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어줘'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내 곁에 있어줘'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인간을 묘사한 영화"

"봉선화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지혜로운 생명체" 

"'터진다'를 키워드로 서사 쌓아나간 작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2025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영화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트벌(이하 BIAF2025)를 통해 한국에서 프리미어 상영된 '내 곁에 있어줘'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세대교체 대표주자 중 한 명인 키노시타 바쿠 감독의 신작이다.

키노시타 감독은 우연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군상극 애니메이션 시리즈 '오드 택시'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내 곁에 있어줘'는 '오드 택시'의 각본가인 코노모토 카즈야와 다시 한번 콤비를 이뤄 인간 냄새 물씬 나는 따뜻한 러브스토리와 누아르 영화의 감성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 

시한부인 무기징역수 아쿠츠와 봉선화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묘한 대화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흡입력 있는 서사 전개를 마지막까지 유지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SR타임스는 최근 부천시 한 카페에서 BIAF2025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키노시타 바쿠 감독과 1대1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한국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 BIAF2025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만난 소감은

저는 예전부터 한국 영화를 아주 좋아해 왔어요. 특히 양익준 감독님의 '똥파리'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들을 좋아하죠. 저는 한국의 영화 시장에 대해서도 좀 부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특히 영화를 보는 눈이 높으신 한국 관객분들께 이번에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첫 상영 후 진행된 GV가 끝나고 나서 관객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사인회를 가졌어요. 그때 짧게나마 관객분들께서 제 영화에 대한 소감을 직접 말씀해주셨는데요. 영화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보시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소감도 전해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Q.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저의 전작 '오드 택시'가 일단락이 되고 나서 각본을 맡으셨던 코노모토 카즈야 씨와 다시 한번 꼭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의를 드린 것이 이번 '내 곁에 있어줘'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오드 택시' 같은 경우에는 20명 정도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군상극이었어요. 반면에 이번 '내 곁에 있어줘'는 그보다는 적은 인물들과 세계관을 그리면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인간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 기획을 하게 됐죠.

Q. 이 영화의 일본 원제는 '호센카(봉선화)'다. 한국 개봉 제목은 '내 곁에 있어줘'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작품이 러브스토리잖아요. 러브스토리라는 것이 직구처럼 스트레이트 하게 전해진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거리감을 절묘하게 나타내는 제목이라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Q. 봉선화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갓 태어난 아기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은 봉선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이 설정이 현실과 판타지를 결합하면서 후반부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을 이어주기도 한다

우선 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정했던 건 봉선화를 모티브로 하자는 것이었어요. 봉숭아꽃의 특징은 그 씨주머니를 만지면 팡 하고 터지잖아요. 그 '터진다'는 단어를 키워드로 삼아서 거꾸로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가게 됐어요. 터진다는 말을 일본에서는 '버블이 터졌다', '풍선이 터졌다', '심장이 터졌다', '불꽃이 터졌다' 라는 식으로 사용하는데 영화에는 그와 연관된 내용이 나오죠. 그런 것을 점점 쌓아나가고 연결되는 작품 서사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Q. '대역전극'이라는 대사가 반복되는데 그 부분도 '터진다'는 키워드와 연결된 것인지

대역전극이 터진다는 말과는 이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대역전극은 아쿠츠라는 한 남자의 영고성쇠(榮枯盛衰)와 삶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피고 지는 꽃의 일생 같은 아쿠츠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Q. 이 영화는 1987년 쇼와 거품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절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표현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저는 1990년생이라 거품경제 시절을 직접 경험한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영화라든지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으로 조사하면서 만들어나갔어요. 거품경제 전성기를 직접 경험했던 선배님들에게 당시 디스코나 유흥 등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묻고 조사하면서 작품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동경이라기보다는 선진국이라는 인상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성우 출연진으로 '심야식당'의 코바야시 카오루, '콰르텟',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미츠시마 히카리 등 유명 배우나 뮤지션을 캐스팅했다.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를 기용하는 특별한 이유는 

캐스팅할 때는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경계나 구분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제가 느끼기에 이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느낌을 중요시해서 제안을 드리고 있어요. 

이번 작품은 컷 분할과 여백을 많이 사용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사영화에 가까운 작품이거든요. 따라서 오랫동안 일본 실사영화에서 활약하셨던 배우분들이 목소리 연기를 하신다면 신선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Q. 봉선화는 수다스럽고 건방지지만, 지혜롭게 느껴지는 캐릭터다. 유명한 테크노 듀오인 덴키 그루브의 피에르 타키를 성우로 캐스팅한 이유와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은

봉선화 캐릭터는 100년 이상 살아온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캐릭터를 단순히 오래된 식물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지혜로운 생명체임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봉선화가 인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일종의 조감자(鳥瞰者)로 그렸죠. 인간 삶에 대해 달관했기에 세상을 초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존재인 셈이죠. 그래서 봉선화가 인간에게 건네는 말에는 비꼬는 듯한 건방짐이 있기도 하지만, 묘한 유머가 섞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 태도는 이 캐릭터가 가진 초월적 지혜의 표현이기도 하죠.

피에르 타키 씨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본업은 뮤지션이지만 배우로서도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주 성실한 형사 역할에서부터 잔혹한 살인마 역할까지, 극단적으로 다른 얼굴을 연기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그의 매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에 있습니다. 그 불투명함이 주는 긴장감과 깊이가 이번 봉선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출연을 제안드렸습니다.

