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은 엄청난 피해자, 상처와 트라우마 파묘하고 싶었다”

“신은 교회보다 새벽 기도하는 어머니 마음 속에 있어”...개신교 집사 감독의 무속 신앙 영화

“10대 20대 반응이 정말 뜨거워...이 영화에 희망 품었다” 

“베를린영화제서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 좋아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 찾아”

▲'파묘' 장재현 감독. ⓒ쇼박스
▲'파묘' 장재현 감독. ⓒ쇼박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일본 영화와 만화를 엄청 좋아하고 라쿠텐에서 쇼핑도 해요.”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쾌속 흥행 중인 영화 ‘파묘’ 인터뷰 자리에서 장재현 감독의 한 마디는 폭소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교회 집사이면서 무속 신앙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심지어 ‘파묘’는 항일 오컬트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본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그는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감독이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파묘’ 장재현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과 그의 영화 철학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인터뷰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Q.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의 과거 상처와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 15차례 정도 이장하는 걸 따라다녔어요. 제가 소재에 접근할 때 겉모습보다는 그 핵심을 보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새벽에 장의사님이 급하게 전화를 주시더군요. 이장하는데 30만원 줄테니까 따라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돈은 괜찮습니다하고 가서 도와드렸어요.

근데 상주한테 갑자기 뇌졸중이 온 거예요. 묘를 팠더니 근처 수로 공사를 잘못해서 거기에 물이 들어가 있더군요. 그래서 장의사님이 관을 꺼내서 열고 급하게 토치로 화장을 했어요. 다 태워버리시더군요. 그때 느꼈죠. 이 파묘라는 게 뭔가 과거를 들춰서 잘못된 걸 꺼내 없애는 거구나 하고요. 그 핵심 정서가 그날 딱 보이더군요.

우리나라 땅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면 엄청난 피해자잖아요.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으니까 그걸 파묘 한번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작품은 마치 제 발바닥의 티눈을 꺼내고 다시 생겨나지 않게 레이저로 지지는 그런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

Q.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고 진행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한예종 시절 이창동 감독님께서 수업 시간에 항상 얘기하신 게 있어요.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하셨죠. 이야기는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가만히 있으면 만날 수가 없어요.

만약 제가 멜로 감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에 말씀 드린 현장에 가면 잘생긴 장의사와 같이 다니며 이장을 하다가 썸을 타는 그런 게 눈에 보이겠죠. (웃음) 근데 전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는 거죠. 막 움직이고 누군가를 만나고 다녀야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당연히 전제에 깔려 있어요. 그래서 항상 레이더를 켜고 다닙니다.

Q. 감독님이 교회 집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무속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저는 생각보다 밝은 성격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로테스크함을 좋아하고 동경했던 것 같아요. 어두운 이야기들이 더 재밌죠. 저는 항상 어두운 세계관에 좀 날라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캐릭터는 다 그렇게 어둡지 않거든요. 밝은 사람들이 어두운 데 들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밝은 사람이라 본편에서의 대화도 밝은 편이에요. 근데 영화 예고편은 항상 무섭게 나와서 문제죠. (웃음)

20살 넘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의리, 정 이런 걸 얘기하는 건 교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절대 얘기하지 않아요. 네가 얼마나 쓸모 있냐? 이게 얼마냐? 하면서 우리는 다 톱니바퀴처럼 살아가요. 교회든 절이든 성당이든 이런 곳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얘기해요. 그런데 그런게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에 대한 반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근데 저는 오늘도 새벽 기도하는 우리 어머니의 마음에는 그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큽니다. 

▲'파묘' ⓒ쇼박스
▲'파묘' ⓒ쇼박스

Q. 불문율을 깨는 아이디어를 사용한다.

서양 뱀파이어, 미라 그리고 중국 강시는 우리에게 친숙해요. 근데 영화의 험한 것은 친숙하지 않습니다. 옆 나라의 국가대표고 유명한 아이덴티티의 정령이죠.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만화책이 ‘음양사’예요. 요즘 생각보다 10대 20대 중에 그 문화와 게임을 접한 사람들은 이런 것에 그렇게 큰 거부감이 없거든요. 험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전반부에서와는 다르죠. 

전작들에서 저는 귀신을 찍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공포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요. 아무튼, 귀신을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심령 사진을 계속 봤죠. 답을 찾게 된 건 귀신은 찍는 게 아니라 찍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찍히는 것처럼 찍고 싶었어요. 

