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영상, 감정 고조는 의도된 설계...아직 공개되지 않은 많은 의미 들어있어”
“작품 안에 감독의 무의식 내포하는 것은 영화라는 예술의 매력”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지난 9월 5일 개봉한 ’룩백‘이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언론, 평론가, 감독, 배우, 만화가까지 각계각층 인사들의 극찬과 꾸준한 입소문 속에서 장기상영을 이어가며 25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다양한 관객층의 호평을 통해 마스터피스로서의 작품성을 입증한 ’룩백‘은 ’체인소 맨‘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단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만화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만화가 콤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만능 애니메이터로 유명하다. 그는 ’룩백‘의 감독, 각본, 콘티, 연출,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적화 감독까지 맡아 천재적인 크리에이터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내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내한한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오는 13일까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SR타임스는 11일 내한 중인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만나 이번 작품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룩백‘이 한국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기쁩니다. 스튜디오에서 계속 애니메이션만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외국에서 사랑받고 호평까지 받고 있어 약간 얼떨떨한 상황입니다. 인간 감정에는 국경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Q. 크리에이터로서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작업을 해오셨을 텐데요. 이 작품을 작업하시면서 남다르게 느끼신 점이 있으신가요.
한창 이 작품을 만들 때 AI 화상 기술이 굉장히 화제가 되던 시기였어요. ‘룩백‘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원화와 동화로 나뉘는데 이 ’룩백‘ 작품 안에서는 원화의 선인 '밑그림'을 그냥 그대로 남겨서 표현했습니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필요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AI 기술이 사람 손을 대체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오히려 인간이 그린 선을 아주 적극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 AI가 절대 흉내 내지 못할 그런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물론, 인간이 그린 밑그림을 남기는 것까지도 AI가 얼마든지 재현 가능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짜죠. 일종의 패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림이 그린다는) 본질적인 부분은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하리라 생각하면서 작업했습니다.

Q. 일본에선 관객 성향으로 볼 때 어떤 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원작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꼭 옮겨오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현대사회는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대가 아닌가 해요. 이 작품은 창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에 머물면서 만화나 영상 신작이 없을까 굉장히 찾아 헤맸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와 재해들이 자주 일어났어요. 그 과정에서 좌절감이 많이 쌓여왔습니다. ‘룩백‘ 원작 자체가 그런 사람들의 좌절을 스스로 구제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런 면을 크게 공감하고 구원감을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Q. 후지노가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이라면서 후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원작과는 심도를 다르게 한 부분이 있으셨나요.
주인공 심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후지노의 심리에 좀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창작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은 각각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후지노의 갈등은 원작에도 어느 정도는 그려진 부분인데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좀 더 심도 있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후지노의 그림 연습 노력에 원작 이상으로 초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Q. 후지노가 쿄모토에게 팬이라는 말을 듣고 신이 나 빗속을 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표현에 중점을 두신 부분과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이신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신이 매우 많습니다. 후지노의 역동적인 신 그리고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신이 바로 그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 들어서 가능하면 에너지 넘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어려운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여타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 사람이 그린 그림의 힘을 더 표현해 애니메이터들을 좀 더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기법을 사용해 작업했습니다. 빗속 신은 18초인데요. 후지노가 물웅덩이를 차고 점프하고 손발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적인 뉘앙스로 캐릭터 연기를 표현했습니다.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라 수정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18초간 계속 움직이는 캐릭터를 그리려면 아주 대량의 원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승부처럼 그려내야 합니다. 제가 전부 작업했습니다. 남에게 시킨다는 게 어려운 작업이죠.