디렉션 과정에서는 피에르 타키 씨가 녹음 당일 여러 가지 톤과 패턴을 직접 준비해 오셨어요. 그걸 들어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상의했죠. 제안 중 특히 흥미로웠던 건, 외계인 같은 느낌, 즉 인간 세계와 약간 동떨어진 존재로서의 어조였습니다. 인간과는 다른 리듬, 다른 호흡으로 교감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저도 그 아이디어가 이 캐릭터 본질과 잘 맞는다고 느껴서, 함께 그 방향으로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말투와 톤에 대한 세부적인 조율을 하며 점점 완성도를 높여 가며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죠.

▲'내 곁에 있어줘'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내 곁에 있어줘'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Q. 아쿠츠는 서툴러 보이고 무뚝뚝한 캐릭터다. 봉선화에게는 바보라고 놀림 받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계획을 완성해낸다. 머릿속에 모눈종이가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캐릭터 서사를 어떻게 만들어가려고 했나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명확하게 설정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영화 내에서 정확히 그려지지 않지만, 그리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했고 자연스럽게 그냥 흘러가듯이 인생의 레일에서 벗어나 버린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서툴죠. 서툰 부분도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그려나갔습니다.

Q. 남자는 야쿠자, 여자는 호스티스라는 설정은 디즈니+ 시리즈 '무빙'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로맨스 에피소드다. 아쿠츠와 나나의 관계를 보면서 한국 관객들도 그 부분을 많이 떠올릴 것 같다. 그런 아쿠츠와 나나는 동거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직접적인 애정 장면은 연출되지는 않는다. 의도된 것인지 궁금하다

러브스토리 영화에서 이성에 대한 애정표현으로 키스 신이나 베드 신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간접적으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키스 신 같은 것을 직접 넣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깊은 애정을 전달하는 것이 저로서는 더 품위가 있고 우아한 연출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Q. 아쿠츠는 나나의 아들 켄스케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인다고 설졍했나

그 부분이 참 어려운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아쿠츠가 켄스케를 아들이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감정의 그러데이션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점점 더 강한 애착이 생겨나는 과정이 있었겠죠.

둘은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쿠츠는 어느 순간부터 피나 혈연관계 개념을 초월한 가족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입으로는 켄스케가 진짜 아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영화 중반쯤부터 마음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키노시타 바쿠 감독. ⓒ심우진 기자

Q. 아쿠츠의 선배인 츠츠미가 좋은 사람처럼 등장하지만, 후반에는 누아르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변해간다. 인물 표현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혹시 장르 영화에서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가 있는지

특정 영화의 캐릭터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군요. 츠츠미 캐릭터에 대해서는 초반에 그냥 호인이고 좋은 선배처럼 보이도록 그리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쪽으로 뒤집힐지 모르는, 좀 위태로운 인물이라고 할까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양쪽으로 다 보일 수 있게 그 균형을 상당히 의식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사실 이 인물을 표현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여러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신자 캐릭터들과도 통하는 공통된 특징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의식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썼던 건 역시 위태로운 균형감이었죠. 츠츠미를 그려나가면서 그 균형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Q. 록밴드 cero가 음악을 담당했다. 오프닝곡은 'Moving Still Life', 엔딩곡은 'Stand By Me'인데 매우 매력적인 노래들이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음악 부분에서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나이트 신이 많고 자연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작품이죠. 그래서 밤의 고요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생명의 신비로움과 인생의 원대함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요함과 원대함이라고 하면 상당히 상반된 느낌이 들잖아요. 그 상반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이 cero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당시에 cero의 'e o(이오)'라는 앨범을 듣고 있었어요. 이분들이라면 제 작품에 좋은 음악을 입혀주실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음악을 맡아달라고 제의를 하게 됐습니다.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내 곁에 있어줘' ⓒBIAF2025

Q. 이 작품은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잔혹한 면도 보여준다. 또한 진지한 드라마적 연출도 돋보인다. 실사 영화화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소개할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짚어 준다면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아쿠츠, 나나, 켄스케, 츠츠미 이렇게 4명입니다. 이 4명의 인생과 각각의 등장인물 등이 나오는 장면을 주목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이 나오는 장면에서 이들의 심경이라든지 살아가고 있는 행복감 같은 것들이 잘 표현이 되어 있거든요.

Q. 다른 업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계기로 애니메이션 감독을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뮤직비디오나 광고용 애니메이션 애니메이터로 일하거나 선배 감독님들의 스토리보드를 대필하기도 했습니다. 26살쯤에 제가 직접 기획서를 써서 한 프로듀서분에게 제출했는데, 그분이 캐릭터 디자인을 정말 좋게 봐주셨어요. 캐릭터가 흥미롭다고 하시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그것을 계기로 기획이 점점 발전해서 작품으로 이어지게 됐고, 그 결과로 나온 게 바로 제 첫 감독 데뷔작인 '오드 택시'입니다. 주변에 베테랑 스태프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감독으로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Q.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그림의 밀도를 너무 높이지 않으면서 캐릭터 인격과 특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간략화 또는 데포르마시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선으로 캐릭터 성격이라든지 특성을 표현하자는 것이 제 캐릭터 디자인 철학입니다.

Q. '내 곁에 있어줘'는 한국에서 2026년 1분기 개봉 예정이다. 한국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주셨으면 하는지 그리고 다시 한국 방문 계획이 있는지

이 영화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생겨나는 시간과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 같은 부분을 정성스럽게 그린 작품입니다. 저는 '내 곁에 있어줘'가 영화로 놓고 봤을 때 스스로 상당히 만족도가 높은 작품입니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감성과 애정을 담은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함께 잘 지켜봐 주시고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정식 개봉 시기에 불러주신다면 기꺼이 다시 방문해 한국 관객분들을 더 많이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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