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왔지만, 최근 시장의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픽사베이
▲국내 증시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왔지만, 최근 시장의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픽사베이

글로벌 변수,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국내 증시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왔지만, 최근 시장의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와 정책 모멘텀이 지수를 밀어 올렸지만 단기적으로는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팔랐다는 부담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레버리지 비중 확대가 시장의 민감도를 높이고 있다. 상승 국면에서 레버리지는 수익을 키우는 역할을 하지만, 흐름이 반전되면 손실 역시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기술주 조정과 유동성 환경 변화와 같은 외부 변수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상승 기대와 조정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재조정하는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장 초반 국내 증시는 급락하며 시장에 경고음을 울렸다. 개장 직후 코스피200선물지수가 5% 넘게 하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코스피 지수는 4,000선 아래로 다시 밀렸다.

한국거래소가 사이드카를 발동한 것은 7개월 만이다. 반도체·기술주 중심의 레버리지 매수가 누적된 상황에서 변동성이 확대되자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사상 최고가 랠리 속에서 고조되던 자신감이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최근 코스피가 4,000선을 돌파한 배경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 정책 드라이브, 외국인 매수 유입 등 수급과 실적이 맞물리며 투자심리가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승 과정에서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5조원을 넘어서며 '빚투'가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특히 SK하이닉스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레버리지 매수세가 집중됐다.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신용잔액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고점에서 신용잔액이 상환되며 온도 차가 드러났다.

김현지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일 코스피는 반도체 대형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집중되면서 지수가 빠르게 밀렸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조정 폭이 컸던 만큼 지수 하락 기여도가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관련 발언과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 중반을 위협한 점도 외국인 심리에 영향을 줬다"며 "외국인이 코스피에서는 매도 우위, 코스닥에서는 매수 우위를 보인 점은 업종별·섹터별 선호도가 재편되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선명해지고 있다. 최근 뉴욕증시에서는 팔란티어, AMD, 오라클, 엔비디아 등 AI 대표 종목이 동반 하락했다. 실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주가가 하락한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S&P500 선행 PER은 23배를 상회해 닷컴 버블 당시 수준과 유사한 영역까지 올라왔다. 

영국 외신 LondonLovesBusiness는 "선행 PER이 이미 23배를 넘는 상황에서 시장은 경제지표나 연준 발언과 같은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지금은 밸류에이션이 높은 만큼, 수요·성장 기대가 조금만 흔들려도 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는 국면"이라고 경고했다.

투자 확대의 구조적 부담도 존재한다.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는 올해에만 200조~3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지만, 전력 수급·부지 확보·허가 지연 등 현실적 병목이 투자의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달러화지수(DXY)는 100을 재돌파했고, 미국 단기 국채금리와 크레딧 스프레드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연준의 금리인하 경로가 불확실해지고, 연방정부 셧다운 리스크, 대형 기술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 부담 등이 단기 자금 시장에 긴장을 형성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취약 고리는 '레버리지 개인 자금'이다. 신용거래는 가격이 오를 때는 수익을 빠르게 확대하지만,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손실 속도 역시 가파르다. 특히 반대매매와 청산 압력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조정은 '하락'이 아닌 '붕괴'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오늘의 사이드카 발동이 바로 경고다.

◆ 상승장 뒤에 남은 레버리지 그림자
결국 시장을 둘러싼 조건은 양면적이다. 반도체 업황은 실제로 되살아나고 있고, 그동안 ‘저평가 논란’이 이어졌던 한국 증시에도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되고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국정 과제로 전면에 내세운 만큼, 중장기적으로 증시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기대도 유효하다. 이런 요소들은 분명히 시장의 상승 논리를 떠받치는 힘이다.

그 상승세를 이루고 있는 동력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용잔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상승이 멈추는 순간, 개인 투자자의 레버리지 포지션은 곧바로 부담으로 전환된다. 

특히 수급이 몇몇 특정 종목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는, 시장의 체력이 충분해 보일 때는 문제되지 않지만 조정이 시작되는 순간 가격 변동을 빠르게 키우는 촉매가 된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유동성이 점차 조여지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고, 미국 기술주의 고평가 논란이 현실적인 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변수는 국내 시장이 단기 충격에 더 취약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한국 증시는 분명 상승의 이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상승이 흔들릴 수 있는 이유' 역시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지금 비관도 낙관도 아닌 균형을 찾는 과정에 있다"며 "상승장의 방향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속도는 조절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이 중요해지는 구간"이라며 "레버리지 비중 관리가 향후 수익률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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