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농밀하게 구현해낸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 후지노의 등은 우리들의 등...Don't ‘Look Back’ In Anger

이 작품의 제목은 2024년 8월 27일, 15년 만에 재결합한 록밴드 오아시스의 명곡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따왔다. 후지노·쿄모토 콤비의 첫 만남, 팀 결성, 해체는 많은 뮤지션, 예술가, 기업인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쿄모토가 자신을 골방에서 꺼내줘서 감사하다고 할 때, 품을 벗어나려고 할 때 후지노가 던지는 말들 속에서 많은 감정이 자라나며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리고 다른 시간선 속에 살았다 해도 다시 마주했을 그들의 인연을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감정의 소나기가 쏟아진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왜 만화를 그려?”

만화를 왜 그리냐는 쿄모토의 질문 뒤로 아름다운 음악과 몽타주 시퀀스가 이어질 때 겹겹이 쌓아둔 감정이 폭발한다. 후지노는 열정과 기쁨, 후회와 눈물을 포옹하며 교모토와 영원히 살아간다. 감동을 넘어서는 감동, 애니메이션을 초월하는 예술 영화적 미학과 찬란함이 거기에 있다. 

’룩백‘은 2019년 발생한 쿄애니 방화 사건을 애도하며 그들의 꿈을 이어받은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의 오마주도 담겨있다.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 그리고 창작의 길에는 정답이 없다. 세상 누군가는 무던히 끈질기게 자신의 꿈을 이뤄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게임을 만들고 영화를 찍고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들이 마이크를, 바이올린을, 펜을, 카메라를 들고 꿈을 찾아나선 여정은 언제나 고독하고 험난했을 것이다.

대부분은 불확실한 꿈과 미래를 뒤로하고 생업에 몰두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는 그런 우리 모두를 위로하며 지금의 삶과 생을 격려한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봤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가? ‘룩백‘은 한때 세계 제일의 크리에이터였고 지금도 그러한 세상의 모든 후지노와 쿄모토를 향한 헌사의 마스터피스다. 지금 왜 살아가고 있는지 이유를 찾고 있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주제가 ‘Light song’이 흘러나오는 마지막 크레딧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롱테이크 신이다. 마지막 한 컷까지 이어지는 감정을 느껴보자. 후지노의 등은 우리들의 등이기도 하다.

P.S. 아직 원작 만화를 읽지 않았다면 가급적 영화를 본 다음 읽을 것을 권장한다. 이 영화는 1회차보다는 2회차에서 더 큰 감정의 격랑을 맞이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룩백' ⓒ메가박스중앙
▲'룩백' ⓒ메가박스중앙

 

제목: 룩백(Look Back)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 [룩백]

감독/각본/캐릭터디자인: 오시야마 키요타카 

목소리 출연: 카와이 유미, 요시다 미즈키

제작: 스튜디오 두리안

수입/배급: 메가박스중앙㈜

러닝타임: 58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4년 9월 5일

평점: 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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