뒤에 나오는 이 정량은 그 나라의 국가대표를 데리고 새롭게 완전 정반대의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그런 게 없다면 깔끔한 유령 영화를 만들 수 있겠죠. 그렇지만 한 발자국 더 나가야만 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시나리오 때부터 불편하다는 사람 많았어요. 근데 그 불편함을 이기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저는 이 영화를 만드는 의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일 들으면 기분 좋은 말이 발전했다는 말이에요. 제 감독 철학은 그냥 했던 걸 계속하고 돈 벌기 위해 흥행작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그게 저의 사명입니다.

Q. 이 작품에서는 어떤 도전을 했나.

영화를 봤을 때 끝날 때 감정이 중요하거든요. ‘검은 사제들’은 희생이 결국 모든 걸 다 이길 수 있다로 끝나는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바하’는 그냥 굉장히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신이 존재하는데 왜 사람들은 죽어나가나? 신은 어디 있나?하는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개운하게 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파묘’를 음흉한 공포 영화로 만들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하려면 주인공이 미국의 의뢰자 박지용(김재철)이어야 해요. 공포 영화의 99%는 대부분 피해자의 플롯이에요. 그래야 무서울 수 있어요.

‘검은 사제들’을 공포 영화로 만들려고 그랬으면 이영신(박소담)과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해야죠. ‘사바하’도 무서운 영화가 되려면 이금화(이재인)와 그 가족들이 데리고 있으면서 무서운 그런 이야기로 풀어가야지 공포 영화가 될 수 있죠. 근데 제가 신비롭고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지 공포영화는 그렇게 즐겨보지 않아요. 

어쨌든 ‘파묘’는 원래 공포 영화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진 거죠. 전 극장 망할까 봐 매일매일 갔어요. 근데 블록버스터들은 개봉을 미루고 묵힌 영화만 상영하고 몇 명 없는 관객들은 다 우울하게 나오길래 이번 영화는 익사이팅하게 만들어야겠다 하고 주인공들이 다 바꿨어요. 플롯도 달려졌죠. 원래는 자기 집안 업보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가야했는데 그건 기존 공포영화에서 많이 쓴 문법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해왔던 방법으로 다시 선택한 거예요. 

전문가가 주인공이라 공포 영화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공포 장면보다는 긴장감을 좋아해요. 그걸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공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은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긴 해요.

▲'파묘' ⓒ쇼박스
▲'파묘' ⓒ쇼박스

Q. 무속 신앙에 한일 과거사가 결합한 작품이다.

제가 일본 영화와 만화를 엄청 좋아하고 라쿠텐에서 쇼핑도 해요. (웃음) 일본 여행도 자주 가고 일본 좋아합니다. 저는 일본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우리 땅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포커스를 맞췄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정서의 공포감이나 트라우마 같은 것에 대한 구세대와 신세대의 결합이죠. 각 세대들이 힘을 합쳐 그걸 개운하게 뽑아내는 우리나라에 대해 집중했지 일본에 집중하지는 않았어요.  

잠시 모셔온 그 존재를 괴기하게 보여주기보다는 표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상징과 대사, 이미지로 험한 것을 은유하고 싶었지 옆나라에 대한 어떤 감정을 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파묘’가 공포 영화라면 더 무섭게 표현했겠죠. 

Q. 베를린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됐다. 한국적 소재의 해외 경쟁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처음에는 걱정이 됐는데 깜짝 놀란 게 외국 관객들은 옆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미라도 있고 뱀파이어도 있으니까 저건 동양 뱀파이어인가 하고 익사이팅하게 즐기더군요. 옆 사람 생각 안 하고 ”죽여!“ 이러더라구요. (웃음) 

저희가 블라인드 시사회를 몇 번했는데 10대 20대가 그렇게 봐요. 일본 문화에 친숙한 세대는 이걸 그냥 익사이팅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저는 ‘서울의 봄’ 전두광을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는데, 10대 20대는 그냥 나쁜놈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죠. 10대 20대 반응이 정말 뜨거웠기 때문에 저희가 이 영화에 희망을 품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지긋한 외국 기자분이 제 영화를 다 봤다고 하시더군요. 그분과 인터뷰를 했는데 아주 좋은 말을 들었어요. 그분이 ”나는 당신이 호러 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오리엔탈 그로테스크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어요. 딱 맞는 말씀이었죠.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정의를 못 내리고 있었거든요. 

제가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후반부에 나오는 것도 좀 신비롭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섭게 하려면 굉장히 자극적인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저는 이상한 변신도 하는 그런 신비로움을 좀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해외 기자가 그렇게 평가를 해줘서 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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