Q. 얼굴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은 감독님이 직접 본인의 모습을 참고하면서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직접 스튜디오에서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후지노가 손과 발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어느 타이밍에 그렇게 되는지도 스스로 점프해보기도 했죠. 빗속에서 물방울이 튀는 모양은 욕실에 물을 채우고 직접 튀겨가면서 연구했습니다.
세밀한 표정은 제 책상의 거울을 보면서 확인했습니다. 작품에서 보면 후지노 책상에 거울이 있어요. 아마 모든 만화가가 그렇게 거울을 놔두고 작업하지 않나 싶습니다, 캐릭터의 표정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입장의 감정이입 또한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작업할 때 영화나 음악을 틀어놓고 소리를 들으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면서 그리는 방법을 많이 취했습니다.
애니메이터는 한 컷 안에 매우 많은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므로 표정 하나를 그리기 위해 보통 만화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한순간의 감정으로 한방에 그린다는 것은 어려우므로 그 감정을 지속하기 위해 영화나 음악의 힘을 빌려 작업합니다.
Q. 전문 성우가 아닌 카와이 유미, 요시다 미즈키 배우를 캐스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했고 프로 성우를 포함해 배우들까지 아주 많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들을 다 듣고 제가 결정했습니다.
일본의 많은 작품이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 영화는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원작 자체도 리얼한 느낌이죠. 제 개인적인 작가적 취향 측면에서도 리얼리티를 중시한 연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두 배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굉장히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해 이 작품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캐스팅을 결정했습니다.
후지노 역의 카와이 유미 씨 경우에는 “학교 쉬는 동안 그림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네”라고 중얼거리는 대사를 했는데 듣자마자 거의 한 방에 결정을 내릴 정도로 굉장히 존재감이 큰 목소리였습니다.
후지노라는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성격이 좀 나쁜 캐릭터입니다. (웃음) 그러면서도 좀 애교가 담긴,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을 같이 갖고 있는 목소리여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카와이 유미 배우 목소리는 굉장히 잘 맞았고 즉시 결정을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일단 요시다 미즈키 배우가 연기한 쿄모토는 목소리 선정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쿄모토의 존재감을 갖는 목소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스태프들도 의견이 갈렸는데 유일하게 요시다 미즈키 씨의 목소리가 제가 생각하는 교모토에 딱 맞는 목소리였습니다.
쿄모토가 히키코모리(폐쇄은둔족)에 사교성이 없는 캐릭터인 뒷배경을 담아낼 여유는 없었습니다. 방에서 튀어나와 딱 처음 내뱉는 그 대사 안에서 목소리 뉘앙스만으로 히키코모리 느낌이 있어야 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소박하지만, 그래도 마이웨이적인 느낌,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를 안 해본 듯한 느낌 등을 다 담았어야 했는데 요시다 미즈키 씨의 목소리가 딱 맞았습니다.

Q. 요시다 미즈키 배우가 사투리 연기를 합니다. 원작에는 없는 설정입니다.
제 고향이 후쿠시마현입니다. 작품 속 아키타현과 같은 도호쿠 지방인데요. 이쪽 사투리가 억양이 강하고 표준어와는 굉장히 다른 느낌입니다.
쿄모토가 히키코모리이고 부모님이 아키타현 출신이라 사투리를 쓴다면 아마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학교 안에서나 협조성이 부족한 캐릭터라 본인이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 표준어를 써도 딱히 본인은 고치려는 노력을 안 했을 것 같았죠.
또 하나의 이유는 후지노와 쿄모토라는 캐릭터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투리가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호쿠 지역 사투리는 도쿄 표준어 기준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시골 느낌이 강합니다. 그 때문에 도쿄에 사는 도호쿠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사투리를 숨기려는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많은 작품이 도호쿠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도호쿠 지방 사투리는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안에서 적극적으로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있어서 사용하게 됐습니다.
Q. 엔드 크레딧 자체가 긴 쿠키 영상입니다. 관객분들이 대부분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며, 영화 메시지를 이런 방식으로 압축해 전달하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엔딩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해 내셨고, 이러한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셨는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도한 엔딩 작업이었습니다. 관객 감정을 굉장히 고조시키는 설계로 만들어졌고 그 여운을 좀 더 많이 담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루카 나카무라의 음악과 함께 후지노의 뒷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연출은 굉장히 의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배경은 시간이 흘러가는 표현 연출을 했습니다.
이 작품 안에서 굉장히 여러 아름다운 배경들이 나옵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배경을 그려달라고 배경팀에 직접 지시했습니다. 이것은 감독으로서 후지노를 위해 마련한 일종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후지노를 위한 응원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후지노가 느끼는 상실감을 담고 싶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의 구원 부분도 그려졌지만, 사실 후지노 스스로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해피엔딩을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엔딩에서는 후지노의 일상이 계속되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그 부분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더 많은 의미가 제 머릿속에 있지만, 그것까지 말해버리면 작품을 보는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작품을 깊게 연구하면서 고찰하시는 관객분들도 있으므로 그런 부분에 대한 즐거움은 남겨두고 싶습니다. 엔딩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언젠가, 누군가 하나씩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작품에 담긴 제 생각을 전부 언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중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의미가 영화적으로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야말로 영화라는 예술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굉장히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대응이 유연해져 대중적인 작품은 물론 코어 팬층들을 위한 작품도 나올 수 있죠. 애니메이터들은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인데 그들의 노하우가 공유되기 쉬워지고 그들의 집단 유지가 가능해졌습니다. 덕분에 재능있는 인재들이 모이고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단점 쪽으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기 때문에 다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애니메이션과 영상 쪽에서 국가적인 지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하루빨리 한국을 본받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