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함께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성장 이야기"

"영화 속 이스터 에그 많이 찾아봐 주시길"

"영화에 제품 간접 광고 없어…오해받아 억울"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2019년, 재난과 코미디를 절묘하게 결합한 영화 '엑시트'로 9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의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는 기묘한 일상의 블랙코미디로,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저주에 걸린 선지(임윤아)를 지극히 평범한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가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이상근 감독을 만나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악마가 이사왔다'기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을 전한다면

저는 몇백 번을 봤는데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큰 화면과 풍부한 사운드, 그리고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서 영화관에서 보니 또 다른 감정이 들더라고요. 극장에서 전혀 모르는 분이 다가와서 “너무 잘 봤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시사회 후 인터넷 반응을 직접 찾아보진 않아요. 모두의 취향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죠. 그저 많은 분이 즐겨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Q. '엑시트' 이후 6년 만에 공개되는 신작이다. 차기작 공개까지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제가 원래 좀 느린 편이기도 하고요. '엑시트'가 좋은 결과를 거둔 만큼 빨리 다음 작품을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췄잖아요. 저는 사실 그 직전에 마지막으로 수혜를 입은 사람이었고 주변에서 준비하던 동료들은 모든 게 중지됐어요. 극장 상황도 2~3년은 안정되지 않았고요. 코로나19 여파가 정리되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좋은 시기를 찾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사이에 단단하게 편집과 후반 작업을 거치자고 생각했죠. 개봉 시기를 잘 조율해서 좀 더 다진 상태로 멋지게 등장하는 게 낫겠다 싶어 기다렸습니다. 빠른 다작보다는 좋은 작품을 내고 싶었어요. 

Q. 선지 역을 맡은 윤아 배우와는 '엑시트' 이후 두 번째 작업이다. 독특한 캐릭터인데 연기 균형은 어떻게 잡아줬나  

첫 만남 때보다 서로를 잘 알게 돼서 소통의 시간이 많이 단축됐어요. 덕분에 다른 부분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더 쓸 수 있었죠. 악마라는 설정이 과장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낮의 선지는 평범한 사람에 가깝게 하면서 복합적인 톤으로 잡았습니다. 밤의 선지는 악마인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좀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초반에 그걸 잘 해낸다면 관객분들께서 엔딩까지 잘 받아들여 주실 것으로 생각했어요.

Q. 길구 역이 김선호 배우에서 안보현 배우로 바뀌었다. 이유가 있다면

길구 캐릭터는 선한 인상을 주는 배우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서 터치가 잘 맞는 분이라 당시에 연락드렸던 겁니다. 캐스팅 과정에서 배우가 교체되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보현 배우와 인연이 닿아 작업하게 된 건 운명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다부지고 강인한데, 속엔 고양이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고 느꼈어요. 외강내유형이죠. 실제로 성격도 저랑 비슷하고 디테일한 사람이에요. 그런 반전이 캐릭터에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좋은 사람과 좋은 작업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Q. '좀비딸'과 동시기 개봉하는데 '엑시트'의 주연이었던 조정석 배우와 최근에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지 

현재 '좀비딸'이 극장에 활력을 주고 있어요. 지난 6월 '엑시트' GV 때 오랜만에 조정석 배우를 만났는데 '좀비딸'이 극장가 활기의 시발점을 만들어주게 되면 저희가 그걸 잘 이어받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좀비딸'의 흥행이 그래서 반갑고 극장에 다시 활기가 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오리지널 시나리오 구상은 어떻게 시작됐나

영화감독을 향한 꿈을 갖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어요. '이제 이거 아니면 안 된다'하고 2014년 전투적으로 한 달 만에 '2시의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쓴 시나리오였어요. 이 작품으로 장편 영화 데뷔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제작이 무산됐죠. 이후 '엑시트'를 쓰면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코로나19가 왔어요. 다음 프로젝트를 고민하다가 예전에 써둔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다시 꺼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보니 부족한 점이 보여서 설정과 이야기를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부모님의 성별 정도만 그대로 뒀어요. 그 외에는 거의 다 바꿨죠.

