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오' 타나카 에이코 "'헤어질 결심' 가장 좋아해…한국 배경 작품 만들고 싶어"

"'차오'…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엄청난 작품 구상해도 결국 작은 작품 나온다'는 말에 공감"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2025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장편 경쟁부문 심사위원상, 재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BIAF2025)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차오'는 인어 왕국 공주와 결혼하게 된 평범한 인간 스테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인 메시지와 깊은 인간성 탐구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확장한 작품이다. 

'차오'의 타나카 에이코 프로듀서는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에 입사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제작에 참여하는 등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산증인이다. 

'시티헌터3' 오프닝, '더티페어 극장판' 오프닝, '애니매트릭스'로 유명한 모리모토 코지 감독과 함께 공동 창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STUDIO4℃의 대표이기도 한 타나카 에이코 프로듀서는 BIAF2025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SR타임스는 영화제 기간 중 부천시 한 카페에서 다나카 에이코 프로듀서를 만나 1대1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Q. BIAF2025의 개막작 '차오' 프로듀서로서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소감은

예전에 '애니매트릭스', '썬더캣츠'와 관련해 한국에 왔었기 때문에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차오'가 BIAF2025 개막작으로 선정돼 한국 관객분들에게 소개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Q. 개막식에서 '차오'를 '전혀 다른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융합하는 멋진 미래를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작품의 시작점과 목표는 무엇이었나

이 작품을 시작한 계기는 정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시나리오, 캐릭터 디자인, 미술 설정을 전부 독창적으로 도전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좀 통일을 시키는 편이 많잖아요. 근데 '차오'는 캐릭터 등신을 다 다르게 했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죠.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다양성을 캐릭터들에도 반영했습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은 그림자의 형태나 위치가 정해져 있어요. 그렇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림자가 굉장히 직선으로 들어간 특징이 있죠. 일반적으로는 이질감 때문에 시도를 해오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 작품에 도입해보기 위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배경의 그림자를 잘 보면 분홍색 선 같은 게 들어가 있습니다. 할레이션(빛 번짐)을 미술 쪽에 도입한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는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연출을 맡은 아오키 야스히로 씨는 이전부터 저희와 여러 작품을 통해 협력해왔던 관계였는데 이분의 개그 센스와 사물을 재미있게 그리는 아이디어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으로 섭외하게 됐습니다.

Q. 이 작품은 캐릭터 디자인이 독특하다 

세상이 미남미녀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Q. 80~90년대 애니메이션 중에 노동력을 갈아 넣어 만든 작품들이 있는데 이번 영화는 그런 느낌이 드는 작화를 보여준다. 핸드드로잉 10만장을 사용하는 등 제작 난이도를 높인 작업이라고 밝혔다. 작화 수준이 높은 대신 제작비용 측면에서는 부담이 됐을 텐데 핸드드로잉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작 당시 저희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습니다.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았죠. 크리에이터들의 재능을 믿고 그들이 그리고자 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일단 다 해보라고 했습니다. 핸드드로잉에 돈이 많이 들긴 해요. 그런데 처음 결과물이 공을 엄청나게 들여 만들다보니 퀄리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다른 부분을 허술하게 할 수는 없었죠. 이대로 끝까지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완성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영화제 AI 홍보대사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걸 보면서 앞으로는 인간 손으로 직접 그리는 작품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렇기에 핸드드로잉으로 제작한 이번 작품을 소중하게 여겨주시고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희 회사 다른 작품인 '올 유 니드 이즈 킬(All You Need Is Kill)' 경우는 풀 3D로 만들었는데도 작화한 것처럼 보여요.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죠. 현재 풀 3D와 핸드드로잉에 정말 공을 들인 차기 작품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Q. '스플래시'(1984),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엘리멘탈'(2023)이 연상되는 웃음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코미디 측면에서 일본과 프랑스에서 관객 반응에 차이가 있있다고 밝혔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유명 작품들과 비교해주시니 좋습니다. 사람을 웃게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문화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가 다르잖아요. 심지어 코미디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저희에게 매우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일본에서 공개했을 때는 관객 사이에서 큰 웃음이 터지지 않았어요. 그것은 아마도 저희가 서비스 정신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지만, 관객분들께서는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시면서 조용히 보신 것 같아요. 반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는 반응이 좋았어요. 이 작품에는 사회풍자와 아이러니가 담겨 있는데 프랑스분들의 문화적 측면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큰 반응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아마 한국 관객분들께서도 많이 웃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이 작품은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염두에 둔 적이 있는지

한국, 일본, 중국은 이제 서로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해요. 전에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전혀 보지 못했던 세계라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럽이나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서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제는 아시아에 눈을 돌려 보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함께 작품 프로듀싱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꼭 해보고 싶네요. 제가 한국영화를 좋아하거든요. 특히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2022)을 가장 좋아합니다. 너무 멋진 영화라고 생각해요.

Q.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활약해왔다. 애니메이션계에 몸담게 된 이후부터 계속 외길 인생을 이어왔는데 소회를 전한다면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싫증을 잘 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웃음) 주어진 일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 작품을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싫증을 잘 내니까 항상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해왔죠. 그래서 여러 작품에 관심을 두고 손을 대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해온 것 같습니다. 

Q. 미야자키 하야오, 모리모토 코지 등 업계에서 존경받는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함께 일해왔는데 기억나는 일화나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씨가 제게 말씀하셨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말이 있어요. 아주 엄청난 것을 생각해내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시나리오를 쓰면 절반 정도로 줄어버리고, 그걸 다시 스토리보드로 만들면 또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버린다는 거예요. 거기서 다시 애니메이션을 완성해 놓고 보면 역시나 또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작품을 만들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주 작은 작품이 나오더라는 거죠. 저 역시 항상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모리모토 코지 씨의 작품을 보면 속도감과 템포가 정말 좋아요. 스토리보드, 편집 능력 등도 탁월하죠. 이번 '차오'의 연출을 맡은 아오키 야스히로 씨 경우도 모리모토 코지 씨의 거의 모든 작품에 참여하며 그를 동경해왔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저희 STUDIO4℃에서 같이 작업하게 됐었던 것이죠. 

Q. 현재 한국 극장가에서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크게 흥행하고 있다. 최근 애니메이션 업계의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평가를 받은 만화 원작 작품 속에서도 특히 호평을 받았던 요소들을 다시 확장해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작품들도 물론 있어야겠지만, 인간에 대한 창의적인 표현을 담은 문화 예술 작품 역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작품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런 면에서 본다면 고(故)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들도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함께 작업했던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님께서는 '반딧불이의 묘'(1988)를 만드셨죠. 저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거의 매일처럼 감독님의 얼굴을 보던 사이였는데 굉장히 훌륭한 분이셨어요. 그분이 작품을 만들 때 저도 함께 확인하곤 했는데 정말 단 하나의 컷도 버릴 게 없었던 게 기억납니다.

Q. '차오'를 보게 될 한국 관객분들을 위해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코미디 장르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보시다가 마음이 살짝 울컥해지지기도 하는 영화입니다. 옛날 사고방식일지는 몰라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마음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을 많이 느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