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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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부정할 수 없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한국 전통신앙은 땅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긴다. 지력이 강한 땅을 차지할수록 기근에서 벗어나 장수할 수 있으며, 식솔들을 먹이고 남는 곡식은 팔아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산임수 명당에 집이나 조상 묘를 얻으면 대대로 부귀영화와 장생을 얻을 수 있다는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이 뿌리깊다. 겉으로는 미신 취급 받는 풍수지리가 21세기에도 대다수 한국인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교 미스터리극 ‘사바하’, 엑소시즘 소재의 ‘검은 사제들’을 발표했던 장재현 감독이 이번에는 풍수지리와 묫자리 그리고 음양오행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파묘’를 들고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가 그려낸 이번 괴담 속에서는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이 알 수 없는 존재를 두고 국경을 초월해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졌고 크게는 2부로  나뉜 '파묘'는 시종일관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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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당 화림(김고은)은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부동산 사업을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지용(김재철)이 있는 미국 LA를 방문한다. 그의 집안은 3대째 기이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집안의 갓 태어난 아이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화림은 집안에 깃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조상묘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자식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지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화림에게 거액을 제시한다. 화림은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최민식), 베테랑 장의사 영근(유해진) 그리고 제자 봉길(이도현)과 함께 한국에 있는 지용의 할아버지 묫자리를 찾아간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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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묫자리는 명당이 아닌 악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대로 부자 집안이 왜 이런 곳에 묘를 선택했는지 석연치 않은 의문이 드는 상황. 상덕은 이런 불길한 무덤을 건드리면 화를 입을 수 있다며 파묘를 극구 반대한다.

하지만 화림은 대살굿을 진행해보자며 상덕을 설득한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를 살려보자는 화림의 주도로 이루어진 파묘는 순조로워 보였다. 할아버지의 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자 지용은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관을 열지 말고 화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지용의 부탁은 지켜지지 않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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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화림과 양의 봉길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1부는 미국에서 시작된다.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병원,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의 도입부 같은 불길함에 둘러싸인 대저택, 국경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핏줄의 저주가 한기를 불러일으킨다. 

카메라의 시점이 한국으로 넘어오면 장재현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에피소드와 함께 산자가 죽은 자의 무덤을 내려다보는 앵글이 반복된다. 사람은 누구나 숨이 멎으면 썩어 흙이 되든 불에 타 먼지로 변하든 반드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관객은 그 본능적인 두려움 속에서 조상과 후손이 연결된 길흉화복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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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사 상덕의 말대로 실제로 대한민국 상위 1%에게는 풍수가 종교이자 과학이다. 많은 이들이 미신을 부정하지만, 풍수와 민간신앙에 대한 믿음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양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장의사 영근이다. 그는 한 발 물러나 풍수지리, 명당, 쇠말뚝에 의문을 던지며 열린 시각에서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빨간펜을 들어 남 앞에서 이름을 써 내려가는 것만큼은 하지 못할 것이다.

미신과 무속신앙 외에도 한국인의 마음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있다. 역사의 트라우마다. 경복궁을 가리고 지어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해방 후에도 한동안 꼿꼿이 우리 땅에 박혀있었다. 이 흉물은 21세기에 접어들기 전 해체됐지만, 일제 강점기 실체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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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1부는 ‘항일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가진 주요 등장 인물들이 ‘의열 장의’ 가게와 ‘보국사’ 절에 모여 우리나라 역사의 트라우마를 파묘하는 이야기다.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현실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미지의 세계. 그 기묘함을 한·미·일 3국의 그로테스크 감성으로 융합해 서사와 캐릭터의 균형을 맞췄다. 

2부는 1부의 검은 장막을 벗겨내자 드러나는 또다른 이야기다. 항일에 관한 테마도 사실상 1부에서 끝을 맺는다.

1부가 미지에서 오는 공포를 담은 스릴러였다면 장재현 감독이 스토리의 허리를 끊고 싶었다고 밝힌 2부는 전설의 고향 같은 실체화된 정령에 관한 판타지 괴담이다. 이 부분에서 1부와는 장르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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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2부는 실체화된 험한 것과 음양오행의 조합을 통해 나름대로 극의 재미를 이끌어나간다. 연출가 자신이 가진 풍부하고 방대한 일본의 요괴 괴담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지금까지는 정면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오컬트 정령물을 구축해냈다. 

이 작품은 착한 꼰대 최민식, 신들린 Z세대 무당 김고은·이도현, 객관적 일침을 놓는 유해진 등 분명한 역할과 매력을 지닌 배우들의 매력과 한국인만이 공유하는 미신에 관한 독특한 정서의 흡입력을 잘 활용한 오컬트 영화다. 이질적인 것을 도입해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던 ‘곡성’(2016)과는 결이 다른 접근 방식이 흥미롭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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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현 감독은 이 작품을 공포 영화나 한국형 고스트버스터즈라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추구하는 그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는 기존 장르물의 클리셰를 비튼다. 오컬트 장르를 선호하는 관객들의 취향과 무속신앙에 친근한 대한민국 국민 정서 속에서 대중성만큼은 탄탄하게 확보해 나가는 작품이다.

P.S. 쇼박스 인트로가 흑백 버전으로 나오지만 귀여움에는 변함이 없다. 시작부터 미소를 지으며 보게 되는 오컬트 영화인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파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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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묘(해외판 제목: Exhuma)

감독: 장재현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쇼박스, 파인타운 프로덕션

공동제작: 엠씨엠씨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4분

개봉: 2024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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