Q. 한 달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절박하고 낭떠러지 같은 데 서 있으면 저는 하늘을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사람의 감춰진 엄청난 에너지나 필살기나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고 봐요. 저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는 게 제 인생을 걸고 하는 거잖아요. 그동안 너무 방만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나이가 점점 들고 주변에 먼저 데뷔하는 친구들이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죠, 

어머니께서 밤마다 깨워서 "너 어떡할 거냐?"고 하셨어요. (웃음)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을 좀 강하게 했어요. '너 이때까지 못 쓰면 그만둬라'하고 시한을 줬죠. 중고등학생들 공부하는 스터디 카페 구석에서 볶음밥 시켜 먹으면서 엄청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물론 말씀드렸듯이 당시에는 제작되지는 못했지만요. 어쨌든 나도 한 달 만에 뭔가를 완성할 수 있구나 하고 깨우치게 됐고 덕분에 이후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Q. 작품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게 되나

어릴 때부터 펜과 종이에 수기로 메모했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바닥에 쓰레기만 봐도 이런 저란 사연을 상상하면서 재미를 발견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누군가는 그런 게 큰 줄기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공감하거나 경험한 상황을 일상에서 찾아내는 게 좋아요. 

최근 제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희한하게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면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서 그걸 쓴 적이 아주 많아요. 그래서 일부러 샤워를 세 번 한 적도 있거든요. (웃음)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Q. 캐릭터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인물 이름에는 나름의 뜻을 넣어서 지었어요. 요즘 이름 지을 때 빈, 시, 후 같은 글자가 들어가는 게 유행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윗세대의 단단하고 따뜻함을 주는 이름을 좋아해요. 철수, 영희 같은 이름에는 뭔가 깐깐함이 있거든요. 

'엑시트'의 용남은 '용감한 남자'였고 이번 영화의 길구는 '길을 구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성장 주제를 좋아해요. '엑시트'가 청춘의 길찾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길을 잃은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각자 길을 찾아가는 성장 이야기죠. 이 영화가 두 번째 연출작인데, 제가 앞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캐릭터에게는 오래 사시라고 장수라는 이름을 계속 붙이고 싶었고요. 선지는 단편 영화 시절부터 썼던 주인공 이름입니다. 당시에 그냥 재미있게 소피 마르소에서 따와서 '소의 피'니까 선지라는 식으로 지었죠. 이 영회에서는 프랑스 유학 가고 싶어 하는 어떤 욕망도 조금 담았죠. 선(SUN)은 낮에 활동하는 캐릭터라는 뜻도 있고요. 

사실 이걸 관객분들이 아셔야 할 필요는 전혀 없거든요.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적인 설정을 할 때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서 이름에 의미를 좀 두고 짓는 편입니다.

Q. 1401호는 천사, 1301호는 악마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TMI나 이스터 에그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그런 해석이 맞습니다. 이스터 에그는 '엑시트' 때도 많이 하긴 했어요. 사실 알면 재밌는데 몰라도 영화 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선에서 넣죠. 일부러 깔아놓기보다는 창작자가 이걸 넣으려면 이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할 때 쓰거든요. 예를 들면 옷은 무슨 색을 입힐까 할 때 창작자로선 분명 이유가 필요해요. 

이게 이스터 에그일 수도 있는데 '정셋빵집'은 정 씨 세 명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뜻이죠. 그런 식으로 디테일을 챙기다 보면 저만의 이스터 에그들이 많이 탄생해요. 제가 설정했던 것을 관객분들이 찾아내서 말씀해주시면 놀라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많이 봐주시고 그런 부분을 재미있게 직접 찾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Q. 선지가 먹는 편의점 시폰 케이크 등 PPL(제품 간접 광고)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시사회 후기 의견이 있던데

너무너무 억울합니다. PPL 없습니다. (웃음) 그거 디자인부터 이름까지 해서 아예 세상에 없는 시폰 케이크를 공방에 주문해서 만든 겁니다. 우유 같은 경우는 소품을 쓰려다가 실제 있는 게 더 현실적이라 생각해서 사용했어요. 차라리 PPL을 받을 걸 그랬어요. 오해받아 억울하네요. (웃음)

Q. 2022년에 촬영한 영화지만, 3년이 지난 2025년에 개봉한다. 영화 속 배경을 2022년으로 유지한 이유가 있다면

영화를 보면 측면 트레킹 샷으로 2022년 달력이 나오죠. 설정상 선지와 길구가 2022년 5월에 만나 7월까지 같이 있고 그 뒤에 선지가 유학을 떠났다가 2년 뒤에 돌아옵니다. 미래 시점 영화가 될 뻔했는데 오히려 타이밍이 잘 맞아서 2025년 현재가 됐어요. 그래서 이걸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봤죠. '엑시트' 때도 그랬어요. 영화 설정에는 2019년 9월 7일 벌어진 얘기였어요. 근데 당시 개봉을 7월 31일에 해서 9월 7일까지 상영했기 때문에 시점이 딱 맞아떨어졌었죠.

Q. 현실에서는 마음 약한 사람의 연민과 동정심을 유발해 무리한 부탁을 하고 이용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선지의 아빠 장수가 길구에게 자기 딸을 도와달라며 부탁하는 설정과 관련해 톤 조절에 고민이 있었다면

일단 장수는 길구의 호구조사를 일단 한 번 끝내잖아요. 사실 거기서 한번 주고 싶었던 게 사람들의 고정관념입니다.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니까 올바른 집안에서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어머니가 전 아파트 부녀회장이니까 여기서 이상한 짓은 못 하겠구나 하게 되는 거죠. 

장수가 길구 얼굴을 잘 살펴보는 쇼트나 신뢰한다는 대사를 넣어서 그가 올바른 친구를 잘 판단해서 선택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단 설정 자체가 하이콘셉트 영화잖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관객분들께서 이해를 해주실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성동일 배우잖아요. (웃음) 성동일 배우가 하는 건 관객분들도 그냥 받아들이시게 될 거라고 봤어요.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악마가이사왔다' 이상근 감독. ⓒCJ ENM

Q. 왜 낮의 선지가 길구를 사랑하게 되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설정을 설명한다면

저는 사랑이란 게 논리로 설명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내면 때문인지 타당한 이유를 대라고 해도 그런 이유를 딱 잘라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보자마자 이 사람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좋아하게 됐어요. 한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선지가 길구의 어떤 본질적인 면에서 느끼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랑에는 굳이 논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Q. 제주도를 공간 배경 중 하나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워낙 제주도를 좋아해요. '엑시트' 때도 의주 부모님이 제주도에 있다는 설정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하면 제주도로 촬영하러 갈 수 있잖아요. (웃음) 

Q. 제주도까지 가서 고생하는 길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사실 저는 영남이나 길구처럼 매번 판타지 속에나 있을 법한 남자들을 소환해온 것 같아요. 사실 있기는 한데 현실에선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죠. 그래서 더욱 '이런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어요' 하고,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길구는 기본적으로 이타심과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선지를 보고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죠. 저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 상황을 타파하려는 모습을 보는 게 좋거든요. 길구라는 캐릭터가 누군가를 구원하고, 마지막엔 자신도 성장하며 구원받는 서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혹자는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왜 저렇게까지 할까? 이해가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Q. 이상근 감독표 코미디에 대해 말한다면

봉준호 감독님은 엇박자 개그를 많이 쓰시잖아요. 그 정도까지는 못 하더라도 저만의 시그니처와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요. 한강 장면 경우에는 휴머니즘을 넣고 싶었어요. 거기서 발생하는 코미디적 효과를 기대했죠. 그 장면에서 임윤아 배우 목소리는 후시 녹음을 한 건데 명확한 대사 전달보다는 행위 자체를 강조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웃기려 했을 때 안 웃는 게 제일 큰 실패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웃기려는 장면을 만들지는 않아요. 웃음의 기조에는 반드시 공감대라는 밑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감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절대 웃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웃을 수 있는 걸 많이 찾으려고 